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시사 캠페인:책을 읽읍시다]

[책을 읽읍시다 (49)] 노동의 배신

바버라 에런라이크 저 | 최희봉 역 | 부키 | 312쪽 | 14,800원

 

[시사타임즈 = 한민우 기자] 긍정주의의 맨 얼굴을 속 시원히 파헤친 『긍정의 배신』의 작가 바버라 에런라이크가 워킹 푸어(working poor, 근로 빈곤층)의 세계에 뛰어들었다. 최저 임금을 받아서 과연 먹고살 수 있을까? 그들이 가난한 게 정말 일을 열심히 하지 않아서일까? 『노동의 배신』은 이 질문에 답을 구하기 위해 저자가 1998년부터 2000년까지 식당 웨이트리스, 호텔 객실 청소부, 가정집 청소부, 요양원 보조원, 월마트 매장 직원 등으로 일하면서 생계를 꾸려 나간 경험을 담았다.

 

『노동의 배신』에는 살아 보지 않고는 결코 알 수 없는 워킹 푸어의 총체적 현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구직 과정에서부터 감정과 존엄성을 말살하는 노동 환경, 영양은커녕 활동에 필요한 최소한의 열량조차 섭취하지 못하는 식생활, 부자들이 집값을 올려놓은 탓에 싸구려 모텔과 트레일러 주택을 전전하며 점점 더 외곽으로 쫓겨나는 주거 실태, 가난하기에 돈이 더 많이 들고 그래서 더 일해야 하고 빚을 질 수밖에 없는 악순환의 쳇바퀴까지, 저임금 노동자들을 옥죄는 생활의 굴레를 저자 특유의 위트와 날카로운 분석으로 파헤친다.

 

저자가 저임금 체험을 할 당시, 미국은 성장은 지속되면서 물가는 안정된 이른바 '골디락스 경제'에 한껏 취해 있었다. 일부 부유층을 제외한 대다수 임금 노동자들의 실질 임금은 제자리걸음을 하거나 하락하고 있음에도 사람들은 집값과 주가 상승 등 자산 거품이 빚어내는 '부의 효과'에 흥청거렸다.

 

사실 전례 없는 호황이라던 그때, 노동 인구의 30퍼센트가 생활이 가능한 수입에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당 8달러 이하의 임금을 받았고(1998년), 최저 임금은 1997년부터 2006년까지 10년간 시간당 5.15달러에 멈춰 있었다. 다만 거품에 취해 있던 대다수의 미국인은 의식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깊어지는 풍요의 그늘'을 외면했을 뿐이다. 바로 이런 상황에서 에런라이크는 빈곤층의 열악한 현실을 생생하게 드러내며 그들이 결코 게으르거나 일을 하지 않아서 가난한 게 아님을, 그들의 빈곤이 중산층의 안락함의 토대임을 섬뜩할 만큼 몸으로 보여 주었기에 미국 사회가 받은 충격은 엄청날 수밖에 없었다.

 

처음 저임금 체험에 뛰어들었을 때, 저자는 복지 개혁론자들이 주장하듯 최저 임금을 받는 일자리로 생계를 꾸려 갈 수 있다면 가난한 사람들에겐 '특별한 절약법'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런 것은 없었다. 오히려 가난하기에 돈이 더 드는 상황에 수시로 맞닥뜨렸다. 아파트를 구할 때 필요한 한 달치 집세와 한 달 집세에 상응하는 보증금이 없으면 일주일 단위로 방을 빌리면서 엄청난 방세를 내야 한다. 조리 기구가 없기 때문에 주로 웬디스나 맥도날드에서 패스트푸드를 먹거나 편의점에서 즉석 식품을 사 먹어야 한다. 의료보험에 들 형편이 안 되니 정기 검진을 받을 수 없고, 처방전이 필요한 약도 살 수 없고, 결국에는 약을 구하지 못해 일을 오래 쉬는 바람에 일자리를 잃는 상황까지 벌어진다.

 

저자는 우리 모두가 그들에게 수치심을 느껴야 마땅하다고 절절히 호소한다. 수백만 워킹 푸어가 겪는 빈곤을 '응급 상황'으로 받아들여 이를 개선하자고 외친다. 임금을 올리고 그들을 범죄자 취급하지 말고, 그들이 조직을 결성해 더 나은 임금과 노동환경을 얻어내도록 하자고 말한다.

 

이 책은 현실을 바꾸는 기폭제가 됐다. 예일대를 비롯한 600여 개 대학의 필독서로 선정됐고 수많은 지역 모임에서는 책을 대량 구매해 시 의회 및 주 의회 의원들에게 배포했다. 책 내용을 토대로 다큐멘터리와 연극도 만들어졌다. 이 책은 생활 임금 운동의 큰 동력이 됐다. 그 결과 29개 주가 최저 임금을 인상했고 100개 이상의 도시에서 생활 임금을 지급하라는 법령이 통과됐다. 마침내 2007년 7월에는 연방 정부가 최저 임금을 인상하기에 이른다. 현재 미국 연방 정부의 최저 임금은 시간당 7.25달러이다.

 

작가 바버라 에런라이크 소개

 

1941년 미국 몬태나 주에서 태어났다. 록펠러 대학에서 세포생물학 박사 학위를 받은 뒤 도시 빈민의 건강권을 옹호하는 비영리단체에서 일하다가 전업 작가로 나섰다. 2001년, 저임 노동자의 생활을 잠입 취재해 『노동의 배신(Nickel and Dimed)』을 썼고 이 책이 미국 내에서 150만 부 이상 팔리면서 생활 임금 논쟁에 불을 붙였다. 2011년에는 자기계발서와 동기 유발 산업, 초대형 교회, 긍정심리학 등 사회 곳곳에 만연한 긍정주의의 폐해를 낱낱이 파헤친 『긍정의 배신』으로 한국 독자들에게도 깊은 인상을 남겼다. 20여 권의 책을 썼으며 현재 『뉴욕 타임스』 『타임』 『하퍼스』 『네이션』 등 미국 주요 언론에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현장에 밀착한 글쓰기와 노동자, 여성, 소수자 등을 위한 사회 활동을 활발히 펼치고 있다.

 

『긍정의 배신』은 에런라이크 자신의 생생한 경험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지난 2000년 유방암으로 치료를 받던 그는 다른 환자들에게서 '암은 축복'이라는 식의, 극도로 긍정적인 태도를 목격한다. 이를 통해 긍정주의가 얼마나 깊게 퍼졌는지 깨닫고, 자기계발서와 동기 유발 산업, 초대형 교회, 긍정심리학 등 사회 곳곳에서 사람들을 옥죄는 긍정 이데올로기를 추적한다. 그 결과물인 이 책은 출간 직후 언론의 찬사를 한 몸에 받았으며 독자들 사이에서 격렬한 찬반 논쟁을 불러일으켜 화제가 되었다.

 

한민우 기자(sisatime@hanmail.net)

 

 

<맑은 사회와 밝은 미래를 창조하는 시사종합지 - 시사타임즈>

<저작권자(c)시사타임즈.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시사타임즈 홈페이지 = www.timesis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