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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캠페인:책을 읽읍시다]

[책을 읽읍시다 (792)] 시인의 진짜 친구

 

시인의 진짜 친구

저자
설흔 지음
출판사
단비 | 2015-10-10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평생 시를 쓰고 싶어 한 ‘역관 시인’ 이언진의 시와 삶 역관 ...
가격비교

 
[책을 읽읍시다 (792)] 시인의 진짜 친구

설흔 저 | 단비 | 188쪽 | 12,000원 


 

 

[시사타임즈 = 박속심 기자] 『시인의 진짜 친구』는 역관의 삶을 살았으나 평생 시를 쓰고 싶어 한 이언진의 시와 삶 그리고 시를 통해 그와 교우를 나눈 성대중, 이덕무, 박지원의 이야기를 세밀하게 그려냈다. 선 후기 문인들 사이에서 ‘문학적 전범’의 설정을 거부하고 개성과 독창성을 강조한 중국 공안파의 시풍이 크게 유행할 당시 이언진이 박지원에게 시를 보내고 그에 대한 답을 들은 일화를 주요 모티브로 삼아 ‘시인이란 무엇인가?’ ‘글이란 무엇인가?’ ‘글을 쓰는 이유는 무엇인가?’ ‘누구를 위해 쓰는가?’ 질문한다. 

 

이언진은 영조 36년(1759) 역과에 급제하여 주부를 지냈으며 1763년에 통신사 조엄의 역관으로 일본에 다녀왔다. 역관 이언진은 시인을 꿈꾸었으나 당대 조선에서 ‘역관 시인’을 인정하는 사람은 없었다. 외로운 삶을 살던 그는 그만의 독자적인 사상 체계를 갖추어나갔고 양명학, 노장학, 불교 등을 자유롭게 섭렵하며 시를 썼다. 그 결과 그의 시는 다른 사람에게서는 볼 수 없는 ‘시’가 되었다. 진정한 조선의 시인이 된 것이다.


이언진은 머리가 비상해 한 번 본 글은 절대로 잊지 않았고 시 짓는 솜씨는 경이 그 자체여서 눈 깜빡할 사이에 시 한 편을 완성했다. 글씨는 잘 쓰기도 하고 빨리 쓰기도 했는데 마치 활자로 인쇄한 듯했고 빠뜨린 곳도 하나 없어 정밀하고 민첩했다.


이언진이 일본에 갔을 때의 일화는 유명하다. 그가 도착하자 왜인들이 부채 오백 개를 가져와서 오언율시를 써달라고 요구했는데 그는 바로 먹을 갈아 한편으로는 읊조리고 한편으로는 시를 써 잠깐 만에 끝냈다. 교활한 왜인들은 그를 골탕 먹이려고 다시 부채 오백 개를 가져와 이번에는 그의 기억력을 시험해보고 싶다고 청했고 그는 그것을 모두 기억하여 그대로 외워 써내려갔다. 이언진은 하루 만에 천 개의 부채에 시를 썼고 부채를 비교해본 왜인들이 놀라고 감탄해 혀를 내두르며 그를 ‘신’이라 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 중 박지원과 이덕무는 이언진을 만난 적이 없다. 박지원은 당대 내로라하는 노론 집안의 후손이자 수많은 사람에게 추앙받는 문인이고 이언진은 양반은커녕 반쪽짜리 양반인 서얼도 못 되는 신분이다. 이언진은 ‘나를 알아줄 분’이란 말을 잊지 말고 꼭 전하라고 당부하며 심부름꾼을 통해 박지원에게 시를 보냈으나 그의 기대는 무참히 무너진다. 박지원은 적나라한 표현으로 이언진을 비난하고 무시했으나 그의 속내는 달랐다. 이언진의 재주를 남달리 아낀 박지원은 그가 아직 젊으니 머리를 숙이고 도道로 나아간다면 글을 저술하여 세상에 남길 만하다고 여겨 그의 기를 억누른 것이다. 그러나 이언진은 자신이 쓴 시를 모두 불태울 정도로 낙담한다. 다행히 그의 아내가 불길에서 원고를 건져낸 덕분에 이언진의 시가 오늘날까지 전해진다.


한편 계미통신사행의 일원으로 이언진과 함께 일본에 다녀온 성대중은 이언진이 일본으로 가는 배 안에서 지은 시 ‘바다 구경을 하다(해람편海覽篇)’를 보고 첫눈에 그가 대단한 시인이 될 가능성을 지녔다는 사실을 알아보고 시를 통해 그와 교우를 나누려 한다. 성대중은 그에게서 시를 얻기 위해 자존심도 체면도 버리지만 이언진은 서얼이면서도 과거에 급제해 관직까지 얻은 입지전적인 그를 탐탁지 않게 여긴다. 성대중은 자신의 마음을 몰라주는 이언진에게 무척 서운해하면서도 그가 험난한 세상 잘 헤쳐 나가도록 도와주고 그의 진실한 친구가 되고 싶어 한다.


그리고 지나칠 정도로 신중한 이덕무는 실제로는 이언진을 만나지 못했지만 그에 관한 기록을 가장 많이 남겼다. 이덕무는 이언진, 성대중과 함께 일본에 다녀온 윤가기에게 부탁해 그의 시문과 일기를 얻어 보았고 기이하면서도 참신한 시와 진솔하면서도 따뜻한 일기에 감탄했다. 이덕무는 이언진을 홍문관에 숙직하면서 임금의 교서를 쓰게 해야 할 사람이라고 평했고 그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한참동안 꽃나무 아래를 배회하며 마음을 진정시키지 못했다.


이언진, 박지원, 성대중, 이덕무가 서로에게서 구한 것은 무엇이며 그것은 그들 각자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이 책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18세기 조선의 골목길로 들어가 그들이 남긴 글을 읽고 그들의 생각을 따라가며 그들의 시와 꿈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작가 설흔 소개


고려대학교에서 심리학을 공부하며 소설을 썼다. 선인들, 그중에서도 조선 후기를 살았던 인물들의 삶과 사상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다. 그들이 생각하고 열망했던 것들을 이 시대에 소통되는 언어로 재연하는 것이 앞으로의 꿈이다.


저서로는『추사의 마지막 편지, 나를 닮고 싶은 너에게』, 『칼날 눈썹 박제가』, 『책의 이면』,『연암에게 글쓰기를 배우다』(공저), 『소년, 아란타로 가다』, 『퇴계에게 공부법을 배우다』 등이 있다. 조선의 문장가 이옥과 김려가 나눈 우정 이야기를 그린 『멋지기 때문에 놀러왔지』로 2010년 제1회 창비청소년도서상 교양기획부문 대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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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속심 기자 sisatim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