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읍시다 (589)] 차브 : 영국식 잉여 유발사건
오언 존스 저 | 이세영· 안병률 역 | 북인더갭 | 428쪽 | 17,500원
[시사타임즈 = 박속심 기자] 『차브』는 영국의 젊은 정치평론가 오언 존스의 2011년 화제작으로 ‘뉴욕 타임스’ 최고의 논픽션, ‘가디언’ 올해의 책에 선정되면서 영국은 물론 국제적으로도 큰 조명을 받은 책이다.
영국 하층계급의 문화적 아이콘으로 불리는 ‘차브’ 현상을 규명하면서 저자는 점점 더 가혹해지는 계급 혐오의 이면에 보수당과 신노동당 정부를 거치며 형성된 제조업의 몰락, 불평등의 심화, 노동조합 약화 같은 정치경제적 이슈들이 숨어 있음을 파헤친다. 이 책은 강렬하면서도 충격적인 계급 혐오와 불평등에 대한 보고서다.
대체 차브는 누구인가? 영국의 언론과 미디어에서 정의하는 차브는 대체로 더러운 공영주택에 살면서 정부의 복지예산이나 축내는 소비적인 하층계급과 그들의 폭력적인 자녀들을 뜻한다. 이 책에서 오언 존스는 차브에 들러붙은 이런 혐오스런 ‘식객’ 이미지와 사투를 벌인다.
먼저 이 책은 ‘차브’라는 캐리커처가 어떻게 노동계급을 악마화하는지를 집중적으로 파헤친다. 가령 영국의 헬스클럽 체인 짐박스는 ‘차브 파이팅’이라는 수업을 개설하여 길거리에서 마주치는 차브를 향한 공개적 폭력을 선동하며, 액티버티즈 어브로드라는 여행사는 기분 좋은 해외여행에서 되도록 차브와 마주치지 않는 루트를 상품화한다. 특히 1장에 소개된 섀넌 매튜스의 사례는 오늘날 영국에서 차브가 어떻게 언론과 정치인들의 ‘먹잇감’이 되는지를 자세히 소개한다.
지난 2000년대 후반 영국에선 마들렌과 섀넌이란 여자 아이가 실종되는 사건이 있었다. 마들렌은 상류층 출신으로 포르투갈의 유명 휴양지에서 사라진 반면, 섀넌은 잉글랜드 북부의 대표적인 낙후지역인 듀스베리 모어에서 종적을 감췄다. 그런데 언론과 유명인들의 동정과 관심은 거의 마들렌에게 쏠렸다. 게다가 섀넌 실종사건이 친어머니 캐런 매튜스와 동거남이 거액의 현상금을 노려 꾸며낸 사건이라는 점이 밝혀지면서 불똥은 캐런이 대표하는 집단, 그러니까 지역의 하층민 차브들에게로 튀었다. 기자들과 정치인들은 캐런 매튜스와 지역민들을 인간 이하의 ‘복지 식객’으로 사납게 몰아붙였다.
이런 차브 혐오주의는 영국의 대중문화에서도 짙게 감지된다. ‘차브 사용법’류의 책들이나 차브스컴 같은 웹사이트는 차브를 슈퍼마켓의 계산원 같은 직업을 가지고, 10대에 아이를 낳지 못하면 바보 취급을 당하며, 짝퉁 유명브랜드를 주렁주렁 걸치고 다니는 캐릭터로 묘사한다. 아마 차브 혐오의 가장 극단적인 사례는 리얼리티 TV쇼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복지예산이나 축내면서 노동을 회피하고 소파에 누워 하루 종일 TV리모컨이나 돌리는 하층계급으로 묘사되는 차브 캐리커처에 맞서 저자는 이들 차브의 역사가 1980년부터 1990년대 대처 정부의 보수당, 그리고 신노동당의 잘못된 정치 때문임을 주장한다. 이 과정에서 저자가 가장 강조하는 바는 제조업의 몰락이다. 잘 알려진 대로 영국은 산업혁명의 주역으로 섬유, 탄광, 자동차 등 한때 잘나가는 제조업의 중심지였다. 그런데 대처가 집권하면서 거대한 탈산업화가 시작됐고 영국은 금융과 정보, 엔터테인먼트 같은 비제조업 쪽으로 선회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대처는 노동조합을 강하게 탄압했고, 광부노조를 힘으로 굴복시킴으로써 노조가 더이상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또한 1990년대 집권한 신노동당은 더이상 노동계급의 당이 아니었다. 그들은 ‘우리는 모두 중간계급’이라는 구호를 내세워 노동 유연성을 강조했고 누구든 실력만 있으면 중간계급이 될 수 있다는 환상을 심어줬다. 그러나 대처 시대의 산업 구조조정으로 이미 좋은 일자리는 거의 사라진 상황이었으며 그에 따른 결과는 참혹했다. 한때 존경받는 지역사회의 일원이자 안정된 소비층을 형성했던 노동계급은 사라지고 대형 할인마트 판매원, 콜센터 직원, 비정규직, 파트타임 노동자, 경호원, 간병인, 중소 자영업자 같은 저숙련 일자리들이 주류를 차지했다. 이들 신 직업군은 바로 오늘날 끊임없이 경멸당하는 차브의 직업군과 일치한다.
이들 보수당과 신노동당 정치인들과 언론인들이 차브를 헐뜯는 주된 이유는 부당한 복지수당 지급 때문이었다. 그러나 부정수급 건을 조사해본 결과 대부분은 식비나 난방비 등을 보조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직업을 가진 것으로 드러났다. 해마다 수백만 파운드가 부유층의 탈세로 날아가는 상황에서 여타 서유럽에 비하면 매우 낮은 액수의 수당을 받는 극빈층에게 이빨을 드러낼 일인지는 따져봐야 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하층계급이 노동을 회피한다는 주장도 사실이 아니다. 싱글맘이나 싱글대디의 대부분은 일자리를 원하지만 불안정한 파트타임을 빼고는 일자리가 없을 뿐이다.
이 책은 불평등 현상이 결코 영국에 뒤지지 않는 한국 사회에도 큰 경종을 울린다. 중국의 부상으로 한국의 제조업은 위기에 직면해 있다. 또한 지난 20년간의 산업 구조조정에 따른 일자리 부족은 심각한 상황이고 이에 따라 판매직, 서비스업, 임시직 등의 비숙련 노동이 크게 늘고 있으며 영세 자영업으로의 유입 인구도 엄청나다. 인권 모독에 가까운 차별대우와 욕설에 노출된 콜센터 직원, 상품 판매원, 비정규 임시직의 문제가 대두된 것도 어제 오늘의 아니다. 이 책이 지적하는바, 우리 사회 역시 양질의 일자리 마련, 서민 감세와 부유층에 대한 증세, 무엇보다 노동계급의 정당한 조직화가 다시 논의돼야 할 시점이다.
작가 오언 존스 소개
1984년 영국 셰필드에서 태어나 그레이터 맨체스터주(州) 스톡포트에서 자랐다. 옥스퍼드 대학에서 역사학을 공부했으며 노동당 연구원, 노동조합 활동가로 일했다. 2011년 영국 하층계급의 현실을 파헤친 『차브』(Chavs)를 펴내 영국은 물론이고 국제적으로도 큰 조명을 받았다. 『차브』는 그해 출간된 최고의 정치학 도서로 평가되면서 『가디언』 올해의 책에 추천되었고, 『뉴욕 타임스』 선정 최고의 논픽션 10권에 선정되었다. 현재 『가디언』의 고정 칼럼니스트로 있으면서 『뉴 스테이츠먼』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등에 기고하고 있다. 저서로 『차브』 『기득권층』(The Establishments)이 있다.
박속심 기자(sisatim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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