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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캠페인:책을 읽읍시다]

[책을 읽읍시다 (825)] 그림자 노동

[책을 읽읍시다 (825)] 그림자 노동

이반 일리치 저 | 노승영 역 | 사월의책 | 240쪽 | 15,000원 


 

 

[시사타임즈 = 박속심 기자] 『그림자 노동』은 전 9권으로 예정된 「이반 일리치 전집」 1차분이다. 특히 그의 핵심적 사상을 집약해서 담은 책이다. 왜 우리의 노동은 이토록 고되고 지루하며 우리의 꿈과 늘 대립하는가? 이반 일리치는 이 책을 통해 우리가 일상에서 지극히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노동에 대한 생각을 완전히 뒤바꿔 놓는다.


‘그림자 노동’은 어떻게 생겨났고 그 역할은 무엇인가? 일리치는 역사상 출현했던 노동의 형태들을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한다. 첫째는 무보수의 자기 충족적 생산 활동인 자급자족 노동, 둘째는 보수를 받긴 하지만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상품 생산을 위해 일하는 임금 노동, 셋째는 무보수이면서 생산에 아무런 기여도 없이 오로지 임금 노동을 뒷받침하기 위해 존재하는 그림자 노동이 그것이다. 여기서 그림자 노동은 매우 기이한 노동이다. 가내 자원을 가지고 무보수로 행한다는 점에서는 자급자족 활동과 비슷하지만 아무것도 직접 생산하지 않는 노동이라는 점에서는 유례를 찾을 수 없는 노동인 것이다. 그러나 임금 노동은 그림자처럼 가려져 있는 이 비생산 노동 없이는 결코 지속될 수 없다는 점에서 그림자 노동의 존재를 전제조건으로 한다.


일리치는 상품 경제의 강요로 인해 전통적 자급자족 활동이 한편으로는 생산을 위주로 한 임노동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일종의 소비적 노동인 그림자 노동으로 분열되고 파편화됐다고 한다. 다시 말해서 주어진 환경을 이용하여 생계를 충족하던 자급자족 활동을 상품 사회에 이바지하는 노동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상품을 생산하거나 소비하는 두 가지 노동으로 쪼개놓아야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일리치는 우리가 중시하는 고용 노동 또는 임금 노동보다는 그림자 노동이야말로 인간의 자급자족을 상품에 가두는 데 훨씬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말한다. 임금 노동은 자발적으로 지원하거나 발탁됨으로써 행하는 노동이지만, 그림자 노동은 나면서부터 결정되고 부여되는 노동이기 때문이다. 즉 상품 사회를 위한 두 노동은 처음부터 억압받는 여성과 부양 의무를 짊어진 남성이라는 성차별 구조를 만듦으로써 성립할 수 있었다는 얘기다.


이반 일리치가 ‘그림자 노동’에 관심을 기울이는 까닭은 그림자 노동 자체의 특성이 중요해서가 아니다. 이 책 『그림자 노동』이 관심을 갖는 주제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우리가 추구하는 경제 성장은 과연 옳은가”이고 다른 하나는 “그림자 노동은 어떻게 우리의 삶을 성장의 희생물로 만들었는가”라는 것이다. 이 문제들에 답하기 위해 이반 일리치는 노동가치설과 같은 경제학적 접근보다는 역사적이고 사회적인 접근법을 택한다. 추상적 이론보다는 역사적 사실 속에서 현대 사회의 뿌리를 캐내려는 것이다.


경제발전과 성장의 이데올로기는 그 명백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현실에서 관철되었는가? 이반 일리치는 토착적인 자급자족 활동(subsistence)이 무보수의 가내 노동에 포획됨으로써 이 모든 불행이 시작되었다고 설명한다. 원죄는 그림자 노동의 발명에 있다는 것이다.


이 책 『그림자 노동』의 2장, 3장, 4장은 국가와 자본이 만들어낸 ‘필요’를 민중에게 강요하고 그것을 통해 민중을 산업의 도구로 만들어버린 역사를 설명하기 위해 쓰인 장들이다. 2장과 3장은 모어(모국어)의 발명을 통해 잡다한 언어를 통해 표현되고 영위되던 인간의 삶과 경험세계가 어떻게 근대 산업국가라는 단일 체제로 통합됐는지를 추적하는 내용이다. 4장은 민중이 스스로를 위해 만들고 발전시켜온 민중에 ‘의한’ 과학이 민중을 ‘위한’ 타율의 과학으로 바뀜으로써 어떻게 인간이 무능력하고 의존적인 존재로 바뀌었는지를 암시하는 내용이다.


이 장들은 특히 근대의 지식과 전문가주의가 인간을 해방시키기보다는 오히려 소수의 지배에 예속시키는 도구로 이용되었음을 밝혀냄으로써 지식과 기술의 적정성에 대해 주의를 환기하는 데 목적이 있다. 나아가 오늘의 성장주의가 역사적으로는 지식과 전문성을 갖춘 사회 최상위층의 이익에 봉사하고 있음을 보여주려는 목적도 있다.


언어의 통제는 그 중에서도 가장 우선적인 수단이었다. 인간의 천부적인 창의성은 종종 국가 권력이나 자본 권력이 원하는 바와 어긋나기 일쑤였으니 하나의 언어만을 국가의 공식언어로 강제하는 방법은 민중을 일사불란하고 통일적인 국가의 신민으로 만드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일리치는 16세기 초 스페인의 이사벨 여왕 치세에 살았던 문법학자 안토니오 데 네브리하(Antonio de Nebrija)의 생각을 살펴봄으로써 언어의 정복과 식민화가 콜럼버스에서 시작된 신대륙의 식민화와 똑같은 의도를 가진 것이었고 동일한 궤를 밟아서 이루어졌음을 흥미진진하게 보여준다.


이반 일리치가 특별히 근대의 언어 통일과 과학의 도구화를 심도 깊게 추적한 까닭은 인간의 자급자족적 삶이 어떻게 근대적인 성장 이데올로기의 희생양이 되었는가를 역사적으로 밝혀내기 위해서였다. 이 흥미진진한 역사들에서 우리는 인류사에서 극히 낯선 기형아인 현대 사회의 뿌리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이해할 수 있고 그것을 극복할 실마리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작가 이반 일리히 소개


이반 일리치만큼 논쟁적이며 수많은 수식어가 따라붙는 이 시대의 사상가도 드물다. “가장 급진적 사상가”(TIME)이자 “위대한 사상가”(가디언)였고, 주류 체제를 떨게 하는 “지식의 저격수”(뉴욕타임스)였다. 12개 국어에 능통하고, 화학과 신학, 역사를 전공했으며 그가 현대 사상에 끼친 영향은 사회학, 철학, 신학, 역사학, 과학기술을 넘나든다. 하지만 그는 어떤 범주와 분류에도 넣을 수 없는 사상가이다.


이반 일리치는 1926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중부 유럽을 떠돌다가 나치 박해를 피해 이탈리아로 피신한 후, 화학·신학·역사학 분야에서 학위를 받았다. 1951년 로마에서 사제 서품을 받고, 교황청 국제부직이 예정되었으나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 빈민가의 보좌신부로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살았다. 1956년 서른 살에 푸에르토리코 가톨릭 대학교의 부총장이 되었다.


1966년 멕시코에 ‘문화교류문헌자료센터CIDOC’를 설립해 당시 전 세계가 숭배하던 개발 이념에 도전했다. 이 센터는 급진 운동의 근거지이자 사상의 싱크탱크가 되었다. 교회에 대한 비판으로 교황청과 마찰을 빚다가 1969년 스스로 사제직을 버렸다. 1971년 『학교 없는 사회』를 발표한 후, 『공생을 위한 도구』, 『의학의 한계』 등으로 현대 문명에 근원적 도전을 던지며 세계적 사상가가 되었다. 1980년대에는 현대 관념의 뿌리를 밝히기 위해 12세기로 거슬러 오르는 사상적 여정을 시작해 『과거의 거울에 비추어』, 『텍스트의 포도밭에서』 등을 출간했다. 사회학·철학·경제학·여성학·종교학·언어학 등 여러 분야에서 탁월한 업적을 남기며 가장 근원적이기에 가장 급진적인 사상가로 평가 받는다.


말년에는 한쪽 뺨에 자라는 혹으로 고통 받았지만 현대식 의료 진단과 치료를 거부했다. 2002년 12월2일 독일 브레멘에서 눈을 감았다. ‘가디언’, ‘르몽드’, ‘뉴욕 타임즈’ 등은 사후 특집 기사 등을 통해 그에게 20세기 최고의 지성 중 한 명이라는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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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속심 기자 sisatim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