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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캠페인:책을 읽읍시다]

[책을 읽읍시다 (784)] 연적

 
 
[책을 읽읍시다 (784)] 연적
 
김호연 저 | 나무옆의자 | 276쪽 | 13,000원



 

[시사타임즈 = 박속심 기자]『망원동 브라더스』가 코딱지만 한 옥탑방에서 펼쳐지는 네 남자의 동거기였다면 『연적』은 한 여자를 사랑한 두 남자가 죽은 연인과 함께 떠나는 기묘한 여행기다.


출판사 편집자인 ‘나’는 ‘결정장애인’이라 불릴 정도로 매사에 신중하다 못해 소심하고 우유부단하다. 반대로 여자친구 재연이 ‘나’를 만나기 전에 사귄 남자인 앤디는 피트니스 센터를 운영하던 사람답게 우람한 근육을 장착한 허세 많고 저돌적인 행동파다. 과거에 연적이었던 두 사람은 죽은 연인을 사이에 두고 또다시 연적이 된다. 무엇 하나 닮은 구석이 없는 두 남자는 사랑하는 여자를 더 좋은 곳으로 보내준다는 생각 하나로 무모한 행동을 감행하고 죽은 그녀와 함께 여행을 시작한다.


그래서 그날 밤 나는 경기 남부 지방의 한 모텔에서 옛 애인의 전 남자친구 놈과 테이블을 마주한 채 냉수를 마시며 끝장토론을 벌이게 되었다. 우리 둘 사이엔 그녀의 유골함이 놓여 있었고, 두 시간 넘게 공방을 벌였지만 의견은 좁혀지지 않았다.


연적답게 그들은 서로에 대한 의심과 연인을 소유하려는 경쟁으로 시작부터 티격태격 말싸움과 몸싸움을 벌이고, 한 차례 해프닝 끝에 그녀를 남해 바다에 뿌려주기로 하고 길을 떠난다. 그러나 번번이 예기치 않은 상황에 부닥치면서 여정은 여수로 제주로 계속 이어지고, 그 과정에서 둘은 싸우고 화해하기를 반복한다. 그리고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지는 만큼 서로에 대해 알게 되는 것도 조금씩 많아진다. 치부도 들키고 못 볼 꼴도 보이게 되면서 둘 사이의 적대적인 기류도 어느 순간 옅어진다.


작가는 유머러스한 문장으로 두 남자의 좌충우돌을 그리면서 여행이 주는 성찰과 변화도 놓치지 않는다. 재연을 잘 보내주려는 여정은 재연을 추억하고 그들의 사랑을 돌아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나’는 재연과 사귀던 시절을 떠올리며 자신의 사랑이 서툴고 부족했음을 뼈아프게 자각한다. 자신의 옹졸함과 소심함과 비겁함이 재연을 떠나게 했다는 것을. 그녀를 지키지 못했다는 뒤늦은 회한과 자책, 연민과 미련, 추억마저 뭉개버리는 잔인한 현실에 대한 울분으로 몸부림치는 ‘나’에게 앤디는 슬며시 위로를 건넨다. 그 역시 사랑을 잃은 사람이기에. 단순무식하고 진지함이라곤 없다고 생각했던 상대에게 나름의 멋진 구석과 아픈 지점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가면서 ‘나’는 짧은 순간이지만 무언의 연대를 경험한다.


재연은 시나리오작가를 꿈꿨으나 무명작가로 생활고에 시달리다 건강이 악화되어 세상을 떠났다. 자신의 시나리오를 소설로 고쳐 써 출판사와 출간 계약을 맺기도 했지만 함께 일했던 감독의 방해로 끝내 책을 낼 수 없었다. 대신에 그 감독은 그녀가 죽자 그녀의 시나리오를 훔쳐 영화를 만들어 명예를 얻고 흥행에도 성공을 거둔다. 업계에서는 어느 누구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 출판사 사장도 탐욕스럽고 파렴치한 짓에 가담한다. 이것이 우리 사회 한편에서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일임을 생각하면 누군가 문제를 삼는 것에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다. 작가는 “재연처럼 좋아하는 일에 자신을 던진 사람들이, 쉽게 꺾이지 않고 격려 받을 수 있는 세상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 이 이야기를 쓰게 된 또 다른 계기이기도 하다”고 밝혔다.


더 이상 우유부단하지 않은 ‘나’는 감독과 정식으로 담판을 짓기로 결심한다. 재연을 두 번 죽이지 않기 위해. 그녀를 지키기 위해. ‘나’와 앤디는 이제 공동의 적과 싸운다. 어느새 죽이 잘 맞는 친구가 된 그들이 힘을 합쳐 부도덕한 감독을 응징하는 장면은 더없이 짜릿하고 통쾌하다. 비록 소설 속에서일망정 거짓과 뻔뻔함이 단죄될 수 있다는 것에 가슴이 후련해지는 것이다. 일생일대의 과제를 함께 해낸 두 사람은 비로소 미완의 여행을 온전히 마무리할 자격을 갖춘 듯 보인다.


작가는 죽은 사람과의 동행이라는 이색적인 이야기에 사회적인 이슈를 자연스럽게 결합시킨다. 연적으로 만나 경쟁하고 자존심 싸움을 하던 두 남자가 여행을 통해 가까워지고, 사랑했던 사람을 함께 지켜내고, 마침내 편안히 떠나보내는 서사는 재기발랄한 웃음과 가슴 찡한 공감과 따뜻한 여운으로 기억될 것이다. 더불어 스토리텔러 김호연이라는 이름이 독자에게 더욱 깊게 새겨질 작품이다.



작가 김호연 소개


1974년 서울에서 태어나 고려대학교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첫 직장인 영화사에서 공동 작업한 시나리오 [이중간첩]이 영화화되며 시나리오 작가가 되었다. 두 번째 직장인 출판사에서 만화 기획자로 일하며 쓴 SF 만화스토리 [실험인간지대]가 제1회 부천만화스토리 공모전에서 대상을 수상하며 만화 스토리 작가가 되었다. 같은 출판사 소설 편집자로 남의 소설을 만지다가 급기야 전업 작가로 나섰다. 이후 ‘젊은 날 닥치는 대로 글쓰기’를 실천하던 중 장편소설 『망원동 브라더스』로 2013년 제9회 세계문학상 우수상을 수상하며 소설가가 되었다.


현재 망원동 옆 성산동에 살고 있으며, 1930년 경성 ‘신문물 권투’에 빠진 청춘들에 대한 시나리오를 쓰고 있고, 누군가를 대신해 여행하는 것이 직업인 ‘대리여행자’에 관한 소설을 준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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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속심 기자 sisatim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