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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캠페인:책을 읽읍시다]

[책을 읽읍시다 (1014)] 운명은 제 갈 길을 찾을 것이다

[책을 읽읍시다 (1014)] 운명은 제 갈 길을 찾을 것이다

해나 피터드 저 | 윤미나 역 | 문학동네 | 280쪽 | 13,500원

 

 

 

[시사타임즈 = 박속심 기자] 해나 피터드의 매력적인 데뷔소설『운명은 제 갈 길을 찾을 것이다』. 이 소설은 미국 대서양 인근 중부의 어느 교외 동네에서 벌어진 한 소녀의 실종과 이십 년이 넘도록 그 사건에 사로잡혀 있는 한동네 소년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소년들이 화자가 되어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가운데, 삶과 운명의 불가해함, 사춘기의 채워지지 않은 욕망과 후회 등이 마치 메아리처럼 작품 전반에 울리며, 더 나아가 다른 사람에 대한 우리의 이해가 얼마나 보잘것없는지, 소문과 추측과 판타지로 구성한 타인의 삶이 그 실체와는 얼마나 다를 수 있는지, 또 아이가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은 얼마나 혹독한지를 말하고 있다.

 

소설의 중심에는 온 동네에 비극의 그림자를 드리운 사건이 있다. 10월의 마지막날 핼러윈 밤, 열여섯 살 소녀 노라 린델이 실종된 것이다. 한동네 소년들은 자기들끼리 똘똘 뭉쳐 실종의 수수께끼를 풀고 진실을 발견하고 싶은 마음에 모여서 서로를 추궁하기 시작한다. 그들 각자가 목격했다고 주장하는 사실, 가정과 추측은 그들의 판타지를 자극하고 소문을 부풀릴 뿐, 진실과는 상관없다. 그렇게 노라 린델의 실종은 오랫동안 우리 소년들을 성가시게 하는 미스터리로 남는다. 그들은 중년 남자가 될 때까지 이십 년이 넘도록 한편으로는 걱정과 우려로 또 한편으로는 호기심과 충족되지 못한 욕망 때문에 그 사건에 사로잡혀 닿을 수 없는 곳의 노라를 생각하고, 지금쯤 노라는 어떤 삶을 살고 있을지 상상한다.

 

노라의 실종 당일 실제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래서 노라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끝내 밝혀지지 않는다. 어쩌면 ‘우리’는 “우리의 환상이 현실과 어긋날까봐, 현실에 거부당할까봐” 진실을 알길 내켜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날 노라는 위험한 포식자에게 걸려들어 죽임을 당했을까. 아니면 애리조나로 가서 쌍둥이를 낳고 거기서 만난 멕시코 남자와 살게 될까. 또 아니면 뭄바이에서 문신 새기는 여자를 만나 사랑에 빠질까. 폭발 사고로 죽는 걸까, 아니면 암으로? “이런 것들을 확실히 말하기는 불가능하다.” 소설이 제시하는 그와 같은 가능성들 중 하나가 진실일 수도 있다. 소설은 소녀 실종이라는 치명적인 범죄를 다루면서도 경찰 조사에 대한 묘사가 등장하지 않는다. 『운명은 제 갈 길을 찾을 것이다』가 ‘가정’의 소설이자, 문제를 해결하는 안도감보다는 물음들을 추적해가는 과정에 집중하는 소설이기 때문일 터이다.

 

이 책은 실종된 소녀 노라 린델의 이야기다. 또한 그녀가 남겨두고 간 소년들이 어떻게 어른이 되어가는가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노라의 실종은 십대 시절의 끝을 상징하는 사건이지만, 소년들은 그녀에 대해 질문하고 그녀가 겪었을지도 모르는 일에 강박적으로 집착하고 그녀가 어떻게 되었을지 몽상하면서 끊임없이 사춘기를 유예한다. 소년들 스스로 고백하듯, 그것은 “너무 오래 지체된 성장기의 잔여물”이다. 또한 그것이 어른이 된다는 것, 남자가 된다는 것, 다른 사람의 인생을 책임지는 인간이 된다는 것의 중압감 때문임을, 그들은 알고 있다. 그들은 삶이 계속될수록 “바깥으로, 세상 속으로” 떠밀리고 있음을, 어른이 되어가고 있음을 깨닫는다. 한편으로는 어른이 된다는 것이 주는 침울한 위로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도 마음속으로는 어른에게 약속된 평안을 아직 찾지 못한 사람이 자기뿐일까봐 두려워하기도 한다.

 

소년들은 아니 이제는 아내와 딸과 아들이 있는 중년의 남자들은 마침내 노라를 마지막으로 생각하는 순간을 맞이하고서 길었던 성장기에 진정한 작별을 고하며 주위의 이 모든 것이 인생이라는 것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독자들은 어둡고 우울한 사춘기의 한 자락,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가는 혹독한 과정을 함께하며 자신의 십대 시절을 새롭게 돌이켜보게 될 것이다. 비교적 짧지만 긴 여운이 있는 작품이다.

 

 

작가 해나 피터드 소개

 

미국 조지아 주 애틀랜타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2001년 시카고 대학교에서 학사학위를, 2007년 버지니아 대학교에서 순수예술 석사학위를 받았다. 『맥스위니스』 『님로드』 『밤BOMB』 등의 문학잡지에 다수의 단편을 발표했고, 2006년 어맨다 데이비스 하이와이어 픽션 어워드를 수상했으며, 2008년 「허기와 밤과 별」이 살만 루슈디가 객원편집자로 참여한 『최고의 미국 단편소설 100선』에 실리기도 했다. 2011년 첫 책 『운명은 제 갈 길을 찾을 것이다』를 출간했다.

 

‘우리’라는 1인칭 복수 화자의 목소리로 실종된 소녀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이 소설은 「가디언」 「시카고 트리뷴」 「캔자스시티 스타」 등 유수의 매체로부터 최고의 소설로 선정되었다. 2014년 발표한 장편소설 『재회』 역시 「시카고 트리뷴」 편집자가 뽑은 기대할 만한 책, 『피플 매거진』 선정 최고의 신간, 『버슬 매거진』 선정 소설 TOP10 등에 이름을 올리며 호평을 이어갔고, 2016년 발표한 『내 말을 들어줘』에 이어, 『애틀랜타, 1962』의 출간을 앞두고 있다. 현재 켄터키 대학교에서 영문학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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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속심 기자 sisatim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