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다지 친밀한 감정을 주고받은 적이 없었던 이복동생 신하정이 강에서 익사체로 발견된다. 신기정은 언젠가 이런 일이 일어날 줄 알았다는 식으로 체념한 채, 동생의 죽음을 수습한다. 늘 부모의 눈치를 보며 자라온 탓에 정작 자신이 원하는 바는 모르고 살아온 신기정과 달리, 충동적으로 보일 만큼 자유롭게 삶의 길을 선택하던 동생이었다. 그 때문에 신기정은 동생에게 더욱 마음을 열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슬픔이나 그리움 대신, 부채감으로 죽음의 사연을 추적하던 신기정은 동생이 남기고 간 통화내역서에 수차례 찍혀 있는 한 사람의 번호를 발견하고 그의 뒤를 밟는다. 생의 마지막 순간, 동생이 몹시도 만나기를 원했던 사람. 동생은 무엇 때문에 그토록 간절히 윤세오에게 전화를 걸었던 것일까.
윤세오는 가스폭발 사고로 아버지를 잃는다. 아니, 사고가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아버지는 불어나는 빚을 감당하지 못해 윤세오를 남기고 자살한 것으로 추정된다. 윤세오는 자신이 다단계에 빠지지만 않았어도 아버지가 그렇게 외롭고 고통스러운 선택은 하지 않았을 것이라 자책한다. 그리고 아버지를 찾아와 빚을 갚으라고 위협하던 이수호에게 복수하리라 결심한다. 실패 없이 이수호를 살해하기 위해 이수호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하며 악의를 구체화시켜나가던 윤세오에게 어느 날 신하정이라는 이름을 혹시 기억하느냐고 묻는 사람이 나타난다.
가족의 예기치 못한 죽음, 그 죽음이 촉발시킨 부채감과 죄책감은 고립된 채 존재하던 두 개의 점, 신기정과 윤세오를 간신히 만나게 한다. 그 점들의 움직임은 작품 전반에 걸쳐 인물들이 맺고 있던 희미하지만 분명한 선을 우리의 눈앞에 그려낸다.
편혜영의 소설 계보에서 몹시 이질적인 이 작품은 그렇지만 다른 복수 서사와도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편혜영스러운’ 소설은 아니지만, 역시나 ‘편혜영의’ 소설인 것이다. 윤세오의 복수 밑바닥에 깔린 감정은 우리에게 익숙한 뜨거운 분노나 처절한 슬픔과는 거리가 한참 멀다. 이 감정은 오히려 혼란스러움과 망연자실함에 가깝다고 보아야 한다. 윤세오의 복수는 갑작스러운 상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는, 또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인물의 선택이다. 삶에 한없이 서툰 존재의 어쩔 수 없는 선택, 그러니까 일종의 삶의 연장술.
그렇기 때문에 이야기는 윤세오가 이수호의 뒤를 가깝게 쫓을수록, 복수의 실현 가능성이 높아질수록 슬픔과 그리움의 밀도가 점점 더 짙어지게 된다. 아버지를 잃었을 때, 또한 동생이 사라졌을 때 떠올랐어야 할 바로 그 감정들 말이다. 그러니 소설의 마지막에 작가는 슬퍼하고 애틋해하는 일, 대상을 진심으로 그리워하는 일을 “애도의 첫번째 순서”로 놓고 있지 않은가.
홀로 떨어져 나와 있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한때 우리는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었다. 그리고 다시 홀로 남아버린 것처럼 느껴지는 때에 그 연결의 기억은 우리를 다시금 서로에게로 이끈다. 한 점이 다른 점에 가닿고자 하는 이 안간힘으로 그려지는 선, ‘선(線)의 법칙’이 인간적인 삶에 대해 이야기하는 ‘선(善)의 법칙’이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작가 편혜영 소개
1972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예대 문예창작과와 한양대 국문과 대학원을 졸업했다. 2000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단편 「이슬털기」가 당선되어 등단했으며, 소설집 『아오이가든』 『사육장 쪽으로』 『저녁의 구애』 『밤이 지나간다』, 장편소설 『재와 빨강』 『서쪽 숲에 갔다』가 있다. 2007년 한국일보문학상, 2009년 제10회 이효석문학상을 수상했다. 2010년에는 오늘의 젊은 예술가 상을, 동인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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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속심 기자 sisatim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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