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읍시다 (209)] 모든 상처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량원다오 저 | 김태성 역 | 흐름출판 | 368쪽 | 14,000원
[시사타임즈 = 박속심 기자] ‘중화권 젊은이들이 가장 사랑하는 철학자’ ‘현대 중국을 거침없이 비판하는 젊은 논객’ ‘철학적 분석과 문학적 글쓰기를 겸비한 중국의 알랭 드 보통’으로 꼽히는 량원다오. 이 책은 그가 연인을 잃은 상실의 슬픔에 빗대어 하나의 세계가 닫히는 고통을 그린 산문집이다.
이 책에 담긴 글은 대부분 홍콩의 한 유력 일간지에 2년간 연재한 글을 모은 것이다. 차가울 정도로 이성적이며 투사에 가까울 정도로 맹렬한 이미지의 그가 ‘사랑과 이별’에 관한 글을 쓴다는 사실만으로도 중국 문학계에서 큰 화제가 됐다.
량원다오는 중화권에서는 매우 유명한 지식인이자 철학자이며 큰 영향력을 가진 인물이지만 우리에게는 사실 생소하다. 현대 중국의 문화 수준은 이미 오리엔탈리즘을 넘어서기에 충분할 정도로 웃자라 있다. 바로 이 책 『모든 상처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에서 량원다오가 보여주는 그 끝을 알 수 없는 깊고 넓은 사유의 문장들이 그 실례라고 할 수 있다.
상처를 헤집고 슬픔의 깊이를 재는 치유의 시간
『모든 상처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는 8월1일부터 12월31일까지 153일간 만남과 이별, 고독과 번뇌, 고통과 성찰 등에 대한 단상들을 일기 형식으로 써내려간 자기 해부의 시문(詩文)이다. 10여 개의 매체에 글을 기고하는 인기 칼럼니스트, TV 프로그램의 진행을 맡고 있는 유명 언론인, 화제의 베스트셀러 작가 등 겉으로는 어떤 일에서든 성공한 ‘위너’의 삶을 살던 그가 사랑의 범주 안에서 돌이킬 수 없는 실패와 좌절을 맛보는 ‘루저’의 모습을 그려낸다.
그는 자신의 과오를 후회하고, 떠나간 연인을 원망한다. 연인이 떠난 집에 홀로 남아 그가 남긴 물건에 의미를 부여하다 허무감에 빠지기도 한다. 또 언제일지 모를 우연한 재회를 꿈꾸고, 절망과 슬픔 가운데 종교에 의지하는 등 상처에 몸부림치면서도 글쓰기를 계속한다. 그 일상과 상념을 묵직하고 담담한 텍스트로 담은 결과물이 바로 이 책이다.
량원다오는 그에게 상처를 준 연인을 기억에서 지우거나 섣불리 치유나 회복이라는 말을 꺼내지 않는다. 도리어 집요하리만큼 자신의 연애와 옛 연인 그리고 그와 관련한 책, 영화, 역사 속 인물까지 끄집어내어 상처를 헤집는다. 슬프다고 말하기보다는 슬픔의 근원과 출처를 철저히 밝히고 그 깊이를 재는 것. 그것이 량원다오만의 치유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이 책에 실린 글들은 모두 허구라고 밝힌 적이 있다. 그러나 만남과 이별, 갈등과 화해 등 사랑의 전 과정을 경험한 사람들만이 공감할 수 있는 섬세한 이야기를 보면 과연 허구일지 의심이 든다.
그는 잃어버린 사랑의 대상, 즉 헤어진 연인을 ‘그’라는 대명사를 통해 곳곳에 등장시킨다. 그러나 ‘그’가 남자인지 여자인지, 말하는 화자가 남자인지 여자인지조차 분명하게 알 수 없다. 진실과 허구, 현재와 과거, 기억과 상상의 경계를 허문 그의 글쓰기는 내면의 흐름을 그대로 보여준 것이다. 그리하여 독자들이 그의 이야기를 따라가며 자신의 상처를 피하지 않고 마주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준다.
사랑과 이별을 하면서 품는 갖가지 불가해한 감정과 마주보다
날카로운 통찰력과 시대에 대한 비판정신을 앞세운 량원다오의 지적 커리어는 이 책으로 그 정점을 보여준다. 이전에 시사, 음식, 영화, 음악, 서평, 문화평론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현란한 문체와 풍부한 지식, 철학적 분석으로 문단과 대중의 지지를 받았던 그가 유일하게 정복하지 못한 영역이 바로 '사랑'이었기 때문이다.
가장 무덥고 나른한 한여름에서 가장 춥고 쓸쓸한 한겨울까지 계절의 변화처럼 매일 그 모습을 달리하는 내면의 파동을 보고, 듣고, 깨달은 량원다오의 생각들을 쫓아가다 보면 우리 역시 사랑과 이별을 하면서 품는 갖가지 불가해한 감정들에 관해 깊은 사유를 할 수 있다. 지나치게 가벼운 텍스트들이 넘치는 요즘, 사유의 깊이가 남다른 독서 체험을 열망하거나 상실의 고통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작을 희망하는 독자에게 이 책은 특별한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작가 량원다오 소개
1970년 홍콩에서 태어나 타이완에서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다녔고, 홍콩 중문대학을 졸업했다. 이런 다양한 성장 체험으로 그는 일반인이 갖지 못하는 폭넓고 공평한 시각으로 중국 문제를 들여다보게 되었다. 1998년부터 홍콩의 이름난 간행물인 〈신보(信報)〉와 〈명보(明報)〉에 칼럼을 쓰기 시작하면서 이십대의 이른 나이에 평론계에 혜성처럼 등장했다. 그는 특히 중국과 타이완, 홍콩 등 중화권 전체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으로 평론을 쓰고 있다. 최근 중국 내정에 대해서도 홍콩의 봉황TV와는 또 다른 시각을 보여줘 중국 대륙에서 열광적인 환영을 받기도 했다.
량원다오는 스스로를 인류학자로 규정하고, 문서와 기록을 철저히 분석해가며 주변의 현상과 사물을 관찰한다. 중국 학자들 사이에서는 발견하기 힘든 ‘시민도덕civic virtues’과 ‘시민사회’ 이해에 기반한 그의 글은 이성적이고 폐부를 찌르는 듯 날카롭다. ‘상식 추구’를 지식인의 이상으로 꼽으며 타이완 사람이 모르고, 홍콩 사람이 놓치고, 중국 본토 사람이 외면하는 많은 상식을 현실로 끄집어내는 작업을 쉼 없이 하고 있다. 홍콩 이공대학과 홍콩대학 강사, 녹색평화 이사, 홍콩예술발전국 예술고문 등을 역임한 바 있으며, 지은 책으로 『아집(我執)』, 『너무 시끄럽다』 등이 있다.
박속심 기자(sisatime@hanmail.net)
<맑은 사회와 밝은 미래를 창조하는 시사종합지 - 시사타임즈>
<저작권자(c)시사타임즈.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시사타임즈 홈페이지 = www.timesisa.com>
'[시사 캠페인:책을 읽읍시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책을 읽읍시다 (211)] 선셋 파크 (0) | 2013.03.28 |
---|---|
[책을 읽읍시다 (210)] 백정, 외면당한 역사의 진실 (0) | 2013.03.27 |
[책을 읽읍시다 (208)] 불의 아이 물의 아이 (0) | 2013.03.25 |
[책을 읽읍시다 (207)] 가족의 나라 (0) | 2013.03.22 |
[책을 읽읍시다 (206)] 돌격 영웅전 (0) | 2013.03.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