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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캠페인:책을 읽읍시다]

[책을 읽읍시다 (1022)] 분노의 날들

[책을 읽읍시다 (1022)] 분노의 날들

실비 제르맹 저 | 이창실 역 | 문학동네 | 384쪽 | 14,800원

 

 

 

[시사타임즈 = 박속심 기자] 프랑스 현대문학의 거장 실비 제르맹의 대표작 『분노의 날들』.프랑스 모르방 지방의 깊은 산속 마을. 광기와 집착에 사로잡히는 앙브루아즈 모페르튀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그의 두 아들, 깊은 신앙심을 지닌 에드메와 그녀의 딸 레네트와 레네트의 아홉 아들, 아름다움의 화신인 카미유라는 인물이 그려내는 이야기다. 평범한 벌목꾼인 모페르튀는 마을 일대 숲을 소유한 부유한 인물 뱅상 코르볼이 질투에 눈이 멀어 그의 아내 카트린을 죽이는 광경을 우연히 목격하게 된다. 모페르튀는 카트린의 시신을 처리해주는 대가로 코르볼에게서 숲의 소유권을 요구한다. 그런데 시신을 처리하던 중 모페르튀는 죽은 카트린을 보자마자 주체할 수 없는 광적인 사랑을 느낀다.

 

그는 카트린을 땅에 묻은 후 죽은 그녀를 자신의 삶 속으로 다시 불러들일 수 있다는 믿음으로 자신의 작은아들을 카트린의 딸과 결혼시키고, 그 결과로 카미유라는 손녀를 얻게 된다. 카미유는 성장해가며 모페르튀가 그토록 원했던 카트린과 꼭 닮은 모습으로 자라나고, 그녀는 모페르튀에게 아름다움의 화신이자 카트린의 화신으로 강렬한 집착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은 결국 비극의 씨앗을 낳게 되는데, 모페르튀가 원했던 결혼을 반대하고 레네트와 결혼한 큰아들의 아홉 아들 중 한 명인 시몽과 카미유가 사랑에 빠지게 된 것이다. 이제는 노인이자 마을의 지배자가 된 모페르튀는 그 사실을 알게 된 후 불같은 분노에 휩싸여 카미유를 자신의 집에 감금하고, 그녀와 사랑에 빠진 벌목꾼 소년 시몽을 마을 밖으로 내쫓기에 이른다. 그렇게 모페르튀의 집착과 광기가 커져가며 이야기는 비극으로 치닫기 시작한다.

 

욕망과 집착의 화신으로 마을 전체를 비극으로 몰고나가는 모페르튀는 악하지만 매력적이고 흥미로운 인물이다. 카트린의 시신을 보고 한순간에 사랑에 빠지는 광적인 면이 있는가 하면 그녀를 다시 자신의 삶으로 끌어오기 위해 결국 자신이 사랑한 여인을 빼다박은 손녀를 얻기까지 수십 년을 기다리는 인내심을 발휘하기도 한다. 그는 광적이면서도 냉정하고 욕망에 충실하면서도 시간을 견딜 줄 아는 독특한 인물이다.

 

이 소설에서 그와 대조되는 인물로 에드메라는 여인이 등장한다. 그는 중후반부터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아홉 소년을 낳은 레네트의 어머니로 자애와 안식의 상징으로 등장한다. 그녀는 깊은 신앙심을 지닌 인물로 자신의 딸인 레네트를 성모마리아의 화신이라 여긴다. 그녀가 직접 모페르튀와 대적하는 것은 아니지만 결국 그녀의 신앙심 아래에서 자라난 아홉 아들이 모페르튀의 맞은편에 서서 이야기를 이끌어나간다.

 

그렇다고 『분노의 날들』이 선과 악의 대립 구도로 흘러가는 단순한 이야기는 아니다. 제르맹은 인간의 욕망이란 ‘악’으로 발현될 수도 있고 또한 ‘선’으로 발현될 수도 있음을 역설한다. 모페르튀는 소설에서 광기에 사로잡힌 극악무도한 인물로 그려지지만 그 또한, 비뚤어졌을지언정 사랑이라는 감정에서 비롯된 행위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그것은 모페르튀의 손녀 카미유와 시몽의 사랑 또한 맹목적이라는 데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소설의 서사 진행 방식이나 문체를 보면 실비 제르맹은 현재 프랑스 문단에서 이례적인 글쓰기를 하는 작가다. 그녀는 주로 도시를 배경으로 삼기보다는 전원의 삶과 예스러운 소재들을 충분히 활용한다. 또한 전지적 시점을 활용한 자유자재의 표현 방식은 현대인의 내면을 주로 다루는 현재의 주류와는 어느 정도 거리가 있다. 현재 프랑스 문단이 그녀를 특히 주목하는 이유는 그녀가 자신만의 스타일과 철학을 분명한 서사에 녹여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의 작품은 대부분 뚜렷한 스토리 라인이 있다. 그것은 분명히 현실의 시간과 공간 속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다.

 

제르맹은 감각적이고 서정적인 묘사로 신비하고 몽환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그러면서도 흥미진진함과 유머를 잃지 않는다. 소설은 강렬하게 추동하며, 비장함이 깃든 이야기로 결말을 향해 치닫다가 이윽고 다시 침묵으로 빠져든다. 우리에게 울림을 주는 것은 바로 소설의 끝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바로 그 침묵이다. 그녀의 다른 작품들도 그러하듯이 『분노의 날들』 또한 읽는 이의 정서에 초월적인 고양을 이루어내며 문학만이 줄 수 있는 기쁨을 선사한다.

 

 

작가 실비 제르맹소개

 

1954년 프랑스 샤토루에서 태어났다. 소르본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했다. 1981년부터 틈틈이 단편소설을 쓰기 시작했으며 1984년 장편소설 『밤들의 책』으로 여섯 개의 문학상을 받으며 화려하게 문단에 등장했다. 이후 독특하고 아름다운 문체로, 역사에 뿌리를 둔 구체적이면서도 상상력 가득한 작품세계를 창조해왔다. 『마그누스』 『프라하 거리에서 울고 다니는 여자』 『숨겨진 삶』 등 수많은 작품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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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속심 기자 sisatim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