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시사 캠페인:책을 읽읍시다]

[책을 읽읍시다 (794)] 피의 꽃잎들

 
 
[책을 읽읍시다 (794)] 피의 꽃잎들

응구기 와 시옹오 저 | 왕은철 역 | 민음사 | 700쪽 | 15,000원



 

[시사타임즈 = 박속심 기자] 케냐와 미국을 오가며 활동하는 세계적인 작가 응구기 와 시옹오의 소설『피의 꽃잎들』. 이 작품은 1977년 식민주의자들과 결탁한 신식민주의자들의 문제를 파헤치고 있다. 발표 당시 부통령이자 1982년부터는 대통령이 되어 이십 년 동안 장기 집권한 대니얼 아랍 모이의 분노를 사고 투옥됐다고 한다. 자본주의와 부패한 권력자들에게 농락당하는 농민과 지식인의 처절한 삶을 기록하고, 식민 지배자였던 백인 세력과 야합하여 민중을 배신하고 그 위에 군림하는 기회주의자들을 고발한다.


신도시 개발이 한창인 케냐의 작은 마을 뉴 일모로그 정재계 유명 인사 세 명이 창녀촌 주인인 완자의 저택에서 한꺼번에 방화로 죽는 사건이 발생한다. 경찰은 이 사건의 용의자로 무니라, 압둘라, 카레가를 구금하고 그중 초등학교 교장인 무니라에게 지난 일을 일기 형식으로 기록하게 한다. 무니라는 이들을 처음 만났던 시절을 떠올리고 그동안 일모로그에서 벌어졌던 일들을 더듬으며 방화 사건의 범인이 누군지 추적해 나간다.


10여 년 전, 미래는 꿈꾸지 못한 채 가난하고 비참하게 살아가는 일모로그에 교사로 부임한 무니라는 또 다른 외지인 압둘라와 마음을 나누며 그럭저럭 적응해 간다. 여기에 아름답고 용기 있는 여성 완자와 젊은 교사 카레가가 합류하면서 일모로그를 좀 더 나은 곳으로 바꾸려는 변화의 기운이 꿈틀댄다. 백인들이 짓밟아 놓은 전통 문화를 되살리고 민족적 자부심 고양과 국가의 진정한 발전을 위해 동분서주하지만, 시련과 좌절이 이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소설은 중심 인물인 무니라, 압둘라, 완자, 카렌자가 세 명의 유명 인사를 살해한 혐의로 체포되는 것으로 시작해 그들 중 하나가 범인으로 밝혀지는 것으로 마무리되는 범죄 소설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이 살인 사건의 전모를 풀어헤치는 과정에서 식민주의, 무장 독립 투쟁, 영국으로부터의 독립, 신식민주의, 매판 자본 등 케냐의 역사가 자연스럽게 조명된다. 독자는 소설 속에서 벌어지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따라가는 과정에서 케냐의 역사에 자기도 모르게 친숙해지게 되는데, 이것은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역사적 사실들이 자연스럽게 스토리 속으로 녹아들게 만든 작가의 능수능란한 스토리텔링 기법이 빛을 발하는 부분이다.


독재와 탐욕, 매판 자본과 신식민주의에 신음하는 민중의 삶을 집요하게 형상화한 응구기의 작품 속에는 그러나 미래에 대한 깊은 낙관이 자리 잡고 있다. 민중이 정치적으로 눈뜨는 과정을 풍자와 해학, 우화, 구전의 요소들을 적절히 섞어 가며 감동적으로 형상화함으로써 자신이 왜 케냐, 아니 아프리카를 대변하는 작가인지를 증명해 보인다.


응구기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정신의 탈식민화”라는 개념이다. ‘피의 꽃잎들’이라는 제목에는 그의 의중이 잘 나타나 있다. 제목은 일차적으로는 벌레가 먹어서 열매를 맺지 못하고 꽃잎이 피처럼 붉은색을 띤다는 의미인데, 여기에서 벌레는 억압의 주체를 지칭한다. 따라서 제목은 벌레들 때문에 열매를 맺을 수도 없고 제대로 된 꽃을 피울 수도 없는 케냐의 현실을 암시한다. 이 제목은 궁극적으로 벌레들의 습격(식민 통치)에도 불구하고 끈질기게 살아남은 민중의 생명력과 저항 정신을 의미하기도 한다. 결국 ‘피의 꽃잎들’은 권력에 억압당하는 민중을 지칭함과 동시에, 권력에 맞서 정신적 독립을 쟁취하려고 몸부림을 치는 저항적인 민중을 지칭한다.


그는 “아프리카 작가는 아프리카 농민과 노동자 들과 효과적으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언어, 즉 아프리카의 언어로 글을 써야 한다”라고 믿고 그걸 실천하고자 했다. 그가 제임스 응구기라는 세례명을 쓰다가 응구기 와 시옹오라는 아프리카식 이름으로 개명한 것도 정신의 탈식민화를 위한 몸짓이었다. 또한 『한 톨의 밀알』을 발표한 이후 영어가 아니라 기쿠유어로 소설을 쓴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다.『피의 꽃잎들』에서도 역시 기쿠유어 단어로 고유의 문화적 유산을 생생히 그려 냈다. 이를 통해 응구기는 언어라는 것이 사실은 피식민주의자의 정신세계를 식민화하는 문화 제국주의의 도구라는 점을 강조하며 이에 저항했던 것이다.



작가 응구기 와 시옹오 소개


1938년 케냐 나이로비에서 40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카미리수에서 태어났다. 당시 케냐는 영국의 식민지였다. 시옹오는 런던 대학교의 분교였던 마케레레 대학교에서 영문학을 전공했다. 영국 리즈 대학교에 입학했던 1964년에 첫 소설 『울지 마라, 아이야』를 발표했다. 1967년 대표작이 된 『한 톨의 밀알』을 출간하고 나이로비 대학교 영문학과 교수로 부임했다. 이후 모국어인 기쿠유어와 케냐 공용어인 스와힐리어로 글을 쓰기로 결심하면서, ‘제임스 응구기’라는 세례명 대신 ‘응구기 와 시옹오’라는 이름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1977년에 신식민주의자 문제를 파헤친 역작 『피의 꽃잎들』을 발표한 후 독재 정권에 의해 투옥됐다. 결국 1982년에는 영국에서 귀국하지 못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예일 대학교 등의 교수를 역임했다. 2004년, 소설 『까마귀의 마법사』를 출간하고 22년 만에 케냐로 갔으나 불의의 사고를 당한 후 다시 미국으로 돌아갔다. 로터스 문학상, 노니노 국제 문학상, 미국 비평가 협회 상 등을 수상했으며 현재 캘리포니아 주립 대학교에 재직 중이다.



<맑은 사회와 밝은 미래를 창조하는 시사종합지 - 시사타임즈>

<저작권자(c)시사타임즈.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시사타임즈 홈페이지 = www.timesisa.com>



박속심 기자 sisatim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