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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캠페인:책을 읽읍시다]

[책을 읽읍시다 (1001)] 비구름이 모일 때

[책을 읽읍시다 (1001)] 비구름이 모일 때

베시 헤드 저 | 왕은철 역 | 문학동네 | 328쪽 | 14,000원

 

 

 

[시사타임즈 = 박속심 기자]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1948년 입법화된 인종차별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가 한창 극렬해지던 1960년 전후 시기, 이십 대 초반의 베시 헤드는 이 현실에 맞서 아프리카 사회에 만연한 여러 문제를 중점적으로 살피는 일에 열중했던 기자였다. 당시 남아공 흑인사회 문제를 널리 알린 급진적 신문들 ‘골든 시티 포스트’, ‘드럼’, ‘콘택트’ 등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한편, 범아프리카회의(PAC)에 가담해 활동하다 체포되어 나온 다음에는 홀로 ‘더 시티즌’이라는 독립 신문을 발간하기도 했다. 그런 그녀가 남아공의 정치적 소용돌이로부터 벗어나 작가로서 첫 명성을 알리고 새로운 길을 열게 된 계기는 보츠와나로 넘어가면서부터다. 그 물꼬를 튼 작품이 바로 이 소설 『비구름이 모일 때』다.

 

1962년 무장투쟁중이던 넬슨 만델라가 체포된 그해, 작가는 점점 자신의 모국 남아공과 2년 남짓한 결혼생활에 회의와 절망을 느끼기 시작해, 1964년 당시 영국 보호령이던 베추아날란드(현 보츠와나)로 아들만 달랑 데리고 망명했다. 남아공에 다시는 발을 들이지 못한다는 조건으로 동료 작가 패트릭 컬리넌의 도움을 받아 간신히 보츠와나로 들어가는 데 성공하나, 그녀는 난민 신분으로 시민권 없이 15년간 그곳에서 방황해야 했다.

 

이런 이력은 이 소설의 주인공 마카야에게 고스란히 투영되어 남아공의 국경 철조망을 넘어 보츠와나로 망명해 새로운 삶을 꿈꾸는 현실로 나아가게 한다. 흑인을 '보이, 개, 캐퍼(깜둥이)'라고 부르는 곳에서 증오와 분노로 얼룩진 투쟁으로 죽음과 폭력에 지친 마카야는 '마음의 평화'를 갈망하며 낯선 나라에서 전혀 다른 백인 길버트 밸푸어라는 인물을 만나 새로운 땅을 일구는 역사에 동참한다. 그러나 마을 주민들의 삶을 나아지게 하려는 노력은 현실에 맞지 않는 그들만의 구습과 편견, 자신들의 이익만 챙기는 정치인, 흑인 공동체 내의 또다른 폭력과 음모 등의 현실과 맞부딪힌다.

 

베시 헤드는 이 작품에서 아프리카가 어떻게 기술과 경영의 진보를 통해 화합하고 경제적 자립을 이룰 수 있을지, 어떻게 그들 스스로 정치적 압제로부터 풀려나, 마침내 인간의 존엄을 회복할 수 있을지에 대한 탐구를 끝까지 밀어붙인다. 이 소설은 하나의 유토피아를 꿈꾸면서도 섣불리 속단하지 않으면서 정치와 경제의 구조적 폭력에 무감각해진 공동체가 어떻게 그들 스스로 진정한 해방을 이끌어내고 미래를 모색할 수 있을지, 그 길을 찾아나가기 위해 아프리카 공동체뿐만이 아니라 인류 전체의 미래에 대해 던지는 질문의 책이자 대답의 책이라 할 수 있다.

 

이 작품의 또다른 매력은 시대가 부과한 올가미와도 같던 의식에서 벗어나 서구 중심의 영문학사에서 지배와 착취와 학대 대상으로만 다뤄진 흑인 사회의 중층적이고 다층적인 새로운 시각을 견지해낸 베시 헤드 문학세계의 독창적 이면을 엿볼 수 있다는 점이다. 헤드는 ‘컬러드(백인과 토착민의 피가 섞인 유색인)’이자 여성으로서 겪은 인종 및 성 차별, 잦은 실직으로 인한 극심한 가난과 고립으로 정신적으로 누구보다 불안정한 삶을 살았던 작가다. 그런 작가가 문제삼은 건 정치현실을 넘어, 보편적으로 인간 본연이 마주할 수밖에 없는 현실과 존재에 관한 질문이었다. 그리하여 당시 아파르트헤이트를 집중적으로 다룬 동시대 작가들과 달리, 아프리카 문학세계가 눈 돌리지 않던 아프리카의 자연과 부족 내 전통, 자유와 화해의 서정을 노래하는 독자적인 작품세계를 개척해나갔다.

 

 

작가 베시 헤드 소개

 

1937년 남아프리카 연방의 나탈에서 태어났다. 1948년 남아공의 인종차별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가 가장 격심했던 시기, 혼종-혼혈이 금기시되던 나라에서 흑인 아버지와 백인 어머니 사이에서 사생아로 태어나 혼혈유색인 ‘컬러드’만 받는 한 집안의 양녀로 자랐다. 친모가 백인이란 사실은 사춘기가 되어서야 밝혀졌다. 중등교육을 마치고 교사 시험을 통과해 초등학교 교사로 잠깐 일한다. 이후 ‘골든 시티 포스트’에서 기자 생활을 시작해 ‘드럼’의 기자로 일했으며, 자유와 평등권의 보장을 위해 결성된 범아프리카회의(PAC)에 가입해 활동하다 체포 및 구금되어 자살을 시도한다.

 

1964년 남아프리카에서 영구 추방되어 보츠와나에 터를 잡았으나 1979년이 되어서야 시민권을 획득했다. 남편과의 불화와 20여 년이 넘는 별거, 잦은 실직과 정착 없는 삶, 정신병원 입원 등을 거치며 극심한 가난과 온갖 차별에 맞서 싸우다 신경쇠약과 더불어 과도한 음주벽으로 1986년 세로웨에서 간염으로 눈을 감는다. 이제 막 세계가 그녀의 작품에 눈을 뜨던 때였다.

 

베시 헤드는 고국인 남아공에서 추방되어 15년간 시민권 없이 살았던 보츠와나 세로웨에서 그녀 삶의 전기가 반영된 주옥같은 삼부작을 써내려갔다. 처녀작 『비구름이 모일 때』(1969)와 그로부터 2년 후에 내놓은 『마루』(1971), 그리고 남녀 간 권력 문제를 깊이 있게 천착한 수작인 『권력의 문제』(1973)가 바로 그것이다. 이외에도 『비바람이 치는 마을』(1981), 『마법의 십자로』(1984) 등이 있다. 삼부작 가운데 『마루』는 아프리카 사회에 만연한 성차별과 계급차별 그리고 인종차별의 착종을 가장 서정적으로 예각화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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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속심 기자 sisatim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