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읍시다 (1726)] 달세뇨
김재진 저 | 문학동네 | 328쪽 | 15,500원
[시사타임즈 = 박속심 기자] 로컬 가이드로 살아가고 있는 하유에게 어느 날 “미리 위독. 의식불명”이라는 한 통의 문자가 날아든다. 미리는 한때 더할 나위 없이 사랑했으나 “쿨하게 살지 못했으니 이별이라도 쿨해야지”라는 말을 남겨둔 채 홀연하게 하유를 떠나버린 전부인이다. 신보다는 별을 믿는 사람, 우리가 만났던 것도 서로 진화하기 위해 필요했다고 말하는 사람, 뇌에 의존하지 말고 온몸으로 대상을 느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 미리. 그런 그녀가 의식불명이라는 소식에 하유는 안절부절못하다 “존재는 무의식에 의해 연결되어 있다”고 말한 ‘카모쉬’의 포스팅을 기억해낸다.
카모쉬는 최면을 통해 전생의 기억을 찾아내는 사람으로 하유는 그와 가까스로 연락이 닿아 ‘레먼테이션’이라는 센터에 다다른다. 카모쉬는 의식불명인 사람을 최면을 통해 만나보겠다는 하유의 통찰에 놀라며 미리와 접속하기 위한 세션에 돌입한다. 하유는 무의식 깊은 곳에서 미리를 만나지만, 한순간 느닷없이 돌아가신 아버지를 맞닥뜨린다. 도망치듯 외국으로 떠난 아버지, 그리고 스페인 산속 오두막에서 죽어가는 아버지의 임종을 이제야 보게 된 것이다.
소설을 이끌어나가는 또하나의 축이자, 하유의 인생에 미리만큼 영향력을 끼친 인물로 ‘무진’이 등장한다. 스스로 비승비속이라고 말하고 다니는 무진은 거칠 것 없는 청춘의 한때를 하유 그리고 ‘C’와 함께 보냈다. 무진은 C의 자살을 계기로 속세를 떠났고, 돌연 가사 장삼을 반납하고 환속했다.
“맥주 한 잔을 마실 때마다 우린 보리밭 전체를 마시는 거지” “죽음을 넘고 싶어한다는 것은 결국 죽음이 두렵다는 말이지”라는 선문답 같은 말을 하던 무진이 이제 와 다시금 하유의 수면 위로 떠오른 건 결코 우연이 아닐 터. 하유의 여정에 돌연하지만 적재적소로 등장하는 생의 조력자인 무진 역시 능청과 선문답 아래 커다란 비밀이 숨겨져 있다.
『달세뇨』에는 상처를 하나씩은 가진 인물이 등장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가는 하유, 이 세계가 몸에 맞지 않은 미리, 소중한 사람을 자살로 잃은 무진, 엄마에게 버림받은 트라우마를 가진 카모쉬. 이야기는 하유라는 거대한 기억 창고로 하여금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넘나들고, 카모쉬라는 매개로 하여금 나와 타인을 거침없이 넘나든다. 대극의 것이 하나로 이어진다는, 이어질 수 없는 것이 하나된다는, 그러니까 나와 너는 다르지 않으며, ‘인연’이라는 것은 단 하나의 끈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닌 억 겹의 타래와 같다는 것을 작가는 다성적인 형식을 통해 노래한다. 그리고 시간과 중력의 법칙 아래 인간은 스스로 한계를 짓고 말지만, 그것에서 한 발짝만 벗어나는 순간 우리는 기적 같은 세상을 맞이하고 연결될 것이라고도.
현실 세계의 법칙으로, 지구의 분별심으로, 사랑이 아닌 소유의 차원으로 닿을 수 없는 세계를 작가 김재진은 때로는 불꽃같은 정념으로 때로는 들꽃 같은 서정으로 노래한다. 하유에서 미리로, 무진으로, 카모쉬로. 한국에서 티베트로, 미얀마로, 산티아고로, 위구르로. 천의무봉한 흐름으로 시공간을 넘나드는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면, 독자들은 소설 속 인물들이 기적적으로 연결되듯 『달세뇨』를 노래하는 작가와 완벽하게 하나되는 체험을 선사받을 것이다. 중력과 차원의 법칙을 넘어선 삶의 지평선, 한계 없는 존재로 다시 태어날 출발, 그것은 바로 『달세뇨』의 첫 페이지를 여는 순간 시작될 것이다.
작가 김재진 소개
1976년 [영남일보] 신춘문예에 시, 1993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같은 해 『작가세계』 신인상에 중편소설이 당선되며 40년이 넘는 시간 글을 썼다. 글을 쓰면서도 문단과는 멀리 있고, 세속에 살면서도 세속과는 거리를 둔 은둔자로서의 삶을 추구해온 그는 우연히 듣게 된 첼로 소리에 끌려 첼리스트가 되겠다는 생각으로 음대에 입학하기도 했다. 젊은 시절 방송사 피디로 일하며 방송 대상 작품상을 받는 등 활발한 활동을 하던 중 돌연 직장을 떠나 바람처럼 떠돌며 인생의 신산(辛酸)을 겪었고, 오래 병석에 누워 고독한 시간을 보내던 어머니가 벽에 입을 그려달라고 청한 것을 계기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해 갑자기 전시회를 열고, 첫 전시회의 그림이 솔드아웃 되는 이변을 낳기도 했다.
시인으로 널리 알려진 그는 시집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삶이 자꾸 아프다고 말할 때』 『산다고 애쓰는 사람에게』 장편소설 『하늘로 가는 강』 어른을 위한 동화 『잠깐의 생』 『나무가 꾸는 꿈』 『엄마 냄새』 산문집 『사랑할 날이 얼마나 남았을까』 『나의 치유는 너다』 등을 펴냈다. 현재 파주 교하에 있는 작업실 ‘민들레 행성’에서 그림 그리기와 글쓰기에 전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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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속심 기자 sisatim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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