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 가발다 저 | 김민정 역 | 북레시피 | 268쪽 | 13,000원
[시사타임즈 = 박속심 기자] 안나 가발다의 데뷔작 『누군가 어디에서 나를 기다리면 좋겠다』. 안나 가발다의 글에는 계단을 오르며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기분이나, 잘 열리지 않는 편지봉투를 찢으며 애를 먹는 심정, 또는 연주하기 어려운 악보를 대하며 무심히 찡그리게 되는 느낌이 한꺼번에 녹아 있다. 그녀는 마음속에 숨겨놓았던 내밀한 이야기들을 『누군가 어디에서 나를 기다리면 좋겠다』에 마치 익숙한 노래를 읊조리듯 무심한 어조로 풀어놓았다. 작가는 파리 사람들의 세련된 일상과 지방의 단조로운 생활, 신랄함과 유머, 궤변과 익살을 동시에 표현해냈다.
전체 2장으로 구성된 이 소설집은 각양각색의 직업을 가진 다양한 연령대 남녀들의 시각을 대변하고 있다. 경쾌하고 객관적인 시선으로 닿을 듯 말 듯 스치는 남녀 간의 사랑을 바라보는 한편으로 그로테스크한 면을 들추며 인간 내면의 어두운 진실을 파헤치기도 한다. 카르티에라탱을 쏘다니다가 만난 두 남녀, 첫눈에 반해 이어진 로맨틱한 저녁식사까지는 좋았는데 무례하게 흘끔거리는 시선과 걸려오는 휴대전화 때문에 분위기가 자꾸 깨진다…. 결혼식에 참석하려는 임산부가 방금 배 속의 태아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애써 행복한 척하며 진실을 부정하는 이야기, 아버지의 재규어 자동차를 빌린 십대 두 명이 잔뜩 흥분한 멧돼지를 들이받는다는 이야기…. 그녀의 소설은 장면 하나하나에 대한 시각적인 묘사가 워낙 뛰어나기에 다 읽고 나서도 이야기 속의 장면들이 자꾸만 떠오른다.
안나 가발다는 등장인물들의 우스꽝스럽고 하찮은 면을 강조하는 것 같지만 사실 자신이 만들어낸 인물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줄 아는 작가이다. 평범한 일상을 섬세하게 그려내는 그녀의 재치 있는 표현들은 독자들의 마음속에 오래도록 남는다. 그녀의 소설을 읽고 나면 여러 가지 모순된 감정이 한꺼번에 떠오른다. 문체는 가볍지만 그 안에서 느껴지는 감정의 기복은 아주 심한 편이다. 그래서일까, 분명 눈으로 보고 있는데도 누군가가 옆에서 큰 소리로 읽어주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그것도 날카로운 외침에서 속삭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음량의 목소리를 구사해가며. 바로 이런 느낌들 때문에 안나 가발다의 소설이 더욱 매력적이고도 신선하게 다가온다.
안나 가발다의 이야기 솜씨가 탁월한 것은 주변 사람들뿐 아니라 덧없이 스쳐가는 사람들까지도 자세히 관찰할 줄 알기 때문일 것이다. 게다가 그녀에게는 자신만의 상상을 이야기로 풀어내는 능력이 있다. ‘누군가 어디에서 나를 기다리면 좋겠다’라는 바람을 표시한 작가는, 행복하게도 그녀의 또 다른 작품을 기다리는 수많은 독자들과 언론의 호평을 받았다. 언론의 막강한 후광도 없이, 그저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소문만으로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사람들의 마음을 읽는 밝고 섬세한 눈과 깔끔하고도 감칠맛 나는 작가의 문체 때문이다. 그녀는 거창한 이야기를 하지 않고, 요란스럽게 글을 쓰지 않는다. 그저 보통 사람들이 흔히 겪을 만한 일들을 이야기하고 군더더기 없이 쉽고 재미있게 글을 쓴다.
작가 안나 가발다 소개
금발에 어린왕자를 닮은 얼굴. 폭력이나 슈퍼히어로나 팜므 파탈을 등장시키지 않고도 발표하는 작품을 모두 베스트셀러에 올리는 안나 가발다는 프랑스 문단의 수수께끼이다. 그는 1970년 파리 근교에서 태어나 샤르트르 근처의 시골에서 세 형제자매와 더불어 목가적인 어린 시절을 보냈다. 14세 때 부모가 헤어짐에 따라 시골 마을을 떠나 수녀원처럼 규율이 엄격한 가톨릭계 기숙학교에 들어갔다.
그 뒤에 파리 몰리에르 고등학교의 고등사범학교 준비반에서 공부하다가 진로를 바꾸어 소르본 대학에 진학했고 여기에서 현대문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대학 시절에는 생계를 스스로 해결해야 했던 터라 꽃장수에서 영화관 좌석 안내원, 옷가게 점원, 가정교사에 이르기까지 온갖 아르바이트를 경험했다. 1993년 한 가톨릭계 중학교의 교사가 되어 10년 동안 프랑스어와 문학을 가르쳤다.
둘째아이를 낳은 1999년 ‘르 딜레탕트’라는 작은 출판사에서 그동안 쓴 단편들을 모아 책 『누군가 어디에서 나를 기다리면 좋겠다』을 냈다. 초판 999부로 수줍게 서점에 나온 이 책은 소규모 신진 출판사에서 낸 무명작가의 단편집이라는 약점에도 불구하고 대중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소문 덕에 일약 베스트셀러가 됐다. 또한 RTL 방송과 월간 문학지 ‘리르’가 독자들의 투표를 통해 선정하는 문학상(2000년)을 받았다.
2002년의 『나는 그녀를 사랑했네』에 이어, 후에 출간한 2004년 3월에 출간한 『함께 있을 수 있다면』은 평론가들과 독자들의 열렬한 찬사를 받으며 그 해에 가장 많이 팔린 프랑스 소설이 되었고, 현재 38개 언어로 번역되었다. 『35kg짜리 희망덩어리』, 『위로』 등의 장편소설들은 평론가들과 독자들의 열렬한 찬사를 받으며 그 해에 가장 많이 팔린 프랑스 소설이 되었고, 전세계 언어로 번역되었다.
가발다 소설의 매력은 평범한 사람들이 상처를 극복하고 행복을 찾는 과정을 경쾌하면서도 명료하게 전하는 데 있다. 등장인물의 미묘한 감정을 잡아채는 심리묘사가 빼어나다는 평가를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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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속심 기자 sisatim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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