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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캠페인:책을 읽읍시다]

[책을 읽읍시다 (84)] 오레오레



오레오레

저자
호시노 도모유키 지음
출판사
은행나무 | 2012-07-11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자아를 잃어버린 현대 사회에 대한 발칙한 상상!제5회 오에겐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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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읍시다 (84)] 오레오레

호시노 도모유키 저 | 서혜영 역 | 은행나무 | 320쪽 | 13,000원

 

[시사타임즈 = 박속심 기자] 『오레오레』는 사소한 장난을 계기로 자신이 다른 사람이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하지만 이 비현실적 설정은 리얼리티가 살아 있는 스토리 전개를 바탕으로 읽는 이를 설득한다. 이에 더해 현대 사회의 부조리를 꼬집고 인간 사이에서 사라진 신뢰와 배려 등 이 시대의 안타까운 모습을 영리하게 비판한다. 『오레오레』는 점점 사라져가는 소설적 상상력과 문학성을 모두 갖춘, 현대 일본문학이 낳은 신선한 이정표이다.

 

나, 히토시는 평소처럼 맥도날드에서 혼자 점심을 해결했다. 그런데 옆자리에 앉은 사람의 휴대폰이 내 쪽에 있었고, 이유를 알 수 없으나 그것을 들고 나와버렸다. 벨이 울렸다. 휴대폰 주인의 엄마다. 무시하려 했지만 나도 모르게 전화를 받고 있었고, 아들인 척 술술 거짓말을 내뱉었다. 돈이 필요하다고. ‘전화 속 엄마’는 일말의 의심도 없이 ‘자기 아들 다이키’를 위해 돈을 보냈다. 그런데 며칠 후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전화 속 엄마가 나를 ‘다이키’라고 부르며 나의 집으로 찾아왔다. 당황한 나는 2년 동안 찾지 않은 나의 진짜 엄마 집으로 찾아갔다. 그런데 거기엔 다른 남자가 ‘나’의 행세를 하며 엄마와 같이 살고 있는 게 아닌가! “나예요. 히토시요”를 열심히 외쳤지만, 엄마는 경찰에 신고하겠다는 말만 되풀이 한다.

 

히토시는 점점 자신도 믿지 못하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왜곡된 기억을 처음부터 사실인 양 이야기한다. 또 히토시는 처음에는 다이키가 되었다가 시간이 지나면 아츠시, 히로미 등 전혀 다른 이름으로 불리게 된다. 물론 소설 속 누구도 그것에 일말의 의심 따위 품지 않는다. 히토시 자신조차도. 이쯤 되면 독자 역시 히토시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

 

이 소설은 한마디로 ‘끝없이 내가 증식하는 이야기’이다. 전혀 모르는 사람이 내가 되어 있고, 그 ‘나’의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간다. 물론 서로 ‘나’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 ‘나’를 만나 안정을 찾다가도 이유 없이 나는 ‘나들’을 서로 죽이게 된다.

 

어느새 ‘다이키’로 살아가는 히토시, 맥도날드에서 혼자 있을 때 가장 편안함을 느끼는 히토시, 다른 ‘나’들과 있을 때 ‘오프’가 될 수 있기에 지금의 비정상적인 현실에 만족하는 히토시. 그 히토시는 내가 누구인지 생각하지 않고 무턱대고 살아가는, 실은 너무나 외로운 현대인의 자화상이다. 또한 내가 다른 사람의 무대배경이 되고 마는 인간 관계의 허망함, 나는 이 사회에서 누구와도 대체될 수 있는 존재라는 무한 경쟁 사회의 씁쓸한 단면을 비꼬고 있다

 

히토시의 상황은 후반부로 갈수록 심각해진다. 세상에는 온통 나밖에 없다. 그리고 그 사실을 견디지 못한 사람들은 ‘삭제’라는 이름으로 나를 죽이기 시작한다. 암울하다. 그러나 작가는 그 안에서 희미한 희망의 빛을 던진다. “원래 작품이 어둡게 끝나는 방식을 좋아하는데, 이번에는 의식적으로 다른 엔딩을 생각했다”는 호시노 도모유키. 현실은 암울하지만, 어딘가 돌파구가 있을 거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다. 본문 마지막 페이지가 주는 은근한 여운은 짧지만 절대 가볍지 않다.

 

 

작가 호시노 도모유키 소개

 

“국가를 흔들리게 하는 규모'의 소설을 쓰는 작가. 1965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태어나 1988년 와세다 대학 문학부를 졸업했다. 한때 산케이신문 기자로 근무했으며 멕시코에 유학하기도 했다. 1997년 『마지막 한숨』으로 제34회 문예상을 수상했고, 2000년 『깨어나라고 인어는 노래한다』로 제13회 미시마유키오상, 2003년 『판타지스타』로 제25회 노마문예 신인상을 수상했다.

 

그는 일본 내에서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오에 겐자부로를 잇는 유망한 젊은 작가로 평가받고 있다. 오에 겐자부로는 소설 『책이여, 안녕』(2008)에서 자신의 소설적 후계자로 호시노 도모유키를 지목하며 '국가를 흔들리게 하는 규모'의 소설을 쓰고 있다는 말을 덧붙여 화제가 됐다. 문학평론가 모리 다쓰야는 호시노의 소설이 '위화감'이라는 감각에서 시작했다고 보면서 '이단의 위치에서 사회를 조망'하는 작가로 소개하고 있다. 그는 현재 일본 작가 중에서 드물게 전체소설(全體小說)을 몽상하는 작가다. '전체'나 '체계'를 지향하는 것이 어렵게 된 이 시대에, 이제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전체나 체계를 상기시키는 문제적인 작품을 펴내고 있다.

 

박속심 기자(sisatim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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