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읍시다 (145)] 그레이맨
이시카와 도모타케 저 | 양윤옥 역 | 소담출판사 | 488쪽 | 13,800원
[시사타임즈 = 박속심 기자] 세상에는 열심히 일해도 가난한 사람, 잘못한 것 없이 누명을 쓴 사람, 운이 없어 피해를 입은 사람 등 잘못 하나 없이 절망 속에서 허덕이는 사람들이 있다. 한 개인이 자신의 잘못이 아닌 이유로 막다른 골목에 몰렸을 때 그 절망과 분노는 누가 책임져줘야 하는가. 현실을 반영한다고 하는 문학은 이미 오래전부터 이러한 문제로 고민해왔다. 이시카와 도모타케의 소설 『그레이맨』은 그러한 현실을 정확하게 포착하여 짚어낸 문제작이다.
현대 사회의 부조리함을 정확하게 짚어낸 문제작
하루가 멀다 하고 끔찍한 범죄가 쏟아져 나와 사회면 기사를 가득 채운다. 세상이 아름답지만은 않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처럼 누구를 향한 분노인지도 불분명한 ‘묻지 마 범죄’가 뉴스 기사로 흘러나오는 걸 볼 때면, 지금은 잠시 운이 좋아 불행을 피해 갔을 뿐 나 또한 그러한 범죄의 피해 대상이 될지 모른다는 극도의 불안감에 휩싸이게 된다. 그런데 ‘묻지 마 범죄’라고 간편하게 이름 붙이긴 했지만 정말 그들은 아무 이유 없이 범죄를 저지른 걸까? 혹시 사회에 대한 절망과 분노가 ‘절망범죄’로 표출된 것은 아닐까?
못 가진 자들은 계속 불행할 수밖에 없는 사회, 강자는 약자를 억압하고 약자는 항상 참아야 하는 그런 사회에서 주인공 그레이는 괴물 같은 세상에 날카로운 칼날을 들이댄다. 부패하고 무능한 국가 권력은 나를 보호해줄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법에 호소하기보다는 직접적인 응징을 선택한다. 소중한 가족을 잃고 10년 동안 복수를 꿈꾸며 살아온 주인공 그레이에게는 타인의 절망을 감지하는 능력이 있다.
착취당하고 내버려진 자만이 지닌 눈빛, 몸이 찢기는 듯한 고통을 맛보고 마음이 너덜너덜해질 만큼 어둠의 깊이를 알아버린 사람이 가진 기척을 감지하는 능력이다. 그레이는 그렇게 절망 속에서 허덕이는 사람들을 모아 잘못된 세상에 저항하기 시작한다. 더 이상 참지 말고 분노하라는 외침은 권력자에게 공포감을 주고, 각자의 세상을 지켜내기 위한 이 절박한 분노는 이 세상을 조금이라도 멋진 곳으로 바꿔보고 싶다는 꿈으로 발전한다.
복수는 우리의 것
내가 사는 세상이 부조리하고 부패한 데다가 나를 지켜주겠다고 호언장담했던 국가 권력 또한 무능력하다는 것 알았을 때, 위기에 빠진 내가 취할 수 있는 태도는 두 가지다. 포기하거나 싸우는 것. 이 작품 『그레이맨』은 나를 불행의 구렁텅이로 빠뜨린 사회의 악과 대면했을 때 나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를 고민하게 하는 작품이다.
『그레이맨』에서 주인공 그레이는 웃을 일보다 고통스러운 일이 더 많아 이 세상을 포기하려는 자들을 모아 복수를 꿈꾼다. 그레이의 복수는 개인의 분노와 보복에서 끝나지 않고 이 지독한 세상 구조가 바뀌기를 바라는 사회적 복수이다. 범인뿐만이 아니라 이 나라 전체를 갉아먹는 그 잘못된 구조에 복수하는 것, 그것만이 그레이가 삶을 이어가는 이유이다.
『그레이맨』은 세계적인 엔터테인먼트 소설 공모전(골든 엘러펀트 상)에서, 전 세계의 독자를 매료시킬 만큼 시사성 있는 가치관과 충격적인 스토리로 높은 평가를 받아 150여 편에 이르는 응모작 중에서 당당히 대상으로 선정됐다. 주인공 그레이는 사회에 착취당하고 내버려진 자, 국가로부터 소외된 자, 그리고 죽음을 각오한 자들을 모아 ‘크리스마스’라고 부르는 프로젝트를 준비한다. 사회에 대한, 국가에 대한 복수를 꿈꾸며 ‘부의 재분배’, ‘권력의 재분배’라는 작전을 감행하는 그레이는 이 사회 99퍼센트의 약자들에게 큰 공감과 카타르시스를 안겨준다.
작가 이시카와 도모타케 소개
1985년 출생. 가나가와 현 출신. 25세에 쓴 이 작품으로 ‘골든 엘러펀트 상’ 제2회 대상을 수상하면서 작가로 데뷔했다. 대학 시절부터 집필에 몰두했다. 현재 회사원으로 근무하면서도 출퇴근 시간을 이용해 매일 글쓰기를 의도적으로 습관화 일주일에 원고지 100매를 채워 넣는 필력을 얻었다. 좋아하는 작가는 극작가이자 역사 소설가인 알렉상드르 뒤마이다.
박속심 기자(sisatim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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