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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캠페인:책을 읽읍시다]

[책을 읽읍시다 (1052)] 비수기의 전문가들

[책을 읽읍시다 (1052)] 비수기의 전문가들

김한민 저 | workroom(워크룸프레스) | 160쪽 | 15,000원

 

 


[시사타임즈 = 박속심 기자] 김한민의 그림소설 『비수기의 전문가들』. ‘그냥’ 살아가기를 원하는 사람들을 ‘그저’ 생존하는 기계로 전락시키는 사회를 그린 전작 『카페 림보』에 이어, 모두가 성수기를 꿈꾸는 세상에 위협을 느끼는 그의 ‘감수성 전쟁’은 계속된다. 이 책은 낯선 곳으로 떠나 이름을 바꾸고 소일하다가 조용히 마감하는 생을 꿈꾸며 자신의 동굴을 떠난 주인공이 남긴 마지막 나날의 기록이다.

 

어두컴컴한 강의실, ‘비수기의 전문가들’이라는 수상한 제목의 슬라이드가 상영된다. 언뜻 듣기에 불경기를 이기는 경영 노하우를 들려주는 특강 같지만 실은 한 인문학자가 지난 20여 년간의 추적 끝에 발견한, 일명 ‘퀭’이라는 인간 유형이 남긴 기록이다. 이윽고 빈자리로 가득한 어둠 속에서 시인지 일기인지, 픽션인지 논픽션인지, 모든 것이 불분명한 글과 그림의 모음이 낭독된다.

 

단군신화에 등장하는 호랑이가 동굴에서 뛰쳐나가, 종국에는 자신의 가죽마저도 벗어던지고 되어버린 이상한 짐승, 퀭은 “인내심 부족으로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는 성급하고 무책임한 유형을 상징”한다. “생산적인 돌파구를 찾기보다는 견디기 힘든 현재를 벗어나는 데 급급한 인간. 그보다 최악은 신과의 약속은 물론 자신과의 약속조차 지키지 못하는, 그래서 애초에 ‘인간이 되고 싶다’는 소망도, 진정한 소망이 아니라 그저 곰의 소망을 흉내 낸 게 아닌가 심히 의심스러운 인간….” 대대로 환경에 순응하며 성공을 위해 묵묵히 노력하는 곰 유형에 가치를 부여해온 사회에서 이런 인간의 결말은 한마디로 요약 가능하다. 낙오자. 아무도 멸종을 아쉬워하지 않는, 너무도 비수기스러운 ‘퀭’은 그러나 누구보다 예민하고 주의 깊게 세상을 응시한 나머지 자유가 무엇인지 알아버린 존재이기도 하다.

 

가장 기피하고, 가장 말이 없고, 가장 인공적인 것 도망자, 떠돌이, 그의 친구, 아이, 영화광, 산책자, 시인, 구경꾼, 환자, 죄인, 탐정들…. 이 책에 등장하는 이름들이다. 그러나 이들이 등장하는 누구나 공감하는 비수기의 모험을 기대하면 실망할런지도 모른다. 이 책 전반에는 비공감주의가 흐르기 때문이다. 비공감주의란 “공감하기 쉬울수록 가짜라는 주의다. 절대 다수가 공감하는 것이 있다면 그 사실 자체만으로도 위협을 느낀다. 특히 ‘이런 시대의 대다수’가 지지하는 사람, 생각, 물건, 발명품, 작품 등은 사기일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고 전제하는 주의다.” 그러나 모두가 성수기를 찾고, 모두가 ‘좋아요’를 눌러주길 바라는 시대에 이런 ‘비공감주의’에 공감한다면 주인공이 쓰레기와 동물과 시, 즉 사람들이 가장 기피하고, 가장 말이 없고, 가장 인공적인 것을 재료 삼아 짓는 의미의 그물은 비수기의 좋은 벗이 되어줄 것이다.

 

 

작가 김한민 소개

 

1979년 서울 출생이다. 대학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했고 그림책과 만화 등 이미지로 이야기하는 작업에 열중하고 있다. 그리스 비극의 가면 제작사를 다룬 만화 『유리피데스에게』, 그림책 『웅고와 분홍돌고래』를 쓰고 그렸으며, 동물학자인 형과 함께 어린이를 위한 동물 행동학 책 『Stop!』을 만들었다. 뿐만 아니라 『거미 여인의 키스』(민음사 세계 문학 전집 특별판) 등 다양한 작품에 디자이너이자 삽화가로 참여했다.

 

데뷔작인 『유리피데스에게』부터 지금까지, 자연과 동물에 대한 관심으로 많은 동물 캐릭터를 창조해 이야기에 등장시키는 작가다. 『혜성을 닮은 방』의 세계에서 사서 찬찬(펭귄), 식물 언어 통역사 앙리(게) 등이 자연스럽게 인간과 공존하고 소통하는 것 역시 같은 맥락에 놓여 있다.또, 어린 시절 스리랑카와 덴마크에서 살았고 2년간 페루 북부의 도시 치클라요에서 자동차 정비 분야 자원봉사자로 활동했던 경험을 살려 책 속에 다양한 지역적, 문화적 색채를 불어넣고 있다. 현재 ‘1/n’의 편집장으로 일하며 과학과 예술이 융합되는 한국 문화 창의성의 새로운 경지를 모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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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속심 기자 sisatim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