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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캠페인:책을 읽읍시다]

[책을 읽읍시다 (523)] 내가 너라면 날 사랑하겠어



내가 너라면 날 사랑하겠어

저자
호어스트 에버스 지음
출판사
갈매나무 | 2014-07-21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사부아르 비브르savoir-vivre, 이런 게 인생이지!” ...
가격비교


[책을 읽읍시다 (523)] 내가 너라면 날 사랑하겠어

호어스트 에버스 저/장혜경 역 | 갈매나무 | 276쪽 | 13,000원



[시사타임즈 = 박속심 기자] 인생이 매일 금요일 같지는 않다. 나이를 먹을 만큼 먹어도 뭐가 옳은지 잘 모르겠다. 마냥 달릴지, 죽치고 기다리는 게 나을지도 헷갈린다. 줏대 없이 팔랑거리다 보니 몸만 피곤하고 한없이 게을러지고 싶다. 그렇게 나쁘진 않다. 가끔은 될 때까지 느긋하게 기다려 보기도 하고, 타인의 의견에 귀 기울이기도 하고, 견딜 수 없는 게 있다면 그런 대로 받아들이면 된다.


『세상은 언제나 금요일은 아니지』에서 방황하는 한량 혹은 잉여의 자유를 부르짖던 독일의 작가 호어스트 에버스. 그는 이 책에서 또 한 번 어이없을 만큼 유쾌하고 허를 찌르는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에버스는 그렇게 에버스다. 중년이 되었다 하여 갑자기 삶에 대한 통찰을 늘어놓아 당황스럽게 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게으른 로맨티스트의 유유자적 사는 이야기를 소풍 가듯 따라가 보는 것은 여전히 즐겁다. 개운하다.


저자는 에피소드들을 모두 다섯 개의 부로 나눠 소개한다. 각 부마다 등장하는 에피소드들은 부제목에서 연상되는 나름의 공통점들을 갖고 있는 동시에 각자의 개성 또한 뚜렷하다. 거의 모든 에피소드에서 에버스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며 때로는 실소 때로는 폭소가 터져 나오는 엉뚱하고 발랄한 실수담과 우스꽝스러운 작태들이 신나게 벌어진다.


1부 ‘시작에는 끝이 있기 마련’에서는 끔찍하게 시작됐으나 결과적으로 나름의 해답을 던져 준 에피소드들이, 2부 ‘몰락의 개화’에서는 허울만 좋을 뻔했던 마지막이 훈훈하게 마무리되는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3부 ‘큰 기대’에서는 말 그대로 기대와 달리 식은땀만 쏙 빼게 만든 혹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게 만든 소동들이 벌어진다. 4부 ‘재능과 현실’에서는 타인에게는 이해받지 못할 독특한 재주를 쓸모 있게 활용하는 이들의 경험담이 등장해 웃음을 터뜨리게 만든다. 5부 ‘위풍당당 행진곡’에서는 느긋하고 여유롭게 살아가는 에버스 식 인생관을 선보이는 에피소드들이 가득하다.


머리숱도 적고 키도 작은 데다 배까지 나온 우리의 호어스트 에버스. 그는 요즘 흔히들 말하는 ‘꽃중년’, ‘미중년’이라기보다는 ‘잉여 중년’에 가깝다. 어엿한 작가이자 만담가이지만 나가야 할 직장이 있는 것도 아니고 출퇴근 시간도 없는지라, 남들에겐 그가 딱히 정해진 직업 없는 한량처럼 보인다. 그런 이유로 딸아이네 반 학부모들이나 친구들로부터 휴일이면 애들을 봐 줄 대역으로 뽑히기 일쑤다. 그는 매번 순발력 있게 위기 상황을 모면하려 애쓰지만 결국 자신을 제외한 거의 모두를 행복하게 할 수 있다는 설득에 떠밀려 기꺼이(?) 아이들을 도맡는다. 한시도 가만히 있을 줄 모르는 아이들까지 그를 좋아해 주니 ‘팔자 좋은’ 에버스의 인생은 조용할 날이 없다.


『세상은 언제나 금요일은 아니지』에서 혈기 넘치고 엉뚱 발랄하던 베를린 청년은 이제 자식의 교육에 이바지하며 늘어나는 뱃살과 각종 노화성 질환을 걱정하는 40대 후반의 아저씨가 되었다. 가는 세월이야 항상 아쉽고 시절은 하 수상하니 아무리 호어스트 에버스라 해도 더 이상 그의 ‘똘끼’가 변함없기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전보다 더 차진 소소하고 일상적인 그의 유머에 오히려 더 고개가 끄덕여진다. 세월 따라 변한 몸과 달리 세상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은 또한 여전히 예리하다. 아이들이 바글바글한 동네 수영장, 열차 도착이 지연되는 기차역, 딸과 함께 나선 벼룩시장, 대형 슈퍼마켓, 등산길…….


에버스는 이 모든 장소에 존재하는 사람들의 희로애락을 그만의 독특한 관점으로 그려 낸다. 아무 생각 없이 키득대면서도 그 뒤에 숨어 있는 사람의 심리를 포착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에버스는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도 ‘되고죽기’에 대한 확신이 널리 퍼져야 한다고 호기롭게 말한다. 대부분의 문제는 원래의 문제를 추방시키거나 덮어 버리는 또 다른 문제가 발생했을 때 저절로 해결된다는 확신 말이다. 이런 확신을 갖고 생각하면 모든 일이 쉬워진다.


호어스트 에버스의 이야기를 처음 읽을 때 머릿속에 떠오르는 말은 무엇일까? 개인적인 경험을 토대로 추측해 본다면, “으잉?”, “무슨 이야길 하려는 거지?”, “에엥?”, “내가 제대로 읽은 게 맞나?” 등등……. 그의 유머는 그리 단순하지 않다. 한 번 더 읽어 봐야 이해가 될 수도 있고, 웃기긴 웃긴데 어쩐지 생경한 기분이 들 수도 있다. 그렇다. 그의 유머는 어찌 보면 ‘병맛’(어떤 대상이 '맥락 없고 형편없으며 어이없음'을 뜻하는 신조어)에 가깝다. 마흔이 훌쩍 넘은 독일 아저씨의 유머를 병맛이라고 하다니, 어쩐지 웃기는 한편 이래도 되나 싶다. 그러나 사실이다.


그가 하루 이틀 이랬던 것은 아니다. 전작 『세상은 언제나 금요일은 아니지』에서도 ‘병맛스러운’ 일화는 등장한다. 새로 산 연필심이 끝까지 닳으려면 몇 번 줄을 그어야 할지 궁금했던 그는 1만7천 번이 넘도록 선을 그어 본다. 그러던 중 문득 ‘이거 시간 낭비 아냐?’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초고수 한량답게 ‘그럼 안 되나? 어차피 내 시간인데!’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어쩐지 당황스럽지만 배시시 웃음이 새어 나온다. 에버스의 유머를 ‘고품격 B급 코미디’라 이름 붙일 수 있는 이유가 이런 일화들 속에 있다.


“나는 왜 이렇게 살까”라며 스스로를 자책하는 이들의 어깨를 두드리며 에버스는 말한다. “내 인생인데, 뭐 어때?” 그는 가끔이라도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살 수 있는 자유를 만끽할 뿐이다. 생각하고 싶은 대로 생각하고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는 자유, 그리고 너무나 많은 자유가 주어졌지만 진정한 자유는 맛보기 힘든 오늘날 웃고 싶은 만큼 마음껏 웃을 자유 말이다. 처음에는 그의 유머가 남다르고 생경하게 느껴지다가도, 읽고 나면 어쩐지 개운하고 통쾌하다.


처음에는 이게 정말 실화인지 허구인지 헷갈리지만, 계속해서 읽다 보면 그런 건 전혀 상관없어진다. 에버스가 들려주는 이런저런 이야기 속에 빠져들기 시작하면 머릿속 한구석에 딱지처럼 눌러앉아 있던 우울한 잡생각, 고민거리는 모두 잊혀진다. 책장을 덮고 나면 어느새 그와 똑같이 “사부아르 비브르savoir-vivre!(이런 게 인생이지!)”를 외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작가 호어스트 에버스 소개


1967년 니더작센 주 디프홀츠 근교에서 태어나, 1987년 독문학과 정치학을 공부하기 위해 베를린으로 유학을 갔다. 이후 베를린에서 여자친구, 아이와 함께 살고 있다. 1990년부터 정기적으로 베를린의 여러 크고 작은 무대에 올라 자신이 쓴 텍스트를 읽고 있으며, 2001년부터는 솔로프로그램인 〈에버스가 보여주는 세상〉과 〈느낌으로 아는 것들〉을 베를린 밖에서도 공연하고 있다. 1996년에는 ‘티타닉’지 주최 낭독경연대회인 테오도르 아도르노 모사대회에 보브 비억과 함께 출전하여 상을 받았다.


1994년 ‘게오르크-크리스토프-리히텐베르크 상’, 1996년 ‘테오도르 아도르노 모사대회 상’, 2000년 ‘파울라나 카바레 상’, 2001년 소극장예술상인 ‘프릭스 판테온 상’과 ‘잘츠부르거 슈티어 상’, 2002년 ‘독일 카바레 상’, 2006년 ‘할터른-키프 소극장예술상’, 2008년 ‘독일 소극장예술상’을 받는 등 상복 많은 작가이기도 하다. 작품집으로 1997년 출간된 『베딩』,2002년에 『세상은 언제나 금요일은 아니지』, 2005년의 『느낌으로 아는 것들』, 2008년의 『검색기 내 인생』 등이 있다.


박속심 기자(sisatim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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