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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캠페인:책을 읽읍시다]

[책을 읽읍시다 (1124)] 꿰맨 심장

[책을 읽읍시다 (1124)] 꿰맨 심장

카롤 마르티네즈 저 | 전미연 역 | 문학동네 | 520쪽 | 15,500원



 

[시사타임즈 = 박속심 기자] 마법과 환상이 뒤섞인 세계를 관능적으로 그려낸 소설『꿰맨 심장』. 이 책은 ‘고독’이라는 의미의 이름을 지닌 ‘나’, 솔레다드가 마법처럼 놀라운 바느질 실력을 지닌 어머니 프라스키타 카라스코의 파란만장한 삶을 적어내려가는 형식의 소설이다. 자신을 닮아 신기한 재능을 지닌 네 딸과 한 아들을 태운 수레를 끌며 농민혁명으로 총성이 난무하는 안달루시아 지방을 건너 북아프리카의 사막까지 방랑의 세월을 헤쳐가는 프라스키타의 전설 같은 이야기가 서정적이고 관능적인 문장으로 씨줄과 날줄처럼 엮여 있다.


실과 바늘로 마법과 같은 솜씨를 부리는 프라스키타 카라스코, 사람들은 그녀를 마녀라고 부른다. 프라스키타는 바늘로밖에 글을 쓸 줄 모른다. 그녀의 손끝에서 태어난 작품마다 천 겹겹이 사랑의 언어가 깊이 새겨져 있다. 진짜보다 더 아름답고 생생한 꽃들이 수놓인 웨딩드레스, 살아 있는 나비 날개를 완벽하게 재현해낸 부채를 만드는가 하면, 헝겊에 수를 놓아 만든 심장은 성모상의 의상 속에서 마치 기적처럼 고동치는 듯하다. 그녀가 살고 있는 세계의 모든 아름다움이 그녀의 작품 속에 보존되어 있다. 그녀는 세상 곳곳에 흩어져 있는 조그마한 광채들을 거둬들여 천 속으로 몰아넣는, 예술의 경지에 오른 바느질쟁이다.


프라스키타의 남편 호세는 닭싸움에 미쳐 가산을 탕진한다. 나중에는 걸 것이 없어지자 급기야 자기 아내를 걸고 대지주의 아들 에레디아와 내기를 한다. 호세는 내기에서 지고 프라스키타는 어쩔 수 없이 에레디아와 동침한다. 프라스키타의 재능을 시기하던 마을 사람들은 득달같이 달려들어 그녀에게 간통녀라고 손가락질한다. 더이상 고향땅 산타벨라에서 살 수 없게 된 그녀는 그녀처럼 신비한 능력을 지닌 다섯 아이를 태운 수레를 끌며 웨딩드레스 차림으로 머나먼 방랑의 길을 떠난다.


프라스키타와 아이들은 피와 총성으로 얼룩진 농민혁명의 한복판을 지나간다. 그녀는 바느질 솜씨를 발휘해 혁명을 꿈꾸다 군인들에게 붙들려 얼굴이 갈가리 찢긴 무정부주의자 살바도르의 살갗을 꿰매준다. 그리고 자신의 손끝에서 새로운 얼굴로 태어난 그와 사랑에 빠진다. 전쟁과 폭력을 온몸으로 겪으면서 프라스키타의 눈처럼 희던 웨딩드레스는 피와 진흙으로 점점 얼룩져간다. 그리고 이 여정을 통해 그녀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도 달라진다. “프라스키타는 마녀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야. 우린 단지 사람들이 잊어버린 것들을 기억하고 있을 뿐이지. 재능이 있는 여자야.”


떠돌이 프라스키타, 웨딩드레스 차림으로 어린 자식들을 데리고 벅찬 여정에 오른 여인. 그녀의 여정은 부서지고 파괴된 존재들, 죽어가는 사람들, 버림받은 생명들에 대한 이야기다. 사랑이 사라진 시대에 사랑을 지키려는 일말의 행위조차 없다면 연약한 존재를 포기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마르티네즈는 약자들을 지켜내는 힘의 근원을 ‘남자들의 역사’가 아닌 ‘여자들의 비밀’에서 찾는다. “여자들의 비밀을 통해 전하는 숨겨진 얘기들, 아낙들의 귓속에 파묻혀 있다 젖과 함께 빨리는 얘기들, 어머니들의 입술이 마시는 얘기들. 피와 함께, 월경과 함께 배우는 이 마법”에 그 힘이 있다.


『꿰맨 심장』은 마법 같은 설정을 환상적으로 그려낸 소설이지만 여성의 현실을 묵직하게 다루고 있기에 이 작품이 담고 있는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현실의 폭력성을 마술적 사실주의로 오롯이 담아낸 이 소설은 삶과 사회, 여성의 현실에 대한 수많은 비판적인 질문들을 던지고 있다. 한 편의 서사시 같은 이 데뷔작을 통해서 마르티네즈는 전 세대의 거장 마르케스의 전통을 성공적으로 계승하고 있음을 증명해냈다.



작가 카롤 마르티네즈 소개


1966년 프랑스 크레앙주에서 태어났다. 스무 살 때 배우와 사진작가로 활동했고, 현재 중학교 프랑스어 교사로 재직중이다. 1998년 청소년 소설 『책의 비명』을 출간했고, 육아휴직중 집필한 소설 『꿰맨 심장』을 2007년에 출간하며 본격적인 창작활동을 시작했다. 『꿰맨 심장』은 비평가들로부터 마르케스의 『백년 동안의 고독』에 비견된다는 찬사를 받으며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었으며, ‘고등학생이 선정하는 르노도상’, 율리시스상, 에마뉘엘로블레스상, ‘모나코 피에르 대공 재단 문학상’ 등 다수의 문학상을 수상했다. 2011년 소설 『뮈르뮈르의 영지에서』로 그해 공쿠르상 최종 후보에 올랐고, ‘고등학생이 선정하는 공쿠르상’을 수상했으며, 같은 작품으로 2012년에 마르셀 에메 상을 수상했다. 2015년 『기울어진 땅』으로 ‘낭시 황금 잎사귀 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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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속심 기자 sisatim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