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읍시다 (464)] 헤밍웨이 단편선 1
어니스트 헤밍웨이 저 | 김욱동 역 | 민음사 | 352쪽 | 12,000원
[시사타임즈 = 박속심 기자] 『노인과 바다』를 비롯해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무기여 잘 있어라』 등 고전의 반열에 올라선 작품을 발표하고 1954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어니스트 헤밍웨이. 미국 현대 문학의 개척자로도 불리는 헤밍웨이는 제1차 세계 대전 후 삶의 좌표를 잃어버린 ‘길 잃은 세대(lost generation)’를 대표하는 작가이다.
그는 약 70편에 이르는 단편을 통해 미국 단편 문학의 전통을 계승하는 한편 ‘하드보일드 문체’와 ‘빙산 이론’으로 명명된 독자적인 스타일을 확립시키며 장르를 아우르는 문학적 대가의 면모를 과시했다. 그의 단편은 사냥, 낚시, 투우, 권투, 군대 등 남성적인 소재를 바탕으로, 전쟁이 일어나기 전 대자연 속에서 평화로웠던 미국인의 생활상과 전쟁을 겪고 일상으로 복귀한 사람들의 내면에 도사린 허무와 방황에 대한 성찰을 주로 그린다. 작가 개인의 경험에 기반을 둔 사건, 추구했던 주제의식, 문학적 스타일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단편에서 다룬 에피소드는 이후 주요 장편소설의 모태가 되기도 했다.
전쟁이 끝난 후 공허와 희망이 공존하는 세계에서 헤밍웨이는 인간의 다양한 대응 방식과 삶의 면면을 예리하게 포착해 냈다. 헤밍웨이의 소설에는 특히 군대, 투우, 낚시, 권투 등 남성적인 소재가 많다. 적자생존의 법칙이 지배하는 그러한 세계가 곧 헤밍웨이가 바라보는 세상의 구도다. 헤밍웨이는 그러한 운명에 짓눌려 무기력해진 인간이나 인간 존재의 한계를 인정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인물들을 다각도로 그려 낸다. 『살인자들』이나 『킬리만자로의 눈』에서는 죽음이라는 문제와 대면하고 절망하는 인물들을 통해 인간이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부조리한 세계의 진실을 그린다. 하지만 『인디언 부락』에서 닉 애덤스가 삶에 대한 의지를 되새기는 모습이나 『패배하지 않는 사람들』에서 마누엘이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려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서는 헤밍웨이가 추구한 불굴의 희망과 의지를 읽을 수 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단편소설에서 ‘빙산 이론’이라 불리는 그만의 스타일을 고수한다. 사건의 일부나 외부적 상황만을 묘사하면서, 그 속에 모종의 거대한 근원과 감정이 감춰져 있음을 느끼게 하는 ‘빙산 이론’ 스타일은 흔히 ‘하드보일드 문체’로 일컫는 간결하고 명료한 문체와 깊이 관련되어 있다. 플롯을 종결하지 않고 끝내는 이른바 ‘제로 엔딩’ 방식도 그런 스타일에 한몫한다. 감정을 구구절절 늘어놓기보다는 최대한 억제하며, 사건을 억지로~ 마무리 짓는 대신 거대한 삶의 진실을 흘러가는 그대로 담아내고자 하는 헤밍웨이의 문학적 지향점은 박력 있고 절제된 문체와 어우러져 더욱 빛을 발한다.
작가 어네스트 밀러 헤밍웨이 소개
1899년 7월 21일 미국 시카고 교외의 오크파크에서 출생하였다. 고교시절에는 풋볼 선수였으나 시와 단편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고교 졸업 후에는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캔자스시티의 『스타 Star』지(紙) 기자가 됐다. 제1차 세계대전 때인 1918년 의용병으로 적십자 야전병원 수송차 운전병이 되어 이탈리아 전선에 종군 중 다리에 중상을 입고 밀라노 육군병원에 입원, 휴전이 되어 1919년 귀국하였다. 전후 캐나다 『토론토 스타』지의 특파원이 되어 다시 유럽에 건너가 각지를 여행하였고, 그리스-터키 전쟁을 보도하기도 했다. 파리에서 G.스타인, E.파운드 등과 친교를 맺으며 작가로서 성장해간다.
1923년 『3편의 단편과 10편의 시(詩) Three Stories and Ten Poems』를 출판한 것을 시작으로 1924년 단편집 『우리들의 시대에』, 1926년 『봄의 분류(奔流)』, 밝은 남국의 햇빛 아래 전쟁에서 상처입은 사람들의 메마른 허무감을 그린 『해는 또다시 떠오른다』를 발표한다. 1929년 전쟁의 허무와 비련을 테마로 한 전쟁문학의 걸작이라 평가 받는『무기여 잘 있거라』를 완성하면서 많은 관심을 받게 된다.
일생 동안 헤밍웨이가 몰두했던 주제는 전쟁이나 야생의 세계에서 나타나는 극단적인 상황에서의 삶과 죽음의 문제, 인간의 선천적인 존재 조건의 비극과, 그 운명에 맞닥뜨린 개인의 승리와 패배 등이었다. 본인의 삶 또한 그러한 상황에 역동적으로 참여하는 드라마틱한 일생이었다. 당시 스무 살의 나이에 경험한 세계 1차대전을 비롯하여 그는 스페인 내전과 터키 내전에도 참전했고, 제2차 세계대전에서는 쿠바 북부 해안 경계 근무에 자원했다. 이런 그의 경험은 소설의 소재가 되기도 했는데 이탈리아 밀라노 병원에서 한 간호사와 나눈 사랑은 『무기여 잘 있거라』의 소재가 됐다. 1936년 에스파냐내란 발발과 함께 그는 공화정부군에 가담하여 활약, 그 체험에서 스파이 활동을 다룬 희곡 『제5열(第五列)』(1938)이 탄생됐고 다시 1940년에 에스파냐 내란을 배경으로『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썼다.
이처럼 전쟁을 소재로 한 헤밍웨이의 소설들은 모두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것으로, 양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전통과 단절된 젊은 세대들을 일컫는 ‘잃어버린 세대(the lost generation)’를 대변하는 대표작으로 꼽힌다. 이 작품들은 헤밍웨이를 20세기 최고의 작가 반열에 올려놓았다.
제2차 세계대전 후 10년간의 침묵을 깨고 발표한 『강을 건너 숲 속으로』(1950)는 예전의 소설의 재판(再版)이라 해서 좋지 못한 평을 얻었지만 다음 작품 『노인과 바다』(1952)는 대어(大魚)를 낚으려고 분투하는 늙은 어부의 불굴의 정신과 고상한 모습을 간결하고 힘찬 문체로 묘사한 단편이다.
심볼리즘과 운율을 유감없이 구사하여 그린 용기있는 한 남성의 모습이 여실히 드러난다. ‘생전에 쓰기를 벼르다가 끝내 쓰고야 만 작품’이라고 작가 자신이 말한 니힐리즘의 극치를 보여준다. 이 작품으로 헤밍웨이는 1953년 퓰리처상과 1954년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단편집으로는 『우리들의 시대에』 외에 『남자들만의 세계』(1927) 『승자(勝者)는 허무하다』(1932)가 있다. 하드보일드(hardboiled)풍의 걸작 『살인청부업자』(1927) 『킬리만자로의 눈』(1936) 등이 있다.
박속심 기자(sisatim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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