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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캠페인:책을 읽읍시다]

[책을 읽읍시다 (458)] 우리는 이상한 마을에 산다



우리는 이상한 마을에 산다

저자
댄 핸콕스 Dan Hancox 지음
출판사
위즈덤하우스 | 2014-03-31 출간
카테고리
정치/사회
책소개
세상에 맞서 싸우는 마을 마리날레다 직접 민주주의, 협동조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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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읍시다 (458)] 우리는 이상한 마을에 산다

댄 핸콕스 저 | 윤길순 역 | 강수돌 해제 | 위즈덤하우스 | 288쪽 | 15,000원

 


[시사타임즈 = 박속심 기자] 마리날레다는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자치주의 주도 세비야에서 동쪽으로 100여 킬로미터 떨어진 작은 도시다. 별다른 산업 시설이나 관광 자원 없이 올리브와 농작물을 기르는 스페인의 평범한 농촌인 이곳에 스페인 전역과 전 세계의 눈길이 모이고 있다.

 

1979년 이래 주민이 직접 선출한 시장 후안 마누엘 산체스 고르디요가 30년 넘게 마을을 다스리고 있다. 농산물과 올리브를 재배하고 가공하는 농장과 공장을 협동조합의 형태로 살림을 꾸리고 판매와 수출까지 한다. 마을 주민 대부분은 이곳에서 하루에 여섯 시간 반 일하며 47유로, 한 달에 1200유로(약 180만원으로 스페인 최저 임금의 2배)를 받고, 협동조합은 이윤을 분배하지 않고 재투자한다.

 

최근의 이주민들을 제외하면 완전 고용 상태나 다름없다. 더 놀라운 것은 지방 정부로부터 자재를 지원받아 주민들이 살 집을 직접 짓고 한 달에 15유로 정도만을 부담해 사실상의 무상 주거가 가능하다는 점이다. 마을의 중요한 사안은 총회에서 주민의 참여로 이루어지며 이 마을에서 벌이는 떠들썩한 축제에는 스페인 전역에서 사람들이 몰려든다.

 

이 이상한 마을을 두고 극단적 평가(유토피아 또는 공산주의 테마파크, 독재 체제)가 엇갈리고 있다. 이 책은 영국의 저널리스트 댄 핸콕스 이곳을 여러 차례 방문해 시장을 비롯한 주민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공동체를 심층 취재하고, 이 마을의 지지자와 반대자를 두루 인터뷰하여 내놓은 결과물이다.

 

마리날레다가 속해 있는 안달루시아 지방은 스페인 역사에서 줄곧 빈곤과 반란, 대지주(귀족)의 독점적 토지 소유(라티푼디오), 중앙 정부의 소외와 배제 등으로 그 이름이 알려진 곳이다. 프랑코 독재 정권은 이 지방에 관광·건설 산업을 전략적으로 육성했으나 개발의 이익은 고스란히 빠져나갔다. 프랑코의 사망 이후에도 이 지역의 낙후성은 쉽게 개선되지 않아 최근의 경제 위기에 가장 큰 타격을 입었다. 최근까지도 안달루시아 땅의 50퍼센트를 단 2퍼센트의 귀족 가문이 독점했을 정도로 스페인에서 토지가 가장 비옥하지만 가장 가난한 지역이다.

 

1970년대 후반 마리날레다의 소작농들이 1년에 한두 달밖에 일거리가 없어 스페인 다른 지역과 해외로 일자리를 찾아 떠나는 등 생존이 위기에 처하자 주민들은 산체스 고르디요 시장의 지휘로 직접 행동에 나선다. 1980년 이 지역의 실업률이 60퍼센트를 넘자 700명의 주민이 9일간‘굶주림에 맞선 굶주림 투쟁’, 즉 단식 투쟁에 들어갔고 국가로부터 보조금을 얻어 냈다. 그러나 이들은 보조금이라는 미봉책에 만족하지 않고 토지 개혁과 재분배를 요구하며 장장 12년에 걸쳐 한여름에 매일 16킬로미터를 행진하여 귀족 소유의 땅을 점거하고 쫓겨나기를 반복한다.

 

마침내 정부는 그 땅을 귀족에게 보상하고 마리날레다에 주었다. 이후 마리날레다는 보수 언론과 정치인, 부유층, 귀족, 지주, 교회 등으로부터 모함과 흑색선전에 시달려야 했으나, 정부의 보조금과 지원에 의존하지 않는 자급적이고 자율적인 노동과 그 성과를 통해 자신들의 투쟁이 정당함을 입증해 왔다.

 

마리날레다는 인간다운 삶을 가능하게 해 주는 토지와 노동을 쟁취하기 위해 평화적이고 상징적인 방식으로 투쟁해 왔다. 행진과 단식 투쟁을 통해 자신들의 절대적 빈곤을 전국에 알리고 정치인과 지배층, 언론의 부당한 흑색선전(“이 마을 주민들은 정부 보조금으로 차를 구입했다” 등)에 단호히 대응해 사과를 받아 내는가 하면 평화적인 집회와 점거, 눈길을 끄는 퍼포먼스를 통해 이슈를 부각한다.

 

또한 경찰 병력을 두지 않고도 치안을 유지할 나름의 규율을 만들어 내고 그 예산을 복지에 투입하고 스페인은 물론 전 세계의 대안/저항 세력(바스크, 카탈루냐, 팔레스타인, 서사하라, 중남미 등)에 지지와 연대를 보낸다. 1990년대 초반에 마을이 기나긴 투쟁에서 승리하고 자립을 꾸려 나가면서 이들은 그 투쟁 대상을 자본주의와 세계화로 점차 확대해 나간다.

 

자본의 힘이 개인과 사회의 존재 방식을 폭력적으로 강압하는 오늘날, 이 이상한 마을은 연대와 우정의 가치로 그 강압에 저항하고, 원하는 것을 내일까지 기다리지 않고 지금 여기에서 실현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스페인의 근현대사를 통해 끊임없이 수탈되고 빈곤한 상태에 있었던 안달루시아 지방의 이 작은 도시는 수십 년간 여러 실험을 통해 자족적 공동체로 변모했고, 유럽과 스페인 경제 위기 이후에는 자본주의의 대안으로 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

 

 

작가 댄 핸콕스 소개

 

영국의 저널리스트로 가디언과 인디펜던트, 프리즈, 뉴인콰이어리 등 많은 저널에 음악과 정치, 대중문화에 관한 글을 쓴다. 『불안의 여름: 포위된 젊은이들』 『유토피아와 눈물의 계곡』 『당당하게 일어나』 등의 책을 썼다.

 

박속심 기자(sisatim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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