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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캠페인:책을 읽읍시다]

[책을 읽읍시다 (1714)] 이름 없는 사람들

[책을 읽읍시다 (1714)] 이름 없는 사람들

박영 저 | 은행나무 | 212| 13,000

 

 

[시사타임즈 = 박속심 기자] 빛과 그림자의 공존이 필수불가결적인 것처럼, 화려한 도시와 빛나는 타워 그 뒤에 가려진 고립된 땅으로부터 이야기는 잉태된다. 삶의 벼랑 끝에 간신히 버티고 선 사람들에게 생명보험증을 담보로 돈을 빌려주는 ’, 아버지의 빚을 갚기 위해 재의 용역이 되어 표적을 처리하는 ’, 재를 향한 복수의 칼날을 갈며 에게 접근한 서유리’. 외줄을 타는 듯한 불안의 소용돌이 속에 던져진 세 사람의 이야기가 파국으로 치닫는 순간 의문의 여인 의비가 나타나고, 그녀의 등장과 함께 소설은 커다란 변곡점을 만들며 예상을 뒤엎는 반전을 선사한다.

  

불황이 닥친 하나시엔 시위가 끊이지 않았다. 기업들은 줄줄이 도산했고, 개인 파산자들이 넘쳐났다. ‘도 예외는 아니었다. 아버지의 빚을 갚기 위해 의 용역이 되어 그가 지목한 사람을 한 명씩 처리하며 살아가고 있다. 표적은 생명보험증을 담보로 재에게서 돈을 빌려간 후 갚지 못한 사람들. 그들을 처리할 때마다 는 새로운 이름을 얻는다. 첫 임무는 종이에 선을 긋는 일이었다. 열세 살이었던 는 재의 사무실 앞을 지나는 사람들의 머릿수를 세며 선을 그었다. 그렇게 열두 시간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선을 그었고, 그해 겨울이 되어 새로운 명령을 받는다. 재가 지정한 장소로 가서 사진 속 사람들을 찾아내는 일. 표적을 찾아내 재에게 보고하면 그가 다음 행선지를 알려주었다.

 

재는 에게 좀 더 빠르게 빚을 갚을 수 있는 일을 제안했다. 표적을 제거하고 시신을 캐리어에 담아 처리하면 되는 일이었다. 표적을 한 명씩 처리할 때마다 빚도 서서히 줄어들었다. 그렇게 마지막 표적을 제거하고 자유를 목전에 둔 날, 문제가 생기고야 만다. 처리 대상이었던 표적이 자살 신고 후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다. 캐리어에 시신을 담아 나가려던 찰나, 경찰이 들이닥치는 소리가 들리자 는 서둘러 몸을 피한다. 발각되지는 않았지만 자살한 것으로 추정되는 시신이 캐리어에 들어 있자 형사들은 점점 수사망을 좁혀온다. 재는 에게 당분간 하나시로 돌아오지 말고 B구역에 가서 일을 처리하라고 명령한다. B구역은 수년 전 화학 공장들이 화재로 폭발한 뒤 폐쇄된 재난 구역이었다.

 

커다란 도시에 공존하는 빛과 그림자가 있다. 하나시를 상징하는 T타워와 그 주변을 환히 밝히는 도심의 야경. 하지만 그 화려함에 가려 미처 보이지 않는 사각지대에는 철거를 앞둔 달동네가 있고, 경찰과 군인마저 철수하여 세상으로부터 철저히 버려진 땅 B구역이 있다.

 

하늘 높이 솟은 T타워는 소설 속 인물들의 심부를 뚫고 지나가는 하나의 상징이다. 벼랑으로 떨어지지 않기 위해 몸부림치는 사람들과 그들을 발판 삼아 더 높이, 더 빠르게 오르려는 사람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서로 맞물려 돌아가는 톱니바퀴처럼 T타워를 중심에 둔 거대한 엔진으로 작동한다. 반면 재가 구축한 정교한 나선형 구조 속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한 사람들은 이름마저 잃고 경계로 내몰린다.

 

박영이 주목한 것은 바로 그 이름 없는 사람들이다. 소설이 품고 있는 비밀과 가려진 진실은 B구역에 드리워진 베일을 직면하면서부터 밝혀지기 시작하고, 파국으로 향하는 듯하던 이야기는 새로운 비밀이 드러남과 동시에 절정을 향해 내달린다.

 

이름 없는 사람들은 작가의 섬세한 묘사력과 이야기의 긴장감을 단 한순간도 놓치지 않고 이끌어 나가는 탄성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사채업과 살인청부, 죽여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자와 살아남아야만 복수할 수 있는 자. 잔인하고 비극적으로만 느껴질 수 있는 이 소설이 페이지를 넘길수록 더욱 빛을 내는 이유는 작가가 작품을 통해 보여주고자 하는 메시지가 의미심장하고 그것을 전달하는 소설적 장치의 무게 또한 결코 가볍지 않기 때문이다.

 

 

작가 박영 소개

 

1983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고려대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하고 2015년 경인일보 신춘문예에 아저씨, 안녕이 당선되어 데뷔했다. 2017년 첫 장편소설 위안의 서로 제3회 황산벌청년문학상을 수상했다. 2018년 두 번째 장편소설 불온한 숨을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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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속심 기자 sisatim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