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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캠페인:책을 읽읍시다]

[책을 읽읍시다 (2348)] 원도

[책을 읽읍시다 (2348)] 원도

최진영 저 | 한겨레출판 | 248 | 15,000

 

[시사타임즈 = 박속심 기자] 2006 실천문학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 이래 2010년 첫 장편소설인 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으로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하며 본격적인 이름을 알린 지 십수 년 남짓. 처연한 비관의 세계에서 시작한 그는 2023년 이상문학상을 받으며 등단 이후 십여 년간 한결같은 걸음걸이로 걸어온 작가의 작품 세계가 마침내 새로운 경지로 들어섰음을 보여준다. 눈이 부시다”(소설가 윤대녕)라는 평을 받았다.

 

같은 해 출간한 장편소설 단 한 사람을 통해서는 십여 년간 곱씹은 질문에 마침내 마침표를 찍으며 작가적 전환점을 맞기도 했다.

 

지구에서 가장 키가 크고 오래 사는 생물, 수천 년 무성한 나무의 수명 가운데 이파리 한 장만큼을 빌려 죽을 위기에 처한 단 한 명만 살릴 수 있는, ‘나무와 인간 사이 수명 중개인의 이야기인 단 한 사람은 출간되자마자 쇄를 거듭하며 하반기 최대 베스트셀러로 등극했다.

 

원도는 최진영 작가의 세 번째 장편소설로 구의 증명 바로 전 작품이라는 점에서 흥미롭다. 구의 증명의 모티프가 선연한데, 특유의 강력하고 거침없는 파토스로 몰아치는 생동감은 작가의 여느 책을 능가한다.

 

원도, 그는 누구인가. 엄마의 애정을 갈구했고 질문이 많았던 아이, 그러나 이제는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도 있는 어른”. 검은 봉지에 담겨 으슥한 곳에 버려진 쓰레기처럼 병든 몸으로 길거리를 전전하는 남자. “파산자에 범죄자에 도망자가 되어, 가족에게 버려진 채 매일 피를 토하면서도, 이 지경으로도 죽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 원도는 결정적인 순간, 인생이 뒤틀려버린 단 한 순간을 알아내려고 한다. 무슨 일이 자신에게 일어난 것인지, 대체 어떤 선택을 했는지.

 

여섯 살이 되던 해 눈앞에서 아버지를 믿어라라는 말을 남긴 채 물을 마시고 죽어버린 아버지, 이후 나타난 다른 아버지, 이 두 아버지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까. 다른 아버지는 훈육이라는 이름으로 폭력을 휘둘렀고, 엄마는 봉사활동을 다니며 원도 외의 존재에게 사랑을 베푸느라 부재했다. 정작 원도 앞에서는 눈물만 흘리는 엄마 때문에 죄책감을 느꼈다.

 

보육원의 그 녀석, 늘 어른들의 사랑을 독차지해 경쟁의식을 부추긴 장민석이 시작이었나. 항상 다른 남자와 비교하던 대학 시절 여자친구 유경 때문인가. 수많은 사람을 파산시키면서 돈을 탐하게 되었던 은행에 취직한 것부터가 잘못인가. 기억의 심연을 고통스러울 정도로 파헤친 끝에 마침내 거대한 비밀의 문 앞에 이르는 원도. 과연 그가 마주한 진실은 무엇일까.

 

이 소설은 광활한 기억 가운데 인생의 뒤틀린 한 조각을 찾으려는 남자의 처연한 여정을 담았다. 피할 수 없는 악취와 독기 속에서, 자기 자리를 찾지 못하고 차차 괴물이 되어간 한 인간의 사투의 기록과도 같다.

 

조각나고 짓밟힌 기억은 느닷없이 벽을 뚫고 튀어나오는 주먹과 같 그 안에 꽃잎이 있을지 잘린 혀가 있을지 터진 눈알이 있을지 다이아몬드가 있을지, 전혀 짐작할 수 없다”. 그러나 인간의 삶이란 근본적으로 시작과 끝이 텅 빈 구멍이고 그 구멍으로 온 생이 콸콸 쏟아져 결국 사라질 것임을 원도를 통해 보여준다.

 

그가 어두운 여관방에서 홀로 목놓아 울 때 독자는 직감할 것이다. 원도는 나였다고. 나는 왜 죽지 않았는가라는 질문은 죽고 싶지 않다는 열망의 다른 표현이었다고. 우리는 영원히 메울 수 없는 구멍 하나를 평생 들여다보며 살아야 할 거라고.

 

원도는 비장미 넘치는 서사, 날카로운 문체, 인간과 구원이라는 주제를 꿰뚫는 묵직한 통찰로 최진영 작가 초기 소설 세계의 정점을 목도할 수 있다. 이 전면개정판이 반갑고 귀한 것은 빠르게 소진되고 소비되는 출판시장에서 11년의 시간을 견디고 의연히 돌아왔기 때문이다. 문제의식은 낡지 않았고 소설적 순정은 오히려 빛을 발한다.

 

이 책은 이미 끝나버렸다고 판결된 삶이라도 어떻게든 복원해서 다시 한번 살고자 하는 한 남자의 생에 대한 갈구를 마치 시지프 신화의 비극처럼 쏟아낸다. 이 사람 원도의 이야기를 읽고 나면 모두 그와 다르지 않은 자신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질문할 것이다.

 

작가 최진영 소개

 

1981년 눈이 많이 내리던 날 서울에서 태어났다. 낮엔 일하고 밤엔 글 쓰다가 2006 [실천문학]으로 등단했다.

 

소설집 팽이, 겨울방학, 장편소설 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 끝나지 않는 노래, 나는 왜 죽지 않았는가, 구의 증명, 해가 지는 곳으로, 이제야 언니에게, 내가 되는 꿈, 팽이, 겨울방학 등을 썼다. 앤솔러지 장래 희망은 함박눈을 함께 썼다.

 

박범신, 공지영, 황현산 등 심사위원들의 만장일치로 제15회 한겨레문학상에 당선되었으며, 만해문학상, 백신애문학상, 신동엽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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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속심 기자 sisatim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