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시사 캠페인:책을 읽읍시다]

[책을 읽읍시다 (771)] 플랫폼

 
 
[책을 읽읍시다 (771)] 플랫폼
 
미셸 우엘벡 저 | 김윤진 역 | 문학동네 | 476쪽 | 15,500원



 

[시사타임즈 = 박속심 기자] 『복종』의 저자 미셸 우엘벡의 세 번째 장편소설 『플랫폼』. 2002년 문학동네에서 처음 출간된 『플랫폼』은 미셸 우엘벡의 세번째 장편소설로 현대적 감각에 맞는 표지와 번역으로 우엘벡 초기 소설에 선연하게 담긴 날카롭고 도발적인 필치를 만나볼 수 있다.


『플랫폼』은 사랑이 지닌 구원의 힘에 대한 성찰을 전복적으로 풀어낸 소설이다. 우엘벡은 성性을 매개로 한 인간 실존을 과감히 해부하고 현대 문명과 서구 소비사회를 냉소적으로 통찰한다. 익살스러운데다 주도면밀한 관찰자이며 풍자적이기까지 한 작가는 그가 살고 있는 시대를 놓치지 않고 묘사한다. 단체 관광에 대한 익살과 풍자, 매춘과 섹스 관광에 대한 비판과 각성의 시각, 사랑이 지니고 있는 구원의 힘에 대한 냉소적인 성찰, 전 세계를 향한 의식의 확장을 보여주는 『플랫폼』은 이 시대 가장 민감한 부분을 연출한 실험적 고발 문학이다.


작가 이름과 동일한 주인공 미셸에게는 상당한 유산과 안정된 직장이 있다. 그러나 그의 일상은 생각 없이 씹어 삼키는 음식과 다를 게 없다. 그는 핍쇼를 보며 성욕을 해결하고 텔레비전 게임쇼를 거의 유일한 오락거리로 삼는 사십대 독신남이다. 세상과 인간관계에 대한 기대는 없다. 그는 아버지가 죽자, 태국으로 떠나기로 결심한다. 미개발 분야의 개척이라는 명분 아래 단체 관광을 떠난 것이다. 중산층 관광객들을 대동하고, 배낭여행 책자로 무장한 가이드는 태국의 관광명소들로 안내한다.


그러나 ‘쿨’한 여행 역시 타인을 진정한 사랑의 대상으로 여기는 감각을 잃어버린 자기 모멸적인 섹스 관광일 뿐이다. 미셸은 섹스가 곁들여진 보디마사지를 즐기고 각종 바를 들쑤시고 다닌다. 임시 발판을 따라 어슬렁거리는 외로운 패키지 관광객이자, 욕구불만이 가득한 프랑스 문화부 공무원인 미셸은 욕정을 좇는 사람들로 둘러싸인 이곳의 풍경을 ‘흠잡을 데 없는 충만한 인생’으로 여긴다. 여기서 섹스 관광이야말로 “세계의 미래”라는 주인공의 암울한 비전이 드러난다.


우엘벡의 이 모든 냉소에도 불구하고 『플랫폼』은 “별 모양의 은빛 야광 생물체처럼” 유혹적인 로맨틱함을 드러낸다. 여행중에 알게 된 감각적이며 똑똑하고 젊은 발레리를 파리에서 다시 만나 격렬한 사랑에 빠지게 되면서 그의 냉소와 허무가 중대한 국면을 맞게 되는 것이다. 일류 관광 회사에서 일하는 발레리는 일에서의 뛰어난 능력 못지않게 너무도 담백한 태도로, 사랑을 솔직하고 즉각적인 육체적 즐거움으로 맞바꾸어 보여주는 여자였다. 그러나 미셸의, 혹은 세상의 유일한 구원이었던 그들의 사랑은 그리 오래가지 못한다.


미셸과 발레리가 세운, 전 세계적인 섹스 관광 네트워크 결성 계획이 한창 무르익을 무렵,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이 태국 리조트에 폭탄을 터트려 수백 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고 이 일로 발레리 또한 목숨을 잃는다. 사랑도 사업 계획도 한순간에 물거품이 돼버리고 만 것이다. 미셸은 파타야로 가는 버스에 올라탄다. 파타야는 태국 동부의 휴양지이자 세계적인 매매춘 지역으로, 사람들이 “새로운 인생을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받아들일 만한 조건에서 삶을 끝내기 위해서” 가는 곳이다. 미셸은 파타야가 자신이 떠나온 긴 여정의 종착지임을 직감한다.


『플랫폼』의 세계는 실로 으스스하다.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잃은 태국의 철강 산업이 몰락하면서 그곳의 많은 여성들은 매춘부가 되었다. 그곳에 돈을 대는 것은 유럽의 다국적 관광 회사. 수많은 서구 남자들이 향락을 위해 태국으로 몰려간 것은 그들 사회에서는 그것을 얻을 수 없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서구에서 사랑은 사라져버렸으며, 다른 무엇보다 과도한 소비주의가 그것을 대체해버린 것이다.


『플랫폼』은 인종적·종교적 편견이 서구 문명의 민낯임을 정직하게 인정하는 날카로운 지적 통찰을 배경으로, 거대한 세상의 질서 속에서 다만 잊힐 뿐인 개개인의 무력한 실존을 절묘하게 빚어낸다. 우엘벡 소설 속의 인물들이 사는 세계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곳이다.



작가 미셸 우엘벡 소개


현대 프랑스 문단에서 가장 주목받는 작가 중 한 명인 미셸 우엘벡은 1958년 프랑스 라 레위니옹에서 태어났다. 프랑스 국립 농업학교에서 농업 경제학과 정보학을 공부했고 컴퓨터 관련 업종에서 일을 하다 1985년에 시인으로 문단에 데뷔했다. 1991년 미국의 고딕 작가 H. P. 러브크래프트의 전기 『세계에 맞서, 인생에 맞서』와 평론집 『계속 살아 있기』를 발표했으며, 이듬해 첫 시집 『행복의 추구』를 펴냈다. 1994년에는 첫 번째 장편소설 『투쟁 영역의 확장』을 발표했고, 경제적인 영역뿐 아니라 성(性)의 영역에서도 자유 경쟁 상태에 내몰린 서구인의 지옥과 같은 삶을 묘사한 이 책으로 작가로서 문명을 떨치기 시작했다.


4년 후인 1998년, 우엘벡은 그의 전 작품에 대해 문화부에서 수여하는 <젊은 문학인 국가 대상〉을 받았으며 같은 해, 평론집 『발언』과 두 번째 소설 『소립자』를 발표했다. 성풍속의 변천 과정을 중심으로 〈서구의 자멸〉을 면밀하게 해부한 『소립자』는 하나의 현상이라 일컬어질 정도로 엄청난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그해 『리르』지와 『타임스 리터러리 서플리먼트』가 올해의 책으로 선정한 이 작품으로 우엘벡은 베스트셀러 작가 반열에 오르게 됐고 세계 공공 도서관의 추천을 받아 아일랜드 정부가 수여하는 ‘국제 IMPAC 더블린 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후 『소립자』는 전 세계 30개국 언어로 번역됐으며 2001년에 발표한 그의 세 번째 소설 『플랫폼』역시 큰 성공을 거둔다.


하지만 이슬람에 대한 독설과 인터뷰에서 행한 논평으로 인해 소송에 휘말리게 된다. 이후 우엘벡은 플라마리옹에서 파야르로 적을 옮겨 네 번째 소설 『어느 섬의 가능성』을 출간한다. 2004년 4월말에 발표된 이 이적으로 우엘벡이 130만 유로를 - 정확한 액수는 밝혀지지 않았다 - 받았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떠돈다. 우엘벡은 현재 『어느 섬의 가능성』을 각색해 영화로 제작하고 있다. 우엘벡의 다른 작품들로는 그가 자신의 시를 낭송한 음반 「인간의 현존」과 직접 찍은 사진과 함께 펴낸 영상 수필집 『란사로테』, 소설 『플랫폼』 등이 있다.



<맑은 사회와 밝은 미래를 창조하는 시사종합지 - 시사타임즈>

<저작권자(c)시사타임즈.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시사타임즈 홈페이지 = www.timesisa.com>



박속심 기자 sisatim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