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읍시다 (77)] 모던 아랑전
조선희 저 | 아이완 그림 | 노블마인 | 372쪽 | 13,000원
[시사타임즈 = 박속심 기자] 콩쥐팥쥐, 여우누이, 선녀와 나무꾼 등 우리가 알고 있던 전래 동화의 모든 것을 뒤집어 하나의 새로운 세계를 창조한 『모던 팥쥐전』. 이번에는 아랑 전설, 금도끼 은도끼, 심청전, 토끼전, 할미꽃 이야기, 북두칠성 등을 변주한 『모던 아랑전』으로 돌아왔다.
우리가 알고 있던 이야기에 ‘만약’을 가정해보자. 만약 아랑의 한을 풀어준 사또가 없었다면? 인당수에서 돌아온 심청이 사실은 이미 죽은 사람이었다면? 금도끼 은도끼의 착한 나무꾼이 처음부터 원했던 건 번쩍거리는 금도끼였다면…? 무한한 상상력의 바다에서 건져 올려낸 오싹하고 몽환적인 여섯 편의 이야기들이 여기 있다.
『모던 아랑전』의 주인공들은 더 이상 아름답고 착하지 않다. 오히려 원하는 것을 쟁취하기 위해 타인의 희생쯤은 가볍게 여기는 우리의 욕망과 불안을 아슬아슬하게 보여준다.
<버들고리에 담긴 소원>에서 소녀들은 소원을 버들고리 바구니에 넣는다. 여기서 조건은 세 명 중 한 명이 죽어야 그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타인의 목숨을 담보로 자신의 소원을 바라는 어여쁜 소녀들……. 심청이 죽을 걸 알면서도 눈을 뜨고 싶은 욕심에 그녀를 마지못해 인당수로 보냈던 심학규의 마음처럼, 친구가 죽자 소녀들의 마음 한켠에서 잠자고 있던 괴물이 슬그머니 고개를 든다.
동화와 전설 속 인물들의 은밀하고 오싹한 욕망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성실한 가장이 되기 위해 쇠도끼를 선택했던 나무꾼이 바라보고 있던 것은 언제나 번쩍거리는 금도끼였고(스미스의 바다를 헤맨 남자), 아랑의 한을 풀어줬던 사또는 오히려 죽은 여인과 산 여인의 욕망 사이에서 함정에 빠진다(영혼을 보는 형사). 호랑이와 모종의 뒷거래를 한 덕분에 해와 달이 된 오누이의 사연이 있는가 하면(29년 후에 만나요), 자식들을 만나러 가다가 그대로 꽃이 되었다는 할미꽃 전설이 무색하게 현대의 어머니는 가족에게서 멀리 달아난다(오래된 전화). 토끼의 간을 찾기 위해 온갖 노력을 하지만 결국 얻을 수 없던 별주부처럼, 막막한 갈망과 절망이 아들과 아버지를 괴롭게 만들기도 한다(오소리 공주와의 하룻밤).
이번 작품집에 앞서 『모던 팥쥐전』을 발표해 몽환적인 공포를 선보인다는 평가와 함께 ‘한국의 온다 리쿠’라는 별명을 얻었던 작가는 “신화, 민담, 전설에 담긴 이야기들이 오랫동안 생명력을 갖는 이유는 변주가 가능한 수많은 상징들과 숨겨진 진실 때문”이라고 말한다.
작가 조선희 소개
제2회 한국판타지문학상에서 『고리골』로 대상 격인 ‘세발까마귀상’을 수상하며 문단에 데뷔했다. 『마법사와 세탁부 프리가』, 『거기, 여우 발자국』, 『아든의 열쇠』, 『타토에서 오다』등 출간하는 책마다 새로운 세계관을 펼쳐 보였다. 2010년에는 독특한 상상력으로 전래동화를 재해석한 『모던 팥쥐전』을 출간했다. 《『던 팥쥐전』에 수록된 단편 <서리, 박지> 는 2012년 영화 《무서운 이야기》 중 <콩쥐, 팥쥐>의 모티프가 되었고, 홍지영 감독은‘영화가 존재하지 않던 시절의 옛 이야기에서 영화적인 무엇인가를 본 것 같다’며 그의 상상력을 극찬했다. 그가 『모던 아랑전』을 통해 다시 고전 속 인물을 재해석한 기묘한 이야기로 돌아왔다.
작가 이이완 소개
『모던 팥쥐전』과 『모던 아랑전』의 몽환적이고 환상적인 느낌의 일러스트를 그려낸 아이완은 고교 졸업 후 독문학과로 진학했으나 그림을 그리고 싶은 열망에 그만두고,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에 들어가 본격적으로 그림을 시작했다. 2001년부터 자신의 홈페이지에 신비스럽고 독특한 스타일의 그림을 발표하면서 큰 호응을 얻기 시작한 그녀는 2003년에는 프랑스 앙굴렘 국제 만화페스티벌에서 한국만화특별전 젊은 작가 19인에 선정되어 '새로운 감수성' 부문으로 작품을 전시하기도 하였다. 일러스트 소설로 『워터보이』『구멍』이 있다.
박속심 기자(sisatim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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