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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캠페인:책을 읽읍시다]

[책을 읽읍시다 (75)] 괴담 : 두 번째 아이는 사라진다


괴담

저자
방미진 지음
출판사
문학동네 | 2012-07-16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괴담: 두 번째 아이는 사라진다』는 끊임없이 자신의 존재를 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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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읍시다 (75)] 괴담 : 두 번째 아이는 사라진다

방미진 저 | 문학동네 | 240쪽 | 9,500원

 


[시사타임즈 = 박속심 기자] 어둑할 정도로 이른 시간, 교복 차림의 한 여자아이가 언덕을 오르고 있다. 시시각각 변하는 눈빛은 살기로 뒤덮였다가도 이내 후회와 두려움으로 번져 나간다.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어제의 약속을 떠올리는 여자아이의 얼굴은 식은땀으로 젖어든다. 얼마 뒤, 공기를 찢어놓는 날카로운 외침이 학교를 급속도의 흥분으로 몰아넣는다.

 

시퍼런 연잎 위로 아기 머리만 한 하얀 연꽃이 한두 송이 피어오르는 시기, 학교 뒤 연못 위로 소녀의 시체가 떠오른 것이다. 이름은 서인주. 프리마돈나를 꿈꾸던 세 명의 아이 중 하나. 촌스러운 외모와 달리 청중의 마음을 뒤흔드는 신비로운 음색으로 무대 위에선 누구보다 반짝이던 추녀. 그런 서인주가 보조가방은 전망대 위에 놓아두고, 내용물로 충실히 채워진 가방을 어깨에 멘 채로 발견됐다.

 

왜? 서인주는 왜 이른 아침 학교로 오지 않고 연못으로 간 것일까? 사람들이 찾지 않는 한적한 곳에서 서인주는 무엇을 한 것일까? 보조가방만 남겨 두고 연못으로 뛰어든 이유는? 혹 누군가 일부러 떠민 건 아니었을까? 최초의 목격자를 자처하며 나타난 그 인물은 누구일까?

 

서인주의 죽음 이후, 아이들 사이에선 괴담이 번져 나간다. 친구의 친구로부터 시작된 밑도 끝도 없는 이야기. 언뜻 비슷해 보이지만 엄연히 다른 괴담들이 변형을 계속하며 입에서 입으로, 귀에서 귀로 흘러나왔다가 흘러들어간다. 때를 같이해, 학교 외벽에는 푸르죽죽한 이끼가 서식지를 넓혀가고 기묘한 흔적들이 곳곳에서 망령들의 사인처럼 생겨난다.

 

어느 여학생의 머리카락을 바짝 묶어 주었을 보라색 머리끈, 누군가의 손가락에서 빛났을 반지, 누군가를 향해 플래시를 터뜨렸을 디지털 카메라, 잊을 만하면 엄습해 오는 누군가의 목소리. 기시감으로 넘겨 버리기엔 실제처럼 낯익은, 주인 없는 물건들이 하나둘 『괴담』 속 인물들의 손아귀에 들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여기서 독자의 심장을 비트는 이 미스터리한 소동은 소녀의 죽음이라는 단순한 사건을 넘어 호러라는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든다. 첫 번째가 되고 싶은, 무대 위의 주인공을 꿈꾸는 인물들의 욕망을 집어삼키고 무한 증식하는 괴담이 포식자로서의 얼굴을 드러내는 것이다.

 

『괴담』은 끊임없이 자신의 존재를 확인받고 싶어 하는 불안한 십 대 그리고 우리의 이야기이다. ‘나’를 친구보다 앞서 각인시키기 위해, ‘그저 그런’이라는 수식어를 떼고 ‘첫 번째’라는 수식어를 얻기 위해, 잊혀지지 않기 위해, 무대 위의 주인공으로 살아남기 위해 경쟁자를 제거해야 하는 호러 상황 속에 우리는 서 있다. 그래서 『괴담』 속 인물들에게 첫 번째 자리를 위협하는 두 번째 아이들의 등장은 호러 자체였다.

 

그들이 살아가는 무한경쟁의 정글에는 하나의 무대가 있고 그 무대 위에서 단독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은 프리마돈나, 첫 번째 아이뿐이니까. 벗어나고 싶어도 절대 벗어날 수 없는 무대를 버리고 시스템 밖으로 뛰쳐나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런데 그 무대를 과감히 버린 한 소녀, 서인주로 인해 화려하던 무대는 싸구려 널빤지로 변했고, 그 무대를 휘어잡던 연출자는 당황하기 시작한다.

 

그 혼란으로 인해 이야기는 종잡을 수 없는 전개와 예측할 수 없는 결말로 치달으며 답을 알 수 없는 질문들을 던진다. 간절히 필요로 할 때 찾아와 귓가에 속삭이는 목소리의 정체는 누구이며, 두 번째 아이와 첫 번째 아이는 누구일까? 더 미워하는 쪽? 살아남는 쪽? 어쩌면 이 모든 것이 거짓말은 아닐까?

 

작가 방미진 소개

 

동화 작가. 1979년 울산에서 태어났으며 2005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술래를 기다리는 아이」가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그동안 지은 책으로 『금이 간 거울』, 『행복한 자기감정 표현학교』, 『형제가 간다』가 있다.

박속심 기자(sisatim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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