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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캠페인:책을 읽읍시다]

[책을 읽읍시다 (2002)] 완벽한 생애

[책을 읽읍시다 (2002)] 완벽한 생애

조해진 저 | 창비 | 176 | 14,000

 

[시사타임즈 = 박속심 기자] 조해진의 신작소설 완벽한 생애. 장을 돌연 그만두고 제주로 향하게 된 윤주, 윤주의 제주 생활 동안 그의 방을 빌리며 한국여행을 하게 된 시징, 꿈을 접고 신념을 작게 쪼개기 위해 제주로 이주한 미정의 이야기가 다정히 주고받는 편지처럼 이어진다.

 

직장에서 참을 수 없는 모욕을 당하고 바로 그 자리에서 도망친 뒤 표류하는 배처럼 하루하루를 보내던 윤주는 일년 만에 전화를 걸어 온 미정에게 실직자가 되어 거리를 배회 중이라고 털어놓게 된다.

 

이참에 제주에 놀러 오라는 미정의 제안에 윤주는 선뜻 제주행을 결심하게 된다. 제주는 십년 전, 이제는 헤어진 옛 연인인 선우와 여행 계획만 세워두고 끝내 가지 못했던 곳이다. 제주에 머물기로 약속된 기간은 그리 길지 않았지만 윤주는 자신의 방을 렌털 사이트에 등록해둔다.

 

현실적인 문제들은 윤주를 다시금 서울로 불러들이겠지만, 그는 다시는 서울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마음으로 자신의 방을 타인에게 대여하기로 결심한다. 그런 윤주의 방을 사이트에서 발견한 시징은 방을 빌리고 빌려주는 사이에서는 나누기 어려운 친밀한 말들을 담은 메일을 보내온다.

 

윤주의 방이 있는 영등포는 시징의 연인이었던 은철의 고향이다. 홀연히 곁을 떠난 은철이 영등포 어딘가에서 웃고 떠들고 자신과의 추억이 담긴 홍콩에 대해 늘어놓고 있을 것만 같아, 시징은 희박한 가능성의 우연에 기대어 영등포의 윤주의 방을 놓치지 않으려고 했던 것이다.

 

한편 윤주를 자신이 지내는 공간으로 초대한 미정은 제주 신공항 건설을 반대하는 활동가로 살고 있다. 미정은 사회를 위한 옳은 일을 해보겠다는 커다란 신념을 가지고 있던 사람. 그 신념에 금이 가기 시작했을 때 미정은 모든 것을 뒤로한 채 제주로 내려와 신념을 작게 나누는 절차를 밟게 된다.

 

소설은 이렇듯 인물들이 각자의 생애가 기반을 두고 있던 견고함에서 도망치며 시작된다.

 

윤주와 시징 그리고 미정은 자신이 발을 디딘 삶에서 벗어나 타인의 방에 머물며, 그곳에서 너무도 거대하고 아름다워서 오히려 고통이 되었던 사랑과 신념을 작게 조각내는 일을 기꺼이 시도한다.

 

어느 날 갑자기 떠나간 은철과의 이별을 받아들일 수 없던 시징은 오랜 시간 과거 속에서 현재를 살아야 했다. 출장 차 방문한 서울에서의 짧은 일정에도 은철을 찾아 헤매며 영등포 구석구석 눈길을 보내던 시징은, 윤주의 방에서 보내는 시간 동안 마침내 은철에 대한 마음을 정리할 수 있게 된다.

 

베트남전에 참전해 민간인에게 총과 칼을 들이댔을지도 모르는 아버지를 둔 미정은 자신이 옳고 그름에 대한 확신 아래 판결을 내리는 법조인이 될 수 있는가 끊임없이 물었다. 그 과정에서 커져버린 내면의 갈등은 미정을 제주로 도망치게 만드는데, 미정은 제주에서 머무는 동안 자신이 언제까지라도 지키고 싶었던 것들을 내려놓고 가벼워지는 연습을 하게 된다.

 

삶은 완벽할 수 있을까. 아름다운 사랑과 견고한 신념을 지켜낸 삶은, 완벽하다고 말해도 되는 것일까. 그 전에 다시 물어야 할 것이다. 삶은 완벽할 필요가 있는가. 헤어진 연인인 선우를 찾아간 윤주는 멀찍이서 그의 무방비한 행복에 빠진 얼굴을 보고는 문득 떠올려본다.

 

윤주와 선우가 연인일 때도 그가 그토록 행복해한 적이 있었는가. 곧 윤주는 물음을 거둔다. 선우는 그저 그의 생애에서는 필연적인 과정을 밟고 있을 뿐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윤주는 안다. 자신의 생애에도 지나가야만 하는 어떤 과정이 분명히 있으리라는 것을. 여행지에서 종종 마주하는 예상치 못한 장면들처럼, 우리 삶에도 무수히 어긋나고 다시 맞물리는 장면들이 있을 뿐이라는 것을.

 

우리는 자신의 생애 속 장면들을 때로 아름답게 기억하기도 하고 때로 망각의 영역에 보관하기도 하며 각자의 여행을 해나갈 것이다. 이 소설은 괜찮다 말하며 곁을 내어줄 것이다. 방문을 열어 그 안에 머물게 하고 또한 다시 떠나갈 힘을 전해주기도 할 것이다.

 

 

작가 조해진 소개

 

1976년 서울 출생. 2004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에 중편소설 여자에게 길을 묻다가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천사들의 도시, 목요일에 만나요, 빛의 호위, 장편소설 한없이 멋진 꿈에, 로기완을 만났다, 아무도 보지 못한 숲, 여름을 지나가다, 단순한 진심, 환한 숨 등이 있다. 신동엽문학상, 이효석문학상, 김용익소설문학상, 백신애문학상, 형평문학상, 대산문학상, 김만중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영화를 장면으로 기억하는 내게는 인생 영화가 딱 한 편 있지 않고, 대신 끊임없이 재생해보는 장면들이 있다. 지금까지 잊은 적 없고 앞으로도 잊고 싶지 않은 두 장면이 있는데, 슬픔이 차오를 때마다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잔잔하게 일렁이는 차이밍량 감독의 [애정만세] 엔딩 신과 언제라도 나를 웃게 해줄 수 있는 시드니 루멧 감독의 [허공에의 질주] 속 생일 파티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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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속심 기자 sisatim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