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읍시다 (1702)] 겨울방학
최진영 저 | 민음사 | 304쪽 | 13,000원
[시사타임즈 = 박속심 기자] 『겨울방학』은 『팽이』 이후 6년 만에 묶는 그의 두 번째 소설집이다. 6년의 시간을 통과하며 최진영은 그가 언젠가 인터뷰에서 했던 말처럼(“이제 막, 1초가 지났어.”) 신중하게 눈을 한 번 깜빡인 것 같다. 폭력과 고통의 세계를 거침없이 펼쳐 보였던 이전과는 조금 달라진 자세와 눈빛으로 우리의 아홉 살을, 열두 살을, 그리고 현재를 바라본다. 세계의 불행과 가혹함보다 그 시간을 통과해야만 하는 이들의 말 한마디와 걸음걸이, 쪼개어 자는 잠을 관찰한다. 사랑하면서 미워하고, 착하면서 나쁜 마음의 모양들을 소중히 보관한다.
여전히 최진영의 인물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가난이다. 늘 아쉽고 불안한 현재와 그로 인해 잡히지 않고 멀기만 한 미래. 그러나 최진영의 인물들은 두려움을 통과해 나아간다. 평화로운 것처럼 보이지만 아슬아슬하게, 끝일 것 같지만 계속된다는 마음으로.
수록작 「겨울방학」의 고모는 아홉 살 난 조카의 순수해서 나쁜 말들을 듣는다. “고모는 가난하니까 이런 데 사는 거잖아”라고 말하는 아이를 향해 고모가 되돌려 준 것은 가난을 지우는 친밀감의 시간이다. 「돌담」의 주인공 ‘나’가 다니는 회사도 한 사람의 미래와 현재를 갉아먹는다.
정규직 대신 무기계약직으로 사람을 고용하고, 독성 물질인 프탈레이트 가소제가 첨가된 장난감을 팔면서도 ‘그 정도로 사람 안 죽는다.’는 말만 되풀이하는 회사. ‘나’는 그들에게 항의하고 그들의 방식을 거부한다. 협박당하고 일상이 무너질까 두렵지만 다시 찾은 고향 동네에서 ‘내가 무엇이 되고 싶었는지’를 생각한다. 생존을 위한 나쁜 관성이 쉽게 존엄을 해치는 날들에도, 소중한 것이 뭔지 모른 채로 살고 싶지 않다는 마음을 단단히 쌓는 인물들이 『겨울방학』에 있다.
대책 없는 낙관이 아닌 바닥으로부터 건져 올린 희망을 말하기 위해 작가는 우주를 동원해 쓴다. 우주 입장에서는 티끌 같은 우리가 어째서 티끌보다 더 작은 희망을 지니고 함께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사람을 사랑하는 일에 대해 말한다.
수록작 「첫사랑」의 주인공 ‘혜지’가 사랑하는 것은 망원경으로 보는 별과 망원경으로 보지 않아도 되는 ‘우미’다. 혜지는 태양과 지구의 거리가 달라지면 지구의 생명이 박살나듯, 우미와 자신의 거리가 달라지면 자신의 세계도 박살나리라는 것을 깨닫는다. 우주의 이치를 깨닫는 것처럼 사랑을 깨달은 것이다.
「어느 날(feat.돌멩이)」의 배경은 미 대륙만 한 크기의 돌멩이가 지구를 향해 날아오는 종말 직전의 ‘어느 날’이다. 종말을 막을 방법은 없지만, “우리가 가까운 곳에서 죽으면 좋겠다.”는 엄마의 말에 ‘나’는 생각한다. 우리가 아무리 멀어도 우주의 관점에서 보면 충분히 가깝다고, 영영 함께인 것이라고 말이다. 최진영의 소설들이 알려 주는 것은 그런 것들이다. 함부로 절망이라고 말하지 않는 법. 섣불리 희망이 없다고 말하지 않는 법. 소중한 것을 감별하는 법.
소설집 『겨울방학』을 읽는 일은 바닥에 주저앉아 모래와 먼지를 헤치고 보물을 찾는 일과 닮았다. 날이 어두워지고 손이 더러워지더라도, 뒤섞이고 탁한 바닥에서도 우리는 결국 작게 빛나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작가 최진영 소개
박범신, 공지영, 황현산 등 심사위원들의 만장일치로 제15회 한겨레문학상에 당선된 작가. 1981년 눈이 많이 내리던 날 태어났다. 유년기에 이사를 자주 다녀서 어딜 가도 내 집, 내 고향 같다. 소설가가 되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지만 소설은 쓰고 싶었다. 낮엔 일하고 밤엔 글 쓰다가 2006년 [실천문학]으로 등단했다. 등단 2년 후부터 낮엔 글 쓰고 밤엔 푹 잤다. 다음 생엔 적은 돈으로도 우주여행이 가능한 시대 혹은 행성에 태어나고 싶다. 은근히 열정적으로, 다음 생의 우주를 치밀하게 준비 중이다. 장편소설 『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 『끝나지 않는 노래』 『나는 왜 죽지 않았는가』 『구의 증명』 『해가 지는 곳으로』, 『이제야 언니에게』, 소설집 『팽이』가 있다. 신동엽문학상,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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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속심 기자 sisatim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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