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읍시다 (2187)] 밑바닥에서:간호사가 들여다본 것들
김수련 저 | 글항아리 | 256쪽 | 16,000원
[시사타임즈 = 박속심 기자] 서울의 한 대형 병원 중환자실에서 7년간 간호사 생활을 한 저자의 에세이 『밑바닥에서』. 작가가 간호사로서 쓴 경험은 이제껏 드러난 적이 거의 없는 내용이다. 그는 자신을 밑바닥 존재로 규정지었다. 바닥은 더럽고 깊고 어둡다. 그 바닥에서 울리는 자기 목소리를 사람들이 달갑잖게 여길까 두려웠지만, 절망이 평생 계속될까봐 입에 메가폰을 댔다. 그 소리는 멀리 깊게 퍼져나간다. 그의 정직하고 다정한 글을 통해서.
간호사들의 근무는 3교대로 이뤄진다. 데이 출근날이면 그는 새벽 3시에 눈을 뜬다. 신규 때는 밤새 얕게 잠들거나 아니면 아예 못 잤다. 장독 같은 이불에서 몸을 빼 병원에 도착하면 4시. 전산을 보며 환자의 병력과 현 상태를 살피고 적는다.
인계가 끝나면 환자 상태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확인한다. 약 개수를 세고 아침 약을 투여한다. 정맥투여되고 있는 약물의 잔여량을 확인한다. 배액관, 카테터, 환자의 피부와 가래 상태, 인공호흡기 투석기 투여량, 체온계의 배터리 등을 점검한다.
많은 간호사의 일상은 꼬인 실타래 같다. 모든 것이 갑자기 엉킨다. 수많은 펌프를 꽂을 전원이 부족한데 잠깐 미루면 배터리 알람이 울리고, 환자가 기침했는데 전화를 먼저 받으면 인공호흡기 서킷이 가래로 더러워지고, 환자가 잠들도록 투여하는 약의 농도가 모자라 투약을 먼저 하면 환자가 몸부림치기 시작해 투약 라인이 빠져 줄줄 샌다. 투석기에 연결할 투석액에 모자란 전해질을 섞으려고 혈액검사 결과를 기다리면 그사이 다른 일들이 닥쳐 처리한 후 급하게 달려와 전해질을 섞고, 그 전해질을 섞는 동안 다른 환자를 재우는 약이 다 닳았다는 알람이 울려댄다.
저자는 2017년을 잊지 못한다. 자신이 한계가 많은 사람이란 건 알았지만, 그해 한 선배 간호사는 견딜 수 없을 만큼 가혹했다(물론 다른 많은 선배는 너그럽고 좋은 사람들이었다). 당시 저자는 격무에 시달려 우울증을 깊이 앓던 중이었고, 수면장애를 겪었다.
하지만 강바닥 같은 현실에서 있는 힘을 다해 고개를 수면 밖으로 내밀면 선배의 발이 자신을 밟아 물속으로 밀어넣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 시절 이른바 ‘태움’으로 자기 삶을 끝낸 박선욱 간호사의 부고를 접하면서 저자는 내가 바로 그였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한 환자가 있었다. 그는 신장암 수술을 받고 중환자실로 옮겨져 의식을 회복하던 중 혈압이 조금 떨어졌다. 담당 간호사가 수술 부위를 확인하려고 복대를 열었다가 다시 매는 순간 환자는 아프고 짜증났던 것 같다. 그래서 갑자기 간호사 얼굴을 후려쳤다. 또 다른 환자가 있었다. 그는 복강 내 출혈로 출혈 부위 혈관을 막고 왔었다. 시스가 들어간 오른쪽 대퇴동맥을 구부려서는 안 되었기에 간호사는 움직이지 말 것을 당부했지만 그는 계속 움직였다. 안전을 위해 간호사가 오른 다리를 편 상태로 억제대를 적용하자 환자는 화가 났던지 휴지에 침을 뱉어 바닥에 던졌다.
저자는 “병원은 간호사들이 기계가 되길 바라는 것 같지만 우리는 섬세한 감정을 가진 인간이다”라고 말한다.
그래서 병원에 요구하며 목소리를 높일 수밖에 없다. 간호사들은 덜 바쁘고 덜 힘들고 덜 비참하면 환자에게 더 친절하고 더 관대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려면 간호사를 더 충원해야 한다. 그런 법을 제정할 기회가 수십 번 있었다. 하지만 국가와 병원은 그걸 놓쳤고 그래서 간호사들은 자신이 반은 인간이고 반은 환자에게 공감 못하는 짐승이라 느낀다.
대부분의 사람은 간호사가 하는 일이 정확히 뭔지 잘 모른다. 저자는 주사 놓고 똥 치우고 환자 손발 닦는 일 말고 자신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이 책에 자세히 풀어놓았다. 그들은 속도가 관건인 환자에 대한 대응을 일선에서 하고 있다. 중환자를 보는 데 있어 모든 것은 속도와 시기에 대한 문제고, 그래서 간호사들이 치료의 질을 결정한다. 트레이닝된 간호사들의 능숙함과 판단력, 빠른 실행력에 환자들의 목숨이 달려 있을 때가 많다. 하지만
이 책에서 지적하듯 간호사들의 프리셉터-프리셉티 교육제도는 고질적인 문제로 남아 있고, 여러 제도적 난관이 그들을 그만두게 만든다. 우리는 누구나 환자가 될 수 있다. 병원과 국가와 사회가 간호사의 입을 틀어막은 값을 지금도 병원으로 실려오는 우리 모두가 치를 가능성이 있다.
작가 김수련 소개
신촌세브란스병원 암병원 중환자실CAICU에서 간호사로 약 7년간 근무했고, 2020년 코로나19 확산 초기에 대구의 코로나19 중환자실에 파견되어 근무했다.
‘건강권 실현을 위한 행동하는 간호사회’의 운영위원으로, 간호사 1인당 환자 수 법제화, 대한간호협회 직선제 촉구, 직장 내 괴롭힘 피해 간호사 연대와 같은 간호사 처우 개선 운동과 공공의료 강화 운동에 참여했다.
재 국경없는의사회 소속 파견 인력으로 미파견 기간 중 미국 적십자 재난 의료팀 멤버로 활동 중이며, 뉴욕 시립병원 외과계 외상 중환자실에서 근무하고 있다. 공저로 『포스트 코로나 사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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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속심 기자 sisatim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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