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읍시다 (634)] 신의 광대 어거스트
헨리 밀러 저 | 김수영 저 | 이제하 그림 | 우리학교 | 128쪽 | 11,000원
[시사타임즈 = 박속심 기자] 어른과 청소년이 함께 읽는 철학 우화. 참된 자아를 찾아 떠난 어느 광대의 이야기. 헨리 밀러가 "이제까지 썼던 모든 작품들 중에서 가장 특이한 소설"이라고 불렀던 이 작품은 밀러가 작가로서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던 1948년에 발표된 것으로, 자신의 자화상이라고도 할 수 있는 광대 어거스트의 이야기를 통해 참된 자아의 의미를 묻고 있다.
시어처럼 아름다운 글, 철학자 김수영의 담백하면서도 세련된 번역, 여기에 노작가 이제하의 독특하면서도 따듯한 그림이 더해져 책을 읽는 동안 마치 세 사람의 합주를 듣는 듯 색다른 즐거움을 맛볼 수 있다. 만인의 주목을 받던 광대 어거스트가 자신이 세상의 광대가 아닌 신의 광대였음을 깨닫기까지의 기이한 여정이 담긴 이 작품은 한 편의 아름답고 세밀한 철학 우화로 읽히며 행복의 비밀을 찾아 헤매는 어른들에게도 이제 막 '나'를 향한 발걸음을 떼기 시작한 청소년들에게도 따뜻한 감동을 선사한다.
사람들은 누구나 행복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내가 나일 때 비로소 우리는 자신이 원하는 행복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행복을 갈망하면서도 정작 자기 자신이 되기 위해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 『신의 광대 어거스트』의 주인공 어거스트도 마찬가지다.
이름 난 광대 어거스트는 어느 날 자신의 얼굴을 두꺼운 분장으로 감춘 채 사람들을 웃기고 울리는 것이 과연 행복한 삶일까에 대해 깊은 의문을 갖는다. 그래서 화려한 무대를 뒤로 하고 진정한 행복을 찾아 길을 떠난다. 여기에서 우리는 작가가 던지는 첫 번째 질문과 마주하게 된다. 자기의 본래 얼굴을 감춘 채 사람들을 대하는 나, 혹은 다른 사람들의 눈에 비춰진 나의 모습이 정말로 나 자신이라고 할 수 있을까?
가면 뒤의 삶에 자기 자신을 빼앗긴 슬픈 존재. 이는 비단 광대만이 아니다. 우리 모두는 자기 본래의 얼굴을 잃어버린 채 삶이라는 무대 위에서 광대처럼 다른 사람들을 웃기고 울리는 데 열중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그렇기에 광대 어거스트의 슬픔은 우리 모두의 슬픔이자 고뇌이기도 하며 이 책을 읽는 동안 우리는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모습으로 살고 있는 스스로의 모습을 뒤돌아보게 된다.
어거스트는 만인의 주목을 받던 광대였다. 그러나 어느 날 문득 자신의 삶이 공허하다고 느끼고 참된 자아를 찾아 떠나게 되면서 어거스트라는 이름은 하나의 전설이 되고 만다. 시간이 흐른 어느 날 우연히 옛 동료들이 있는 유랑극단을 발견한 어거스트는 그곳에서 허드렛일을 하며 평범하고 조용한 나날을 보낸다. 화려한 무대와 박수갈채 대신 경건한 노동과 평온한 미소를 얻게 된 자신의 모습에 만족하는 어거스트.
하지만 아파서 몸져누운 친구 앙투안을 대신해 무대에 서게 되면서 어거스트는 또다시 혼란에 휩싸이게 된다. 평범한 광대 앙투안을 유명한 스타로 만들어주고 싶었던 어거스트의 선의가 오히려 두 사람 모두에게 불행한 결과만을 가져왔기 때문이다. 새롭게 태어난 앙투안은 진정한 앙투안도 진정한 어거스트도 아니었다.
오랜 방랑과 고뇌 끝에 어거스트는 비로소 자신이 세상의 광대가 아니라 신의 광대였음을 알게 된다. “그의 참된 비극은, 또 다른 세상, 무지와 연약함 너머의 세상, 웃음과 눈물 너머의 세상에 대한 자신의 인식을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 줄 수 없었다는 데에 있었다”라는 말을 통해 짐작할 수 있듯이 자신의 힘으로 누군가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 어리석은 오만에서 비롯된 것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어거스트의 이러한 깨달음은 눈물에서 태어났으며, 우리는 그가 마지막 짓는 평온한 미소에서 “이미 우리에게 속해 있던 것들”이 무엇인지 어렴풋하게나마 느끼게 된다.
이 작품을 통해 작가가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언뜻 보아 명료하다. 진정한 자아를 잃어버린 삶이 과연 행복할 수 있는가에 대한 문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광대 어거스트라는 인물을 통해 나를 잃어버린 어리석은 자신을 비웃는 법을 배운다. 나 자신으로 돌아올 때에야 진정으로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을 어거스트의 눈물 섞인 깨달음을 통해 알게 된다.
그러나 책을 덮은 뒤에도 물음은 계속 이어진다. 예술가로서 자기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는 밀러의 고뇌가 곳곳에서 묻어나는 이 작품은 진정한 자아에 도달하려는 한 영혼에 관한 우화이자 나에서 ‘나’로 되돌아오는 유토피아적 여정이 담긴 이야기기도 하기 때문이다. 어거스트는 마침내 어거스트로 되돌아온다.
이 작은 책이 매력적인 이유는 이렇듯 숱한 철학적 물음과 함께 해석의 가능성이 활짝 열려 있기 때문이다. 행복의 비밀을 찾아 헤매는 어른들에게도, 이제 막 ‘나’를 향한 시끄럽고도 긴 여행을 시작한 청소년들에게도 분명 즐거운 여정이 될 것이다.
작가 헨리 밀러 소개
미국의 장편소설가이자 수필가. 뉴욕에서 독일계 중산층 집안의 아들로 태어나, 브루클린에서 자랐다. 개성과 반항심이 강해서 대학을 포기하고, 각종 직업을 전전하면서, 지적·성적·문학적 편력을 거쳤다. 헨리 밀러의 본격적인 작품 활동은 1930년대에 프랑스에서 시작되었다. 밀러에게 세계적인 베스트 셀러 작가의 명성을 가져다준 작품인 북회귀선과 남회귀선은 거침없는 표현의 자유를 발휘하여 당시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이 작품들은 외설 시비로 프랑스에서 먼저 출간되었는데, 미국에서 출간하기까지는 30여 년이 걸렸다. 이후 밀러는 표현의 자유를 성취한 위대한 승리자로 명성을 떨쳤으며, 미국 캘리포니아에 정착하여 진보적인 작가 그룹을 이끌어나갔다. 밀러는 이 시기에 섹서스, 플렉서스, 넥서스 등으로 이루어진 3부작 '장밋빛 십자가'를 완성하였다. 밀러는 노년을 작가로서의 화려한 명성을 뒤로하고 수채화를 그리며 평화롭게 지냈다.
그림 : 이제하
경남 밀양에서 태어났으며, 홍익대 조소과와 서양화과에서 수학했다. 현대문학 신태양 한국일보 등을 통해 시와 소설로 등단했다. 저서로는 소설집 『초식』 『기차, 기선, 바다, 하늘』 『용』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 『독충』 『코』 등과 장편소설 『열망』 『소녀 유자』 『진눈깨비 결혼』 『능라도에서 생긴 일』, 시집 『저 어둠 속 등빛들을 느끼듯이』 『빈 들판』, 영화 칼럼집 『이제하의 시네마 천국』 『괴짜들, 짱구들, 젊은 영화들』, CD 이제하 노래 모음 등이 있다. 이상문학상, 한국일보문학상, 편운문학상, 동리문학상 등을 수상했으며, 5회의 개인전을 열었다.
박속심 기자(sisatim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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