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읍시다 (2206)] 궤도의 밖에서, 나의 룸메이트에게
전삼혜 저 | 문학동네 | 240쪽 | 14,000원
[시사타임즈 = 박속심 기자] 아득하게 먼 우주의 끝, 그곳에서부터 소행성 하나가 날아오고 있다. 지름은 800미터 남짓으로 충돌 시 문명의 대부분을 파괴할 규모다. 우주공학의 최정상에 선 기관이자 우수한 아이들을 선택해 연구원으로 육성하는 학교인 ‘제네시스’에선 소행성 궤도를 바꿔 보려 하지만 쉽지 않다.
제네시스의 아이들에겐 부모도, 후견인도 없다. 밖에서 기다리는 사람이 없는, 사랑할 대상도 믿고 의지할 대상도 오직 울타리 안에서 찾아야만 하는 아이들이다. 이들은 예정된 재앙으로부터 무언가를 지키기 위해 애쓴다. 지극히 평범한 일상을, 소중한 사람을, 또는 소중한 사람이 지키고자 했던 한 세계를.
그리고 어느 토요일, 제네시스 항공기계정비반의 ‘유리아’는 단독 출장을 가 있던 달에서 지구가 검은 구름으로 뒤덮이는 순간을 목도한다. 더 이상 푸르지 않은 지구를 지켜보며 달에서 버틴 지 어느덧 6개월. 반파된 지구에서 누군가가 리아에게 편지를 쓴다.
“당신을 데리러 가겠습니다. 당신은, 유리아 씨는, 제네시스가 온 힘을 다해 살리려고 한 사람이니까요.”
종말의 비망록인 듯한 이 소설은 ‘기적의 비화’에 더 가깝다. 마지막 순간까지 ‘사랑하는 마음’을 놓지 않은 사람들의 궤도가 중첩되었기에 가능했던 기적이었다. 개개인의 사랑은 역사에 기록되지 않더라도, 사랑이 모여 이루어낸 기적은 어떤 식으로든 기록되기 마련임을 이 소설은 보여준다. 소설에는 달의 뒷면처럼 영영 감춰질 뻔했던 ‘궤도 밖 아이들’의 목소리가 또렷하게 기록되었다. 풍화침식이 없는 달 위에 새겨져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리아의 이야기처럼. 우리는 지구가 반파되는 비극을 목도하면서도 사랑과 연대를 읽어낼 수 있다. 단 한 사람의 무사함이지만, 그 한 사람은 누군가의 세계였으므로.
이 책은 전삼혜 작가에게도, 그의 작품을 오래 지켜봐 온 팬들에게도 각별할 것이 틀림없다. 작가의 전작 『소년소녀 진화론』에 수록되었던 단편 「창세기」를 씨앗 삼아 탄생한 소설이기 때문이다.
당시 「창세기」는 「Genesis」라는 제목으로 영역되어 글로벌 문학 웹진 ‘Words Without Borders’ 2016년 6월호 퀴어 특집에 실렸고, 2016년 퀴어문화축제의 무지개책갈피 부스에서 소책자 형태로 독자들을 만나기도 했다.
많은 독자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으며 지금도 활발히 회자되고 있는 작품이 수년의 시간을 건너, 드넓은 우주처럼 확장된 모습으로 우리를 찾아왔다.
과거의 전삼혜가 제시한 모티프는 현재의 전삼혜에 의해 웅장한 오케스트라와 같은 대서사시로 진화하였다. 결핍과 갈망, 고립과 연대, 비관과 낙관이 공존하는 세계관은 전삼혜 특유의 담담하고도 서정적인 문장으로 아름답게 연주된다.
소설은 결국 어딘가 불완전하고 나약한 ‘인간’들의 이야기이다. 지켜야 할 것을 선택하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 비틀거리면서도 나아가는 사람들. 사랑을 지키는 일이야말로 비관적인 현실에서 유일한 선택지임을 잘 알고 있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매력적이다. 힘껏 사랑하는 일을 말하는 소설, 사랑하고 싶어지는 소설이다.
작가 전삼혜 소개
1987년 서울에서 태어나 명지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 걷다가 보니 어른이 되었다. 고등학교 2학년인 2004년에 덜컥 [마비노기]를 깔았다가 많은 게 변한 사람. 게임 팬픽을 공식 카페에 연재하다 지망 대학을 정했다.
2016년부터 게임 시나리오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또 청소년 SF의 길을 힘차게 달리고 있다. 목표는 ‘한국 청소년들이 한국 SF를 더 많이 접하게 하는 것’. 한국과학소설작가연대(SFWUK) 2기 부대표이며, 2010년부터 겸업 작가 생활을 충실히 유지하고 있다. 전직 판교의 등대지기. 아메리카노를 물처럼 마시며 노동 중.
2010년 대산대학문학상으로 등단했다. 장편소설 『날짜변경선』, 소설집 『소년소녀 진화론』과 『위치스 딜리버리』 등을 발표했고, 앤솔러지 소설집 『어쩌다 보니 왕따』, 『존재의 아우성』, 『사랑의 입자』, 『엔딩 보게 해 주세요』, 『인어의 걸음마』에 「고래고래 통신」을 수록하는 등 여러 앤솔러지에 참여했다.
<맑은 사회와 밝은 미래를 창조하는 시사타임즈>
<저작권자(c)시사타임즈.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시사타임즈 홈페이지 = www.timesisa.com>
박속심 기자 sisatime@hanmail.net
'[시사 캠페인:책을 읽읍시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책을 읽읍시다 (2209)] 느티나무 수호대 (0) | 2023.04.07 |
---|---|
[책을 읽읍시다 (2207)] 이방인들의 영화 : 한국 독립영화가 세상과 마주하는 방식 (0) | 2023.04.05 |
[책을 읽읍시다 (2205)] #축제_0419 (0) | 2023.03.30 |
[책을 읽읍시다 (2204)] 에이징 솔로:혼자를 선택한 사람들은 어떻게 나이 드는가 (0) | 2023.03.29 |
[책을 읽읍시다 (2203)] 스케일임팩트 사회적 경영의 새로운 화두 (0) | 2023.03.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