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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캠페인:책을 읽읍시다]

[책을 읽읍시다 (1709)] 멀리 있다 우루는 늦을 것이다

[책을 읽읍시다 (1709)] 멀리 있다 우루는 늦을 것이다

배수아 저 | workroom(워크룸프레스) | 168| 13,000원 

 

 

[시사타임즈 = 박속심 기자] 잃어버린 시간. 소설은 기억을 잃은 여자와 남자가 머무는 여관방에서 시작된다. 오후 네 시. 탁자에는 123일 자 신문이, 96세로 죽은 어느 영화감독의 부고 기사가 놓여 있다. 누군가 방문을 두드려 무녀와의 만남이 예정되어 있다고 알려온다. 누군가 전화를 걸어와 결혼식 배가 곧 출발하니 바다로 와야 한다고 알려온다. 이들은 무녀의 집을 방문한다. 여자의 이름은 아마도 우루, 사진을 찍기 위해 여행 중이고, 여자와 남자는 먼 길을 떠난 결혼식 하객일지도 모른다. 이들은 바다로 간다. 그리고 남자가 사라진다.

 

다시 여자. 여자는 방에서 즉흥적으로 걷다가, 춤을 추다가, 글을 쓰다가, 라디오를 켠다. 동물원에서 한 남자가 코요테 우리에서 죽은 채 발견됐는데 남자와 코요테의 이름이 같았다는 뉴스와 표류하는 몽상가들의 배 이야기. 그러다 오후 네 시가 되자, 라디오 전파가 교란되다 비명과도 같은 한 구절이 들려온다. “어머니가 죽었다 내 기원의 징후가 사라졌다!” 여자는 몸을 일으켜 요리를 하고 이미 와 있는 손님과 음식을 나눈 다음, 자신이 쓴 글을 읽고, 모르는 사람에게서 걸려 온 전화에 대해 이야기한다. 자신이 기억하지 못하는 어린 시절에 대해, 소녀들 네 명의 즉흥 연극에 대해. 그리고 즉흥 연극을 둘러싼 이야기와 우루라고 알려진 여자의 이야기가 섞여 들기 시작한다.

 

작가가 낭송하기 위해 써내려간 이 소설에는 도처에 목소리들이 산재해 있다. 산재한 목소리들은 우회적으로 그러면서 필연적으로 중첩되며 하나가 되어 간다. 불규칙적으로 움직이는 춤과 같이 순간순간 드러나고 사라짐을 반복하는 과정. ‘목소리-소설로 읽혔던 글은 이제 -소설로 읽히기 시작한다. 인물들은 물론 실제로 목소리를 주고받고 구체적인 몸짓을 취하기도 한다. 목소리에서 목소리로, 몸짓에서 몸짓으로, 목소리에서 몸짓으로, 몸짓에서 목소리로. 현실은 연극이 되고, 연극은 현실이 되어 간다. 그렇게 소설은 다층적으로 뒤섞이면서 이제까지 우리가 알고 있다고 여겼던 것들에 대해 스스로 되묻게 만든다.

 

 

작가 배수아 소개

 

1965년 서울에서 태어나서 이화여대 화학과를 졸업했다. 1990년대에 등장한 젊은 작가 가운데에서도 그녀는 독특하다. 이화여대 화학과에 입학한 배수아는 국어 과목을 아주 싫어했다. 당연히 소설 같은 것은 생각도 해보지 않았다. 대학을 졸업하고 몇 년을 놀다가 공무원 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20대 후반으로 접어들었다는 자의식으로 인해 소설을 쓰게 됐다. 1993년 서점에서 단지 표지가 이쁘다는 이유로 우연히 집어든 문학잡지 소설과 사상겨울호에서 ''신인작가 작품공모'' 광고를 보았다. 그리고 천구백팔십팔년의 어두운 방이 당선되면서 등단했다.

 

나는 이제 니가 지겨워는 이지적이면서 자기 주장이 강한 문체를 통해 남녀관계의 속물성을 파헤치고, 독신녀의 시선을 통해 보여지는 경제섹스결혼관자기세계에 대한 솔직하고 쿨한 느낌의 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그 사람의 첫사랑에서 주인공들은 모두 사회로부터 버림받거나 스스로 추락중이다. 그들의 배후에는 일탈과 파격, 섬뜩한 비애가 차갑게 펼쳐져 있다. 세기말의 쓸쓸함과 밀봉된 희망, 피학적인 아픔이 한꺼번에 만져지는 작품이다.

 

붉은 손 클럽은 외형의 독특함을 넘어, 단자화된 관계에 상처받으면서도 결국 또 다시 사랑을 선택하는 인간의 심리, 사랑의 대상을 향한 비이성적 감성들, 일상에 물든 관계의 지리멸렬함을 포착해 내는 배수아의 섬세한 감성과 날카로운 시선을 느낄 수 있다. 심야통신은 저마다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그녀 특유의 감각 더듬이로 포착하고 있는 창작집이다.

 

철수는 인간 존재 안의 어둠과 생의 운명적인 폭력 속으로 더 한층 깊이 탐사해 들어가는 배수아 소설의 불온한 매력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바나는 소설 속의 ''가 외국 여행 중에 산 중고 자동차의 이름이다. , '그녀'로 불리는 이바나는 여행기를 편집하는 편집자에겐 신비의 여성이다. '이바나'는 어느 도시의 이름이기도 하고, 어느 지방에선 흔한 이름이기도 하다.

 

이 외에도 동물원 킨트, 이바나, 일요일 스키야키 식당, 당나귀들, 독학자, , 에세이스트의 책상, 북쪽 거실, 올빼미의 없음, 서울의 낮은 언덕들, 알려지지 않은 밤과 하루, 뱀과 물등을 썼다. 창작집 푸른 사과가 있는 국도』『그 사람의 첫사랑등과 장편소설 랩소디 인 블루』『부주의한 사랑』『붉은손 클럽이 있다. 또한 몸을 주제로 한 에세이 내 안에 남자가 숨어 있다를 펴냈다.

 

역서로는 프란츠 카프카-2003년 한국일보문학상, 2004년 동서문학상을 수상했다. 전통 소설의 인물과 이야기 중심에서 벗어나 어떻게 서술 자체가 이야기를 만들어가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인 무종을 통해 2010년 제34회 이상문학상 우수상을 수상하였으며 현재 월요일 독서클럽회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독특한 문체와 색깔로 열혈 독자군을 거느려 왔던 그녀는 이제 사유하는 문장의 힘으로 새로운 독자들과도 만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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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속심 기자 sisatim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