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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캠페인:책을 읽읍시다]

[책을 읽읍시다 (345)] 가면 뒤에서



가면 뒤에서

저자
루이자 메이 올컷 지음
출판사
문학동네 | 2013-10-24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작은 아씨들』의 착실한 딸들, 착한 소녀의 가면을 벗다! 국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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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읍시다 (345)] 가면 뒤에서

루이자 메이 올컷 저 | 서정은 역 | 문학동네 | 384쪽 | 13,000원

 

 

 


[시사타임즈 = 박속심 기자] 루이자 메이 올컷 선집 제1권. 『작은 아씨들』로 널리 알려진 19세기 미국 여성작가 루이자 메이 올컷의 선정소설 네 편을 묶었다. 관계의 섹슈얼리티적 측면과 낭만적 사랑 신화, 성별 정체성에 대한 문제를 흥미진진하게 빚어낸 「가면 뒤에서, 또는 여자의 능력」, 「어둠 속의 속삭임」, 「수수께끼」와 해시시를 삼킨 후 통제되지 않는 자아를 경험하는 젊은 연인의 일화를 담은 「위험한 놀이」 순으로 구성돼 있다.

 

가명 내지 익명으로 발표했던 올컷의 대중소설들은 한동안 묻혀 있다가 1940년대부터 발굴되기 시작했다. 1980년대에 여성주의 운동과 맞물리며 큰 주목을 받았다. 국내 처음 소개되는 올컷의 대표적인 스릴러 네 편은 작가의 굴절된 면모와 가정소설 프레임에 갇히지 않는 도전적인 작품세계를 선명히 드러내 보일 것이다.

 

『가면 뒤에서』에는 네 편의 작품이 실려 있다. 처음 실린 「가면 뒤에서, 또는 여자의 능력」은 『제인 에어』의 패러디 또는 스핀오프 작품이다. 코번트리 집안의 가정교사로 들어온 진 뮤어라는 인물은 완벽한 집 안의 천사를 자청하는 온순하고 상냥한 여성이다. 그러나 혼자 있을 때 그녀는 이 역할이 요구하는 막대한 육체노동 및 감정노동으로 인해 심신이 피폐해진, 생기 없고 우울한 모습을 하고 있다. 그녀의 진짜 얼굴은 아름다운 희생을 온순히 받아들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통렬히 비웃는다. 그녀는 음모를 짜고, 기지를 발휘하며, 자신이 가진 모든 자원을 활용해 부당한 관계를 미화하고 강요하는 사람들에게 복수한다. 시작은 『제인 에어』와 같지만 결말은 『제인 에어』와 다른, 여느 기대를 조롱하는 결말로 향해간다. 이러한 서사는 여성이 희생적인 역할에 얽매여 있다면 오히려 그 역할을 의도적으로 과장되게 연기함으로써 속박의 정체를 폭로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다.

 

두번째 작품 「어둠 속의 속삭임」은 『제인 에어』, 「누런 벽지」, 『광막한 사르가소 바다』 등으로 이어지는 ‘다락방의 미친 여자’ 계보에 속하는 작품이다. 자신의 돈을 노린 삼촌과의 결혼을 거부한 주인공 시빌이 정신병원에 강제로 감금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자신과 같은 처지에 놓인 여성을 만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이 작품에서 올컷은 결혼을 감옥 및 죽음의 이미지와 연결해 가부장제 결혼을 여성의 구속과 명백하게 동일시하고 있다. 또 그 구속의 결과로서 히스테리와 광기를 보여준다. 이 소설 또한 『제인 에어』에 등장하는 다락방에 갇힌 여성인물 ‘버사’를 떠올리게 하는데 실제로 올컷은 샬럿 브론테의 전기를 읽으며 브론테의 삶과 자신의 삶이 많이 닮아 있다고 여겼다고 한다.

 

세번째 작품 「수수께끼」는 성차에 대한 올컷의 관점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올컷은 어린 시절부터 교유했던 초월주의 사상가이자 여성주의자 마거릿 풀러의 주장, 즉 성차는 생물학적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문화적으로 학습되고 결정되는 것이라는 명제를 전적으로 받아들였다. 이 단편에 등장하는 필경사이자 스파이인 화자 클라이드는 모습이 묘해 보이는 젊은 작가의 저택에서 함께 일하게 된다. 이야기가 진행되는 동안 정황에 따라 변하는 작가의 모습은 화자의 눈에는 언제까지나 수수께끼로만 보인다. 이 작품은 문화적으로 연출되고 수행되는 섹슈얼리티의 특정한 모습을 묘사한, 지금 보아도 급진적인 성찰을 담고 있다.

 

마지막 소설 「위험한 놀이」는 여성주의적 관점보다는 의식적으로 통제되지 않는 자아에 대해 작가의 관심이 반영된 소품이다. 해시시를 먹고 벌어지는 젊은이들의 해프닝을 다룬 이 이야기는, 약에 취한 두 연인의 ‘위험한 놀이’가 행복한 결말을 이끈다는, 어찌 보면 다소 ‘위험한’ 생각이 녹아 있다. 실제로 올컷은 해시시, 아편, 모르핀 등을 상습적으로 복용하며 신체적 고통을 해소하고자 했다. 물론 그녀는 부작용 때문에 약물에 의존하는 것을 선호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약물이 일으키는 트랜스 상태와 자아의 해방상태에 관심을 지니고 있었다. 「위험한 놀이」의 주인공들이 보이는 자기통제력의 해제상태는 어쩌면 작가 자신의 욕망이 발현된 모습인지도 모른다.

 

선정소설은 19세기 중반 인기를 누렸던 대중문학 장르를 지칭하는 용어로, 주로 사기, 살인, 스릴러, 정신분열, 유괴, 간통, 중혼 등 자극적인 소재를 다룬다. 온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끝없이 글을 써야 했던 올컷은 바로 이 상업적인 장르에서 빛나는 문학적 재능과 당시로서는 급진적인 사상들을 드러냈다. 『천로역정』의 가르침을 따르는 착실한 작은 아씨를 그려내고 중산계급적인 도덕성을 중요시했던 올컷이 왼손으로는 유혹적인 악녀를 만들어내기도 했고 급진적인 사유가 반영된 글을 쓰기도 했던 것이다.

 

때로 오른손과 왼손은 서로 맞부딪치며 모순적인 정체성과 세계관을 드러냈고 작가의 풍성한 내면과 다각적 면모를 일궈냈다. 그런 맥락에서 『가면 뒤에서』는 『작은 아씨들』을 쓴 작가의 색다른 작품으로서 더 복잡다단하며 재미있는 독해의 대상이 된다. 하지만 이 소설집을 올컷의 또다른 면모를 드러낸 비유로 덧씌워 읽어내기 전에 생생하게 그려진 인물들의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읽어나가기만 해도 충분히 유쾌할 것이다.

 

 

작가 루이자 메이 올콧 소개

 

1832년 11월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 저먼타운에서 태어나 매사추세츠 주 콩코드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아버지 에이머스 브론슨 올컷은 저명한 초월주의 사상가이자 사회 개혁가였고, 어머니 애비게일 메이 올컷은 상상력이 풍부한 여성이었다. 올컷은 인내와 절제를 강요하는 아버지의 교육철학을 온몸으로 떠안고 성장하면서 아버지의 벗이었던 초월주의 사상가 랠프 월도 에머슨과 헨리 데이비드 소로, 여성주의자 마거릿 풀러 등의 영향을 받았다.

 

성인이 되기 전부터 어려운 가정 살림을 꾸려나가기 위해 바느질, 가사노동, 가정교습, 글쓰기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해야 했다. 남북전쟁중인 1862년에 자원입대하여 북군의 야전병원에서 간호병으로 복무하다 장티푸스 폐렴을 앓은 뒤 평생 건강문제로 시달린다. 당시 야전병원에서 경험한 내용을 바탕으로 집필한 『병원 스케치』는 그에게 작가로서의 첫 성공을 안겨주었다. 그뒤 1863년부터 1870년까지 A. M. 버나드라는 필명 또는 익명으로 고딕풍의 선정소설들과 스릴러들을 발표했다.

 

여성주의적 관점과 노예해방사상 등 급진적인 사상이 여실히 담겨 있는 이 시기의 작품들은 이후 여성주의 문학연구자들에게 새로이 발굴되어 큰 주목을 받고 있다. 1868년과 이듬해에 ‘소녀들을 위한 책’ 『작은 아씨들』 1, 2권을 발표하며 본격적인 명성을 얻었다. 작가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토대로 재구성한 이 작품이 굉장한 인기를 끈 덕분에, 올컷은 재정적인 안정을 확보하고 작가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이후 『구식 소녀』 『작은 신사들』 『조의 소년들』 등의 아동문학과 『변덕』 『일』 등의 성인문학을 펴냈다. 생의 말년까지 여성운동과 노예해방운동, 금주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올컷은 1888년 3월 보스턴에서 뇌졸중으로 세상을 떠났다.

 

박속심 기자(sisatim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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