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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캠페인:책을 읽읍시다]

[책을 읽읍시다 (688)] 택배 왔어요

 
[책을 읽읍시다 (688)] 택배 왔어요  

이미경 저 | 다른 | 152쪽 | 10,000원

 

 

 

[시사타임즈 = 박속심 기자] 『택배 왔어요』는 연극, 뮤지컬, 영화 등 무대 위에 펼쳐지는 다양한 예술작품을 색다른 형태로 만나보는 ‘무대 위의 문학’ 시리즈 세 번째 책이다. 「그게 아닌데」 」맘모스 해동」 등 작품성과 대중성을 고루 갖춘 희곡들로 연극계에서 주목받고 있는 이미경 작가가 동명 희곡을 소설화했다.

 

평소 노인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꾸준히 다뤄 온 작가의 다른 작품 「우울군 슬픈읍 늙은면」 「무덤이 바뀌었어요!」와 함께 노인을 주요 인물로 등장시킨 작가의 ‘노인 3부작’ 중 하나이다. 자칫 무겁거나 신파조로만 다뤄질 수 있는 내용을 작가 특유의 독특한 상상력과 해학을 곁들여 환상적으로 풀어냈다.

 

어느 날 새벽 승일과 미란의 집으로 커다란 택배 상자가 배달되어 온다. 김치냉장고 하나는 거뜬히 들어갈 크기의 상자와 쾨쾨한 냄새에 승일은 ‘유기견’이라 단정 짓지만, 사실 그 택배는 ‘분실노인 센터’라는 해괴한 곳에서 보내온 어머니 이길화였다. 유산상속에 대한 앙심 때문에 어머니를 모실 생각이 조금도 없던 승일은 그때부터 분실노인 센터와 탁구공 주고받듯 택배를 두고 옥신각신한다. 그러면서 승일과 미란, 어머니 이길화가 숨겨 온 속내가 하나둘 밝혀진다.

 

“당신이 뭔데 우리 엄마를 계속 보내면서 같이 살라고 강요하는데?

너는 양심도 없냐? 돈도 없냐? 부모 모실 방도 없냐? 그렇게 약 올리는 거지?”

 

승일과 미란 부부는 고생해서 어머니가 든 상자를 반송하지만 며칠 후면 어김없이 택배는 돌아온다. 부부는 불편한 상황을 피하려고 열어 보지도 않고 상자를 돌려보내기 시작한다. 그러던 어느 날, 부부에게 유학 간 큰아들 지후를 납치했다며 협박 전화가 걸려 온다. 납치범은 증거로 아들 물건을 택배로 보냈으니 확인하라고 한다. 부부는 이성을 잃고 지후의 물건이 들어 있는 택배 상자를 찾으려 동분서주하지만, 아들의 물건이 든 상자와 어머니가 든 상자가 엇갈려 배달되어 오면서, 승일은 마침내 견디고 있던 현실과 꾹꾹 억눌러 온 어머니에 대한 분노를 한꺼번에 폭발시키고 만다.

 

“난 요즘 시한폭탄이야. 터지기 직전이라고. 사방에서 초침 소리가 째깍째깍 들려. 지후랑 민후 아니었으면 벌써 열두 번도 더 터졌을 거야.”

 

승일은 자식을 끔찍이 사랑하는 가장이자 자신의 일에 과도할 정도로 매진하는 인물이지만 마음 같지 않은 현실과 빚더미에 짓눌려 표류한다. 그는 부모와 자식, 가정에 대한 책임감과 죄책감을 오롯이 짊어진 개인이면서, 그 책임을 감당하지도 피하지도 못한 뒤틀림을 그대로 보여 주는 개인이기도 하다. 승일은 어머니 이길화와 마찬가지로 아들을 끔찍하게 사랑해 필리핀까지 유학 보내면서도 자신은 돈을 아끼려 냉골에서 잠드는 인물이지만, 사업이 바닥으로 가라앉으면서 실추된 위상에 대한 분노는 또 다른 개인인 어머니에게로 폭발한다.

 

택배 상자에 실려 왔다 갔다 하면서도 자식이나 세상에 불평 한마디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처지인 이길화나, 택배로 배달되어야 하는 시어머니의 처지를 동정하면서도 한편으로 자식 교육과 빚을 걱정해야만 하는 미란 역시 현실 속 인물들을 그대로 대변한다.

 

작가는 부조리한 현실을 고발하고 극적인 상상력을 주는 매개체로 ‘분실노인 센터’를 등장시킨다. ‘길 잃은, 연고지를 잃은 노인들에게 집을 찾아 주기 위한 취지로 시작’된 이 센터는 노인이 끝도 없이 찾아들자 본래 취지를 유지하지 못한다. 넘치는 인원과 부족한 예산 때문에 택배 상자로 노인을 돌려보내고, 수용인원 이상이 되면 ‘처리’를 감행하는 수상쩍은 기관으로 변모한다. 늘어만 가는 버려진 노인들로 센터의 원래 취지는 무색해진다.

 

‘택배’라는 수단을 사용해 노인을 주고받는다는 설정은 ‘말도 안 돼’라며 독자들에게 극적 재미를 부여하는 핵심적 장치이고 현실과 다른 공간을 제공받는 편안함을 주지만, 실제로 버려지는 노인들의 수나 그들이 어떤 취급을 받는지를 감안하면 현실의 투영이자 우리의 모습 그 자체이기도 하다.

 

 

작가 이미경 소개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극작과 전문사를 졸업하고, 2013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희곡부문에 「우울군 슬픈읍 늙으면」으로 등단하였다. 무용과 연극 공연을 즐겨 보다 희곡을 쓰게 되었고, 오랜 집필 끝에 완성한 「그게 아닌데」로 대학로에 입성하였다. 2012년 초연된 「그게 아닌데」는 그해 대한민국연극대상 대상과 동아연극상 작품상 등 각종 연극상을 휩쓸었다. 2013년에는 버려진 노인들을 소재로 다룬 「택배 왔어요!」가 공연되었고, 2014년에는 대전창작희곡공모전 대상 수상작 「무덤이 바뀌었어요!」에 이어 전국창작희곡공모전 대상 수상작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의 공연이 예정되어 있다. 서울문화재단 문학창작집 발간사업에 선정되어 희곡집이 발간될 예정이며, 현재 공연예술창작산실 지원사업에 선정된 「맘모스 해동」 독회공연을 준비 중에 있다. 여전히 사람들을 웃기다 울리고, 울리다 웃기는 그런 희곡을 쓰려는 야무진 꿈을 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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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속심 기자 sisatim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