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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캠페인:책을 읽읍시다]

[책을 읽읍시다 (447)] 오리지널 오브 로라



오리지널 오브 로라

저자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지음
출판사
문학동네 | 2014-03-20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작가의 화형 선고에서 살아남은 언어의 마술사 나보코프의 미완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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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읍시다 (447)] 오리지널 오브 로라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저 | 김윤하 역 | 문학동네 | 248쪽 | 13,800원

 

 


[시사타임즈 = 박속심 기자] 1977년 7월 2일 『롤리타』의 작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가 스위스의 작은 휴양도시 몽트뢰에서 생을 마감했다. 그의 유품 중에는 몇 년간 써왔으나 결국 완성하지 못한 마지막 작품의 초고도 있었다. 나보코프는 그 작품에 ‘오리지널 오브 로라’라는 제목을 붙여둔 상태였다.

 

병상에 누워 있던 나보코프는 아내 베라에게 자신이 이 『오리지널 오브 로라』를 완성하지 못하고 죽는다면 원고를 모두 불태워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그러나 베라는 그렇게 하지 못했고 원고는 한동안 금고에서 잠들어 있었다. 베라 나보코프 사망 후 유지를 이어받은 외아들 드미트리 나보코프는 10여년 동안 대중과 평단에 이 작품의 존재를 심심치 않게 환기하며 때로는 출간하겠다고, 때로는 폐기하겠다고 공표하곤 했다. 많은 작가와 비평가, 연구가 들이 이 작품의 향방에 촉각을 곤두세웠고 의견을 피력했으며 이 과정에서 원고 위작 소동까지 일어나기도 했다. 『오리지널 오브 로라』의 출간 여부는 그야말로 문단을 뜨겁게 달구는 주제 중 하나였다.

 

그리고 2009년 11월 마침내 드미트리는 나보코프의 미완성 유작 『오리지널 오브 로라』를 정식으로 출간했다. 나보코프가 세상을 떠난 지 32년 만의 일이다.

 

이 책에는 플로라라는 한 여인이 등장한다. 그녀는 작품의 화자와 사랑을 나누고 남편의 마음을 뒤흔드는 결코 누군가에게 소유되지 않는 자유로운 존재다. 마치 『롤리타』의 ‘님펫’이 그 매혹적인 성정을 그대로 지닌 채 자라 팜 파탈이 된 모습을 보는 듯하다. 그녀를 모델로 쓴 소설 『나의 로라』 안에서 로라는 죽음을 맞지만 플로라는 책을 펼쳐보지 않는 길을 택하며 허구의 등장인물로서 죽기를 거부한다. 로라는 죽지만 ‘오리지널 오브 로라’, 즉 플로라는 불멸로 남는 것이다. 여기에는 어쩌면 자기의 생명이 다하기 전 이 작품을 불멸로 남겨두고 싶었던 나보코프의 의지가 반영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또한 재미있게도 본문 중에는 열두 살의 플로라가 집에 세들어 살던 늙은 영국인 허버트 H. 허버트의 손길을 거부하며 비명을 지르는 장(章)이 있는데, 이 부분 역시 『롤리타』를 떠올리게 한다.

 

나보코프의 집필 방식은 독특했다. 그는 초고를 인덱스카드에 작성했다. 어느 정도 분량이 되면 그 카드를 고무줄로 묶어 들고 다니면서 배열 순서를 바꾸거나 카드를 파기하거나 글을 수정하곤 했다. 그 후 원고 정리가 끝나면 나보코프는 카드를 직접 집 뒤뜰에 있는 소각장에서 태워버렸다.

 

『오리지널 오브 로라』에서 우리는 그 유명한 인덱스카드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드미트리는 나보코프가 남긴 마지막 원고를 출판하면서 초고가 적힌 인덱스카드의 각 장을 스캔해 페이지 상단부에 싣고 그 밑에 카드 내용을 인쇄체로 옮겨놓았다. 이번에 출판된 『오리지널 오브 로라』 역시 독자들에게 나보코프의 마지막 작업을 그대로 소개하기 위해 인덱스카드의 각 장을 페이지 상단부에 싣고 그 밑에 번역을 함께 실었다. 또한 아들이자 편집자인 드미트리 나보코프가 정리한 원문을 부록으로 넣었다.

 

이 책에서 독자들은 몹시 사적이고 은밀하던 거장의 창작 현장을 살펴볼 수 있다. 카드에 묻은 얼룩들과 지문들, 완벽주의자로 유명한 섬세한 문장가의 불완전한 문장들, 삭제 표시들, 오자들, 망설임과 고뇌의 흔적들, 그리고 점점 힘이 빠져가는 글씨까지. 『오리지널 오브 로라』는 블라디미르 나보코프라는 위대한 작가가 예술을 탄생시키는 과정을 유일하게 엿볼 수 있는 창인 셈이다.

 

비록 영원히 완성될 길 없는 작품이지만 미완성이라는 점이 이 작품의 가치를 떨어뜨리지는 않는다. 오히려 온전한 한 편의 글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138장의 인덱스카드에 흩어져 있는 나보코프 특유의 시적인 표현과 언어유희, 정련된 문장 들은 그가 왜 위대한 작가로 평가받고 있는지 알 수 있게 해준다. 소

 

설가 마틴 에이미스의 말처럼, “카프카의 유언을 배반한 막스 브로트가 그랬듯, 드미트리는 아버지의 유언을 배반함으로써 문학계에 이바지”한 것이다. 나보코프가 마지막까지 혼신을 다해 집필한 이 미완성 유작은 무한한 시간 속에서 새로운 의미를 얻으며 하나의 고전으로 남게 될 것이다.

 

 

작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소개

 

1899년 4월23일 러시아의 성 페테르부르크에서 부유한 귀족 가문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나비 채집에 열중하였고 사랑에 빠져 시를 짓는 순수한 청년으로 자란 그는 많은 유산을 상속받았지만 1919년 볼셰비키 혁명으로 모든 것을 잃고 가족과 함께 독일로 망명했다. 케임브리지의 트리니티 칼리지에서 불문학과 러시아 문학을 공부한 후, 베를린과 파리에서 거주하면서 시린Sirin이라는 필명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다.

 

그러나 1940년 나치를 피해 다시 미국으로 이민해야 했다. 미국으로 건너가 시인, 소설가, 비평가, 번역가로서 활동하며 웨슬리, 스탠퍼드, 코넬 그리고 하버드 대학에서 문학을 가르치다가 1955년 『롤리타』의 기념비적인 성공으로 교수직을 그만두고 글쓰기에만 전념한다.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작가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 나보코프는 자신이 쓴 영어 원작의 대부분을 스스로 러시아어로 옮겼고, 또한 자신의 러시아 원작을 영어로 옮기는 작업을 하기도 했다. 그는 이차 대전 후 미국 작가 중 가장 연구가 활발한 작가 중 한 사람으로 영어로 씌어진 단행본 연구서만 해도 약 50여 권이며 그 외 수없이 많은 학위 논문, 연구 논문, 서평 등이 나와 있다.

 

그의 주요 작품으로는 『세바스찬 나이트의 진짜 인생』『롤리타』『프닌』『재능』『창박한 불꽃』 등이 있으며, 1961년 스위스로 건너가 1977년 스위스에서 사망하였다.

 

박속심 기자(sisatim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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