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읍시다 (309)] 니그로: 아프리카와 흑인에 관한 짧은 이야기
W. E. B 듀보이스 저 | 황혜성 역 | 삼천리 | 272쪽 | 15,000원
[시사타임즈 = 박속심 기자] 오늘날 지구상에서 공식적으로 피부색을 이유로 사람을 차별하는 국가는 존재하지 않는다. 21세기 하이브리드(혼종) 세상이고 성숙한 민주주의 국가에서도 인종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특히 흑인에 대한 사회문화적 차별과 분리의 역사는 생각보다 뿌리 깊다. 최근에도 미국과 프랑스를 비롯한 문명국가에서 크고 작은 사건들이 뉴스로 보도되고 있다. “20세기의 문제는 인종장벽의 문제다”라고 선언하며 미국유색인지위향상협회(NAACP)를 창설하고 범아프리카주의의 이론을 제시한 W. E. B. 듀보이스의 고전이 출간됐다.
이 책은 인종 분리가 극에 달해 있던 100년 전 미국에서 출간돼 흑인해방운동과 범아프리카주의의 이론적 토대를 구축했다. 오늘날까지도 탈식민주의 이론가들이나 일반인들에게 흑인과 아프리카 이해의 출발점을 제공하는 책으로 평가받고 있다. 흑인 최초로 하버드대학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은 W. E. B 듀보이스는 무엇보다 미국 시민들에게 흑인에 관해 올바르게 설명해 주고 싶었고 그런 생각을 담담하게 써 내려갔다.
고대 인류 문명이 탄생한 나일 강에서부터 남아프리카 호텐토트족까지, 유럽 제국의 아프리카 침략에서 제2차 대전 이후 탈식민 시기까지, 대서양 노예무역의 시작과 신대륙 이주에서 노예반란과 흑인 공화국의 탄생에 이르기까지, 흑인의 역사는 그야말로 세계사의 흐름과 함께했다.
로마의 시인 테렌티우스, 오셀로와 프레스터 존 같은 전설적 인물, 아라비아의 안타르, 아이티의 투생 루베르튀르, 러시아의 푸시킨, 프랑스의 알렉상드르 뒤마, 미국의 정치가 알렉산더 해밀턴에 이르기까지, 니그로 혈통은 인류 문화에 위대한 발자국을 선명하게 남겼다.
니그로, 흑인, 인종이라는 말은 차별의 의미를 담고 있어서 공식적으로는 적절하지 않다고 하여 미국에서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이라는 말을 선호하기도 한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니그로’(Negro) 또는 ‘흑인’(Black)은 검은 피부색과 짧고 곱슬곱슬한 머리카락, 두텁고 때로는 뒤집힌 입술, 턱 부분이 발달된 얼굴, 길쭉한 두상을 가진 ‘인종’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고 있다. 또한 아프리카 출신이거나 먼 조상이 아프리카에서 온 사람을 가리킨다.
사람들은 어떤 인종에 대해서도 그렇게 제한된 범위를 전체 집단에 적용하여 규정하지는 않는다. ‘백인’은 어떤 종류의 백인이든, 몸집이나 얼굴 모양에 상관없이 ‘백인’이라고 한다. 두개골 크기도 다 다르고 신체적 특징도 천차만별이다. ‘황인종’은 아마도 백인보다 더 모호한 개념일 것이다. 실제로 오늘날 학계에서는 인종을 과학적으로 규명하는 일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고대 그리스인들에게 아프리카는 ‘에티오피아’(흑인의 땅)이었고, 현대 유럽인들에게는 ‘미개한 어둠의 땅’이고 ‘모순으로 가득한 대륙’이었다. 하지만 아프리카는 인류가 처음 등장한 대륙일 뿐 아니라 이집트, 카르타고, 말리제국, 송가이제국의 땅이었다. 나일, 콩고, 나이저, 잠베지 4대강을 중심으로 수많은 종족 집단이 다양한 문화를 이루고 살아온 거대한 땅이었다. 유럽인들이 ‘탐험’을 시작하고 식민지를 ‘개척’하고 본격적으로 노예와 자원을 수탈하기 전까지는 그랬다. 그 뒤로 이 거대한 대륙은 국제 교역에서 노예시장과 상아, 흑단나무, 고무, 금, 다이아몬드의 산지였다.
인류 역사에서 고대든 중세 사회든 피부색이 노예제도의 상징이 된 적은 없다. 현대 세계에서도 기독교 국가들에서만 그러하다. 15세기까지만 해도 니그로 나라 문명과 유럽 문명에 큰 차이가 없었다고 한다. 지은이는 피부색인 검은 사람에 대한 편견과 오해는 바로 서양의 침략과 노예무역을 통해 형성됐다고 한다.
처음에 노예무역은 과거처럼 사막을 지나 북쪽 이슬람 세계로 가는 교역로를 통해 교역됐다. 포르투갈 사람들이 1482년에 황금해안에 최초의 노예무역소를 건설하며 교역을 확대했다. 서인도제도와 아메리카 대륙에서 강인한 노동력에 대한 수요가 계속 늘어났고 18세기가 되면 정점에 이르게 된다. 이 무렵에 한 해 5만~10만에 이르는 니그로 노예들이 대서양을 건너 신대륙으로 공급됐다.
18세기 카리브 해의 유럽 식민지에서 일어난 노예반란으로 시작된 아이티혁명은 세계에서 네 번째, 아메리카 대륙에서 미국 다음으로 공화국을 세운 시민혁명이었다. 하지만 역사책에는 영국의 명예혁명, 프랑스대혁명, 미국의 독립혁명을 이른바 3대 시민혁명으로 기술하면서 아이티혁명은 빼 버리기 일쑤이다. 쿠바와 브라질, 멕시코, 볼리비아, 페루를 비롯한 아메리카 나라들의 현대사는 과거 식민지에서 해방과 주권을 찾는 투쟁의 역사였다. 그 과정에 이른바 니그로가 주도적인 역할을 했을 뿐 아니라 지금은 다인종 다민족 국가로 국제사회에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니그로 노예제도를 현대 산업 시스템으로서 가장 오랫동안 실험한 곳이 북아메리카 대륙 본토, 다름 아닌 오늘날의 미국이다. 이 책에 따르면 1910년 미국에서 니그로 후손으로 집계된 인구가 9,828,294명이었다. 이 수치에는 니그로 피와 섞였는지 판단할 수 없는 상당수의 사람은 물론 알려지지 않은 경우가 제외돼 있다. 당시 이른바 니그로라 불리는 사람 수가 1,250만 정도로 추정됐다. 이들은 거의 모두 16세기부터 19세기까지 아메리카 대륙으로 끌려온 아프리카 노예들의 후손들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노예 주(州가) 여전히 남아 있었으며 미국 전역에 벌어진 흑인과 노예에 대한 억압과 착취는 20세기까지 이어졌다. 이 책은 미국 역사에서 카토, 가브리엘, 터너를 비롯한 무수한 노예 반란은 물론, 도망 노예를 돕는 지하 철도(Underground Railroad) 운동에 이르기까지 흑인의 고난과 좌절, 승리도 함께했음을 보여 준다. 프레드릭 더글러스, 존 브라운, 조너선 기브스를 비롯한 흑인운동 지도자에서 나이아가라 운동과 미국유색인지위향상협회 창설에 이르기까지 300여 년 아메리카 흑인의 역사를 비교적 서술하고 있다. 당시까지의 연구와 당국의 통계 자료 등을 참고로 미국 흑인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100년 전 이 책을 쓴 듀보이스의 혜안과 예견대로, 오늘날 세계는 흑인과 아프리카를 빼고 설명할 수 없을 정도가 됐다. 아메리카의 여러 나라는 국가 차원에서 공식적으로 인종 통계를 내지 않을 만큼 인종주의적 사고도 많이 사라졌다. 프란츠 파농, 에드워드 사이드, 호미 바바, 가야트리 스피박까지 이어지는 탈식민주의 담론은 백인과 서구 중심주의를 깨뜨렸다.
하지만 흑인에 대한 편견과 오해는 뿌리 깊고 식민주의와 노예무역의 유산도 여전히 남아 있다. 탈식민주의 이론은 마르크스주의나 제3세계 민족주의를 포괄하며 다양한 분야에 적용되고 있지만, 그 뿌리는 아프리카 흑인의 역사에서 비롯됐다.
작가 W. E. B. 듀보이스 소개
미국의 역사학자, 사회학자, 흑인 운동 지도자. 1868년 매사추세츠 주 그레이트베링턴에서 태어나 피스크대학과 베를린대학에서 수학하고 흑인 최초로 하버드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아틀랜타대학 교수로 역사학과 사회학, 경제학을 가르쳤고, 1905년 나이아가라 운동을 결성하여 인종분리와 공민권 박탈에 맞서 흑인민권 운동에 앞장섰다. 1909년에 미국유색인지위향상협회(NAACP)를 창립을 주도하고 기관지 <크라이시스> 편집을 맡았다.
그는 범아프리카 운동의 주창자이기도 하다. 인권과 평화, 사회변혁 운동의 공을 인정받아 1958년 레닌평화상 수상했다. 신생 공화국 가나의 은크루마 대통령 초청으로 아프리카로 이주했으며, 1962년에는 미국 시민권을 포기하고 이듬해 가나 국적을 취득했다. 1963년 8월 28일 95세의 나이로 아프리카에서 세상을 떠났다.
사후 50년이 지난 2012년 펜실베이니아대학 명예교수로 위촉됐다. 지은 책으로 『필라델피아의 니그로』『흑인의 영혼』 『니그로 백과사전』 『평화를 위한 전투』 등이 있다.
박속심 기자(sisatim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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