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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캠페인:책을 읽읍시다]

[책을 읽읍시다 (660)] 그것이 나만은 아니기를

 

그것이 나만은 아니기를

저자
구병모 지음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 2015-03-03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내 밖에 있는 나 아닌 모든 것은 나에 대한 침입자 그러니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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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읍시다 (660)] 그것이 나만은 아니기를
 
구병모 저 | 문학과지성사 | 301쪽 | 12,000원

 

 

 

[시사타임즈 = 박속심 기자] 소설가 구병모의 두번째 단편집 『그것이 나만은 아니기를』이 출간됐다. 구병모는 2009년 성장소설의 서사에서 벗어나 현대인의 비틀린 욕망을 그려내며 한국문학의 지형을 확장했다는 평가와 독자의 환호를 동시에 거머쥔 『위저드 베이커리』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그 뒤 세상에서 단절된 반인반어의 사랑과 태곳적 아름다움을 다룬 『아가미』, 한국문학에서 유례없던 노년의 여성 킬러 캐릭터를 제시한 『파과』 등 독특한 시도를 거듭하며 장편소설 5권과 단편집 1권을 출간해왔다. 줄곧 청소년문학과 본격문학을, 순수문학과 장르소설을 자유자재로 넘나든다는 평을 들어온 구병모에게 ‘문학’ 앞에 붙는 수식은 이제 큰 의미가 없다. 『그것이 나만은 아니기를』은 집요한 현실 관찰자이자 방대한 이야기 수집가인 작가의 널찍한 스펙트럼 어디쯤을 베어낸 결과물이다.

 

『그것이 나만은 아니기를』에서 구병모 특유의 묵시록적 배경은 현실과 거리를 두기 위해서라기보다 사람들의 어쩔 수 없는 졸렬함을 증폭시켜 드러내기 위해 설정한 장치 같아 보인다. 자기변호와 합리화는 묵시록적 설정이 두드러지는 두 소설, 「식우」와 「덩굴손증후군의 내력」에 이르러 비정한 문장을 토해낸다.

 

사람도 녹이는 빗속에서 “한순간의 충동으로 하해와 같은 베풂과 나눔을 실천한들” “나중 가면 피차 난처해질 뿐” “품속에 몰티즈 한 마리나 무사히 지켜내는 게 정신적으로 남는 장사이며, 이 순간의 외면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니, “다만 불가능한 행운과 안녕을 비는 것이 서로에게 최선이라 믿는다.”

 

자신 역시 언제고 덩굴이 되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모멸과 착취를 당하는 사람들조차 “보기에 좀 불편해 그렇지, 못 본 척하고 가만있으면 지낼 만은 합니다”라며 한때 사람이었던 덩굴들을 말라죽게 내버려두고 심지어 베어버린다. 아이러니한 지점은 을과 을의 사슬이 맞물려 있다는 것이다. 과거에 상대가 나를 돕지 않았기 때문에, 나 역시 상대를 구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그것이 나만은 아니기를』에 수록된 소설들은 무엇이 틀렸다고 호통을 치거나 서로 도우라,고 빛 좋은 교훈을 던지지는 않는다. 떠넘기고 외면하며 방임하는 자기합리화를 일삼는 지금의 우리를 너무나 잘 보여줄 뿐이다. 치부를 살살 건드려 결국 터뜨려버리는 견고한 문장들을 지켜보는 일은 묘하게 통쾌하기까지 하다.

 

짧은 문장이 주류인 요즘이지만 구병모의 소설에서 한 문장의 호흡은 꽤 길다. 구병모의 길고 정확한 문장을 채우는 것은 앞서 이야기했던 치밀한 현실 묘사만은 아니다. 구병모의 소설을 읽다 보면 그리스 신화와 철학(「파르마코스」), 그림 속으로 들어간다는 옛 설화와 현대 예술(「관통」), 대중문화와 동시대 사람들의 시시콜콜한 수다(「이창」「어디까지를 묻다」)까지 온갖 ‘다른 이야기’들이 표현이나 구성으로 불쑥 돌출된다.

 

구병모는 현실을 집요하게 관찰하고 허기진 듯 동서고금 무엇이든 읽어낸 뒤 제 안에서 소화시켜 소설로 써낸다. 그것이 작가이기 이전에 동시대 사람으로서 현실 반영적 이야기를 한다 해도, 구병모의 소설이 차별성을 획득하는 지점이다.

 

“구병모는 읽고 쓰고, 우리는 그녀가 읽고 쓴 것을 읽는다”(윤경희). 구병모는 신화와 옛이야기, 철학과 애니메이션에 이르는 ‘참고문헌’을 자기 식대로 소화하고, 비정한 현실에 집요하게 파고들어 정확한 ‘디테일’을 끄집어낸다. 그러므로 『그것이 나만은 아니기를』은 속독(速讀)과 정독(情讀)이 함께 필요한 소설이다. 촘촘한 문장에 적나라하게 드러난 지금-여기-우리의 치부를 바로 마주하면서, 곳곳에 흩뿌려진 ‘힌트’를 차분하게 잡아내 숨겨진 알레고리를 발견하며 읽기를 추천한다.

 

 

작가 구병모 소개

 

1976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편집자로 활동하였다. 현재는 집필 활동에 몰두하고 있다. 제2회 창비청소년문학상을 수상한 『위저드 베이커리』는 신인답지 않은 안정된 문장력과 매끄러운 전개, 흡인력 있는 줄거리가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녀의 데뷔작 『위저드 베이커리』는 기존 청소년소설의 틀을 뒤흔드는, 현실로부터의 과감한 탈주를 선보이는 작품이었다. 청소년 소설=성장소설 이라는 도식을 흔들며, 빼어난 서사적 역량과 독특한 상상력으로 미스터리와 호러, 판타지적 요소를 두루 갖추었다는 평을 받았다. 작품을 지배하는 섬뜩한 분위기와 긴장감을 유지시키면서도 이야기가 무겁게 얼어붙지 않도록 탄력을 불어넣는 작가의 촘촘한 문장 역시 청소년뿐 아니라 일반 독자들의 새로운 상상력을 자극하는 요소였다.

 

억울한 누명을 쓰고 집에서 뛰쳐나온 소년이 우연히 몸을 피한 빵집에서 겪게 되는 온갖 사건들은 판타지인 동시에 절망적인 현실을 비추는 거울이며, 일반문학과 장르소설의 묘미를 적확한 비율로 반죽한 이 작품만의 특별한 미감은 색다른 이야기에 목말랐던 독자들에게 쾌감을 선사했다. 또한 『위저드 베이커리』에서 마법사의 눈에 비친 현대인의 비틀린 욕망은 무시무시하고, 평범한 중산층 가족이 숨기고 있는 비밀은 끔찍하기까지 하다. 『헨젤과 그레텔』 같은 ‘잔혹동화’의 바통을 이어받으면서도 이들의 문법을 절묘하게 전복시킨 이 작품은 독자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어 화제가 되었다.

 

구병모 작가는 한 인터넷 웹진에서 '곤충도감' 이라는 작품을 연재했다. 이름을 가리고 봐도 구병모 작가의 작품인지 알 수 있을 만큼 작가 특유의 분위기가 살아 있는 작품으로, 용서에 대한 것을 주제로 다루고 있는 소설이다. 장편소설 『아가미』, 『방주로 오세요』, 『피그말리온 아이들』, 단편집 『고의는 아니지만』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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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속심 기자 sisatim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