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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캠페인:책을 읽읍시다]

[책을 읽읍시다 (1612)] 로야

[책을 읽읍시다 (1612)] 로야

다이앤 리 저 | 나무옆의자 | 288| 13,000

 

 

[시사타임즈 = 박속심 기자] 로야는 캐나다 밴쿠버를 배경으로 중산층의 삶을 사는 한국계 캐나다인 여성이 교통사고 후유증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오랜 세월 감춰온 자신의 근원적인 상처를 들여다보며 삶을 회복해가는 이야기다.

 

남편과 여덟 살 딸과 함께 캐나다 밴쿠버에서 순조로운 일상을 영위하던 는 어느 날 고속도로에서 교통사고를 당한다. 대형 사고였지만 사고 현장에서 멀쩡하게 걸어 나올 수 있었을 만큼 부상은 가벼웠다. 외상이 없으니 회복도 신속할 줄 알았는데 시간이 지나도 몸이 나아지지 않자 는 체력과 정신력의 한계에 부딪힌다. ‘는 자신을 한계에 몰아넣은 것이 자신의 취약 부분, 바로 부모와의 관계임을 더딘 회복 과정에서 깨닫는다.

 

중년에 접어든 와 남편은 각자의 고국을 떠나온 지 스무 해가 넘었으며 이들의 나고 자란 가족은 모두 고국에 있다. 폭력 가정에서 자란 는 성인이 된 후 부모와 물리적 거리를 두며 살아 왔다. 그러다 교통사고로 인해 체력과 정신력이 밑바닥에 떨어지자 위로받지 못한 어린 자신을 만나게 되고, 아직도 질기게 연결된 부모와의 정서적 거리를 경험한다. 교통사고가 자신을 밑바닥까지 가라앉게 한 동시에 의식적으로 지워온 겁에 질린 어린아이를 만나게 해준 셈이다. ‘의 회복은 이 아이와의 대면에서부터 시작된다.

 

지난 세월 동안 는 상처받은 자신을 위로하는 것보다 자신에게 상처 준 부모를 이해하는 것에 온 힘을 써왔다. 아프다는 소리를 누구에게도 안 했다. 심지어 자신에게도 한 적이 없었다. 참고 이해하는 것이 부모를 사랑하고 자신이 자라는 방식이었다. 폭력 가해자였던 아빠는 고인이 되었지만 그의 존재는 여전히 의 원 가족 삶 속에 있고, 엄마는 죽은 아빠를 거듭 끄집어내며 자신의 희생에 대한 보상을 끊임없이 요구한다.

 

는 폭력 피해자인 엄마는 마땅히 보상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여 무엇이든 아낌없이 주었지만, 자신이 밑바닥에 있을 때도 당신을 보살피지 않는다고 퍼붓는 엄마를 보며 지금껏 믿어왔던 피해자와 가해자의 이분법을 의심하기 시작한다.

 

1부와 2부로 나뉘어 13장으로 이루어진 소설은 화자의 회복 과정을 따라가며 그 내적, 외적 변화를 치밀하게 그린다. “엉덩이 밑에서 등 중간까지 굵은 바늘을 꽂아 넣는 것 같은선명하고 날카로운 최초의 통증 이후, 발작 기침과 앞가슴뼈 통증으로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 사로잡히는 끔찍한 시간을 지나기까지 는 현재와 과거, 현실과 꿈, 의식과 무의식을 넘나들며 숱한 감정의 격랑을 경험한다. 이때 현재의 가족인 남편과 딸은 의 고통을 진정시켜주고 를 일어나게 하는 힘이라면, 원 가족인 엄마 아빠는 신체적 질환 속에서 더 생생히 떠오르는 상처의 근원지다, 특히 엄마는 현재 시점에서 화자가 정서적, 감정적으로 가장 두려워하고 힘겨워하는 존재다.

 

소설은 서사의 상당 부분을 화자가 엄마에게 느끼는 감정, 엄마와의 관계에 할애한다. 그것은 엄마가 화자에게 보낸 문자메시지가 소설을 열고 닫는 구실을 하는 것에서도 확연히 드러난다. 아내와 자식에게 폭력을 휘둘렀던 아빠는 이미 고인이 되었기에 로서는 원망도 미움도 떠나보내고 잘 다듬어진 이해와 치밀하게 얽힌 감사만을 느끼는 데 반해 엄마는 여전히 의 삶에 부당하게 개입하고 침입함으로써 스트레스를 유발한다. 고국에서 혼자된 엄마는 더욱 가련한 모양새로 죽은 아버지 뒤에 숨어서 책임은 회피하고 권리만을 챙기려 든다.

 

를 가장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엄마가 의 말을 듣지않는다는 사실이다. 엄마와의 관계에서 는 늘 말하지 못하는 자이고 엄마는 늘 듣지 못하는 자. 소통이 되지 않는 일방적인 관계는 자주 실망과 염증을 낳고 지친 마음은 자발적 후퇴에서 관계의 철수까지 생각하게 한다. 소설의 말미에서 는 막힌 숨구멍을 틔우기 위해 엄마에 대한 미련을 보내는 듯싶다가 난데없이 도착한 엄마의 메시지로 인해 보낸 미련을 다시 주워 담는다. 엄마는 그렇게 의 곁에 끈질기게 존재한다.

 

로야는 인물의 생각과 감정을 집요하고 아름다운 문장으로 묘사한다. 여성이 자신의 내면을 이토록 정교하게 탐구하고 해석하는 것은 여성 서사의 눈부신 성취다. 화자의 강박은 오랫동안 숨기고 감추어온 것에서 비롯되었으므로 그것을 드러내 보이고 아프다고 말함으로써 회복은 시작된다. 이는 작가의 쓰는 행위와 연결된다. 다이앤 리는 자신이 그대로 투영된 이 소설을 통해 나는 왜 쓰는가? 나의 상처는 무엇인가? 그토록 상처 입은, 나는 누구인가?”를 묻고 답한다. “오래된 질문이자 모든 작가의 출발점이다.”(심사위원 김별아) 그리고 이야기는 여전히 열려 있고 진행 중이다.

    

 

작가 다이앤 리 소개

 

1974년 대구에서 태어났다. 경북대학교 독어독문학과와 서울대학교 독어독문학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본 대학교, 서울대학교, 브리티시 컬럼비아 대학교 독어독문학과에서 박사 과정을 공부했다. 2001년 캐나다로 이주해 현재 남편과 딸과 밴쿠버에 살고 있다. 클래식 음악을 애호하여 밴쿠버 체임버 뮤직 소사이어티 이사직을 맡고 있으며, 밴쿠버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밴쿠버 리사이틀 소사이어티의 연간 회원을 7년째 이어오고 있다. 몇 해 전 겪은 교통사고를 계기로 오랫동안 감춰왔던 고통의 근원을 들여다보고 스스로를 회복하기 위해 쓴 첫 소설 로야로 제15회 세계문학상 대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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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속심 기자 sisatim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