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읍시다 (1723)] 쓸쓸하고도 찬란한
유시연 저 | 실천문학사 | 268쪽 | 13,000원
[시사타임즈 = 박속심 기자] 유시연 소설의 강점은 크게 다섯 가지로 나눌 수 있다. 강한 흡인력으로 독자를 사로잡는 가독성, 정확하고 단아한 문체, 오랜 수련 기간을 통해 연마된 깊은 통찰과 사유, 세상을 향한 따스한 시선, 오염되지 않는 자연 속에서 상처 입은 생명체들이 다시 생명을 얻어가는 여운을 남기며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고 성찰하게 하여 지난 페이지를 자꾸 돌아보게 하고 책장을 넘기게 한다.
「이층 통나무집」에서 작가는 사려 깊은 시선으로 슬픔과 슬픔이 서로를 돌보면서 공존하는 아름다운 장면을 밀도감 있게 그렸다. 여기 두 여인이 있다. 죽은 자와 떠난 자의 뒷모습을 붙잡고 그 그림자에 갇혀 사는 여인들이다. 연희는 귀촌한 지 삼 년이 못 돼 남편 승재가 죽고 혼자 이층 통나무집을 지키며 살고 있다. 젊은 시절 집 밖을 떠돌던 남편 대신 생계를 돌봐야 했던 함양댁은 뒤늦게 재혼을 했지만 잊을 만하면 찾아오는 전남편 때문에 노심초사하며 살고 있다. 연희와 함양댁이 겪는 현재 진행형 고통은 바꿀 수 없는 운명과 어긋난 인연에서 기인한 것이지만 두 사람의 유대감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투박한 돌봄과 보살핌으로 서로의 결여를 온전히 감당하도록 해주는 섬세한 배려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들은 정확히 알지 못하는 타인의 상처 앞에서 함부로 ‘나와 같다’거나 ‘나도 안다’고 말하지 않고 슬픔의 거리를 유지해가며 그저 사소하게 서로를 살피고 돌봄으로써 마음의 빈자리를 같이 알아간다.
「깊은 밤을 지나」는 한때 시나리오 작업을 하며 잘 나가던 영화감독으로 지냈던 송수용과 황 감독이 이태리 여행지에서 만나 과거를 공유하고 현재의 시간을 재탐색하는 여행기 구조를 취하고 있다. 빠르게 변한 영화산업의 길에서 밀려난 두 남자가 서로 다른 시간에 산탄젤로 동굴성당을 돌며 성(聖)과 속(俗)의 세계를 전착해 가는 내용으로 눈부신 세상의 속도를 더욱 빠르게 하는 5G 시대의 변화 속에서 생에 천착하는 현대인의 모습을 담았다.
「설행」은 한 인간 속에 뿌리내린 깊은 어둠과 그 속에 용서와 화해의 길을 내는 실존적 몸짓을 드러낸다. 이십 년 전 군인 신분의 한 남자를 뜨겁게 사랑했던 여자는 남자가 유부남이었다는 것을 몰랐다. 그와 사랑이 깊어지던 순간 남자의 아내가 아기를 안고 관사의 문을 열었다. 사랑에 몰두한 그들은 이를 알아차리지 못했고 아내는 아이를 내려놓고 눈이 내리는 깊은 산골짜기로 들어가 겨울밤 차가운 눈 속에서 싸늘한 시체로 돌아온다. 여자와 남자는 그 마을을 떠나고, 둘은 이후 만나지 못한다. 이 사건은 두 사람의 영혼에 깊은 어둠을 남긴다.
「영혼의 집」은 농촌 마을을 배경으로 비극적인 가족사를 다루고 있지만 소재나 기법 면에서 주목을 끄는 작품이다. 시간 속에서 사건을 전개하지 않고 이미지와 이미지의 정교한 네트워크로 구성해 디테일에서 오는 갑갑함과 피로감을 상상력으로 소설 공간을 확장해 미학적인 즐거움을 선사한다. 중심인물인 영모는 어머니를 잃고 ‘노인’의 보살핌으로 두 살 차이인 순임이 고모와 함께 정을 나누며 자랐다. 영모는 순임이 고모로부터 노인이 아프다는 연락을 받고 시골집으로 내려와 얼마간 지내는 동안 불행했던 가족사의 숨겨진 비밀을 알게 된다. 할아버지가 영모에게 유산으로 남겨주겠다던 시골 재산이 순임이 고모 아들에게 상속된다는 것을 안 영모는 잘못을 바로잡는다.
「야간 산행」, 「나는 모른다」, 「쓸쓸하고도 찬란한」 세 작품도 급격하게 변화하는 삶을 응시하며 고달픈 현실 속에서도 세상에 대한 따뜻한 시선과 배려, 통찰력을 보여준다. 작가의 말에서도 암시하고 있듯 작가는 나고 자란 강원도의 깊은 자연의 생명력을 각각의 단편 속에 고르게 나눠주며 공간과 시간, 인물들을 보듬어 안고 쓸쓸하지만 찬란한 삶의 순간순간을 감각적인 문체로 전개하며 서사의 세계로 독자들을 끌어들인다.
바흐찐이 『소설미학』에서 ‘모든 예술과 미학은 공통적으로 건축양식과 형식을 가지고 예술과 미학을 통일시킨다.’고 주장하듯이 유시연은 『쓸쓸하고도 찬란한』 9편의 단편을 통해 바흐찐의 말처럼 ‘다양한 형식으로 그 공식에 맞춰 노래로 변주하고, 장식하고, 화학적으로 변화시키고 정당화시키며 확증한다.’ 하나의 미학성을 완성하기 위해 주변 재료들을 믹서하여 소재나 기법의 참신함으로 자연 생태의 원초적 울림을 메아리처럼 들려주는 여운을 남기며 감동을 더한다.
작가 유시연 소개
강원도 정선에서 태어나 동국대 예술대학원을 졸업했다. 2003년 [동서문학] 신인상을 받고 등단했다. 소설집으로는 『알래스카에 눈이 내리지 않는다』, 『오후 4시의 기억』, 『달의 호수』. 장편소설 『부용꽃 여름』, 『바우덕이전』, 『공녀 남아』 등이 있다. 정선아리랑문학상과 현진건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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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속심 기자 sisatim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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