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읍시다 (522)] 백만 광년의 고독 속에서 한 줄의 시를 읽다
류시화 저 | 연금술사 | 762쪽 | 28,000원
[시사타임즈 = 박속심 기자] 단지 열일곱 자로 이루어진 하이쿠는 세계 문학에서 가장 짧은 형태의 시다. 4백 년 전 일본에서 시작돼 오늘날에는 세계의 많은 시인이 하이쿠를 쓰고 있고 서양에는 하이쿠 시인으로 활동하는 문인들이 증가하고 있다. 짧은 시가 가진 함축미와 선명한 이미지는 일찍이 에즈라 파운드에게 영향을 미쳐 20세기 영미시를 주도한 이미지즘 운동을 촉발시켰으며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 월레이스 스티븐스, 릴케 등도 이 시 형식에 자극을 받은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들 중에도 하이쿠를 쓴 시인이 많다. 멕시코의 옥타비오 파스, 아일랜드의 셰이머스 히니, 폴란드의 체스와프 미워시, 스웨덴의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등 국적에 상관없이 하이쿠나 하이쿠풍의 시를 발표했다. 인도의 타고르도 자신의 모국어인 벵골어로 하이쿠를 썼다.
이제 하이쿠는 세계 문학에서 더 이상 낯선 용어가 아니다. 시문학의 한 장르로 정식으로 자리 잡았다. 또 각 나라마다 하이쿠 시인협회가 있고 하이쿠 전문잡지들이 간행되고 있다. 그러나 아직 우리나라에서 '하이쿠'는 여전히 낯설고 생소한 세계이다. 일본에 대한 민족적 감정, 해결 되지 않고 있는 과거사 문제도 원인중 하나이지만, 일본소설들이 활발하게 소개되고 있는 것에 비교하면 지금까지 제대로 된 하이쿠 소개서 가출간되지 않은 이유가 가장 크다고 할 수 있다.
하이쿠모음집 『한 줄도 너무 길다』로 거의 최초로 한국의 독자에게 하이쿠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킨 류시화 시인이 그 후 15년의 시간을 바쳐 완성한 새로운 하이쿠 소개서가 이 책 『백만 광년의 고독 속에서 한 줄의 시를 읽다』이다.
이 책은 하이쿠의 원류인 일본의 대표적 인 하이쿠 시인들의 작품을 모으고 각각의 하이쿠마다 충실한 해설을 붙였다. 에도 시대의 바쇼, 부손, 잇사, 시키뿐 아니라 현대의 다코쓰, 만타로, 구사타오 등 130명의 시인들의 주옥같은 하이쿠 1,370여 편이 실려 있다. 또한 책 뒤의 150쪽에 이르는 해설 〈언어의 정원에서 읽는 한 줄의 시〉는 하이쿠의 역사와 배경뿐 아니라 서양의 하이쿠 시인들에 대한 소개까지 담은, 말 그대로 하이쿠의 세계를 깊이 이해할 수 있는 드문 기회이다.
전 세계의 독자에게 인기가 있고 현대의 대표적인 시인들이 자국의 언어로 하이쿠를 쓰고 있음에도 아직 한국 독자에게는 ‘하이쿠 ’라는 용어조차 생소하며 본격적으로 하이쿠를 소개하는 책이 출간되지 않았다.
저자 류시화는 하이쿠를 읽기 위해 독학으로 일본어와 일본 문학을 배웠다. 오랜 시간을 쏟아 완성한 이 책 『백만 광년의 고독 속에서 한 줄의 시를 읽다』는 가장 널리 읽히고 문학적으로도 평가받는 하이쿠들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 .
부제 ‘류시화 시인의 하이쿠 읽기’가 암시하듯이 시인의 시적 감성과 깊이 있는 해설이 감동을 준다. 과거와 현대의 하이쿠가 집대성되고 진지한 해설이 곁들여진 이 책은 일본이나 서양에서 출간된 어떤 하이쿠 서적과 비교해도 우위에 놓일 대작이다. 캘리그라퍼 강병인이 쓴 하이쿠 캘리 다섯 점이 특별 제본으로 담겨 있다.
작가 류시화 소개
시인이자 명상가. 경희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했으며 1980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된 바 있다. 1980~1982년까지 박덕규, 이문재, 하재봉 등과 함께 시운동 동인으로 활동했으나 1983~1990년에는 창작 활동을 중단하고 구도의 길을 떠났다. 이 기간 동안 명상서적 번역 작업을 했다. 이때 『성자가 된 청소부』,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 『티벳 사자의 서』, 『장자, 도를 말하다』, 『마음을 열어주는 101가지 이야기』, 『영혼을 위한 닭고기 스프』 등 명상과 인간의식 진화에 대한 주요 서적 40여 권을 번역하였다. 1988년 '요가난다 명상센터' 등 미국 캘리포니아의 여러 명상센터를 체험하고, 『성자가 된 청소부』의 저자 바바 하리 다스와 만나게 된다. 1988년부터 열 차례에 걸쳐 인도를 여행하며, 라즈니쉬 명상센터에서 생활해왔다.
그의 시집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는 1989년~1998년 동안 21번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시인은 「시로 여는 세상」 2002년 여름호에서 대학생 53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가장 좋아하는 시인에 윤동주 김소월. 한용운과 함께 이름을 올렸으며 명지대 김재윤 교수의 논문 설문조사에서 20세기 가장 위대한 시인 10위, 21세기 주목해야할 시인 1위, 평소에 좋아하는 시인으로는 윤동주시인 다음으로 지목된다. 저작권 협회의 집계 기준으로 류시화 시인의 시는 라디오에서 가장 많이 낭송되는 시로 손꼽히기도 한다.
류시화 시인의 작품은 문단과 문예지에도 외면을 당하기도 했는데 안재찬으로 활동했을 당시, 민중적이고 저항적 작품을 지향했던 당대의 문단과는 달리 신비주의적 세계관의 작품세계로 인해 문단으로부터 비판을 받았고 외계인이라고 불리기까지 했다. 적극적인 현실참여를 주장하고 있는 민중주의자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던 당시의 문단에서 현실 도피의 소지를 제공한다며 비난을 받았으며 대중의 심리에 부응하고 세속적 욕망에 맞춰 작품이 창작되었다는 혹평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시인 이문재씨는 류시화의 시가 그 때나 지금이나 거의 변하지 않고 초기의 시세계를 유지하고 있음에 주목하고 20여년이라는 시간 동안 자신을 지키며 변화하지 않았다는 것이 큰 변화 못지 않은 견딤이라 평가하기도 하였다. 류시화의 시는 일상 언어들을 사용해 신비한 세계를 빚어내어, 걸림없이 마음에 걸어들어오면서 결코 쉽고 가볍게 치부할 수 없는 무게로 삶을 잡아내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낯익음 속에 감추어져 있는 낯설음의 세계를 재발견하는 시세계를 한껏 선사해왔다.
그의 대표작인『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에서는 한층 깊어진 눈빛을 지닌 시세계가 곱씹히고 곱씹힌다. 류시화는 가타 명상센터, 제주도 서귀포 등에서 지내며 네팔, 티벳, 스리랑카, 인도 등을 여행하며 그가 꿈꿔왔던 자유의 본질 그리고 꺠달음에 관한 사색과 명상들이 가득한 산문집을 내기도 했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실소를 자아내는 일화들 속에서, 그렇지만 그냥 흘려버리기엔 너무 무거운 이야기로 삶이 무엇인지에 대한 가르침을 전해준다.
시집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을 비롯하여 잠언 시집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치유 시집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과 하이쿠 모음집 『한 줄도 너무 길다』,『백만 광년의 고독 속에서 한 줄의 시를 읽다』를 집필했고, 산문집 『삶이 나에게 가르쳐준 것들』을 썼다. 또한, 인도 여행기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 『지구별 여행자』와 인디언 추장 연설문 모음집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를 썼으며, 『마음을 열어주는 101가지 이야기』, 『티벳 사자의 서』, 『조화로운 삶』, 『달라이 라마의 행복론』, 『용서』, 『인생수업』 등의 명상서적을 우리말로 옮겼다.
박속심 기자(sisatim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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