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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캠페인:책을 읽읍시다]

[책을 읽읍시다 (87)] 낯익은 세상



낯익은 세상

저자
황석영 지음
출판사
문학동네 | 2011-06-01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버려진 것들의 세상, 그 위에서 자라나는 삶!황석영이 작가생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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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읍시다 (87)] 낯익은 세상

황석영 저 | 문학동네 | 236쪽 | 11,000원

 

 


[시사타임즈 = 박속심 기자] 1962년 '입석 부근'으로 등단한 이래 오십 년 동안 당대의 풍운을 몰고 다닌 작가 황석영. 그가 2010년 10월 중국 윈난성 리장에서 집필을 시작해 2011년 3월과 4월 제주도에 칩거하며 완성한 작품으로, 작가생활 오십 년 최초로 전작으로 발표하는 장편소설이다. 작가는 이 작품을 일컬어 '만년문학'의 문턱을 넘는 자신의 첫번째 작품이라고 말한다.

 

‘낯익은 세상’의 주무대인 꽃섬은 쓰레기장이다. 온갖 더러운 쓰레기가 넘쳐나는 이 세상을 비유적으로 일컫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쓰레기장, 사람들이 쓰고 버리는 모든 물건들이 산을 이루는 진짜 쓰레기장이다. 거대하고 흉물스러운 쓰레기매립지인 이곳이, 생활의 터전인 사람들이 있다. 바로 ‘꽃섬’ 사람들이다.

 

황석영이 그려내는 꽃섬·쓰레기매립지와 거기에서 폐품 수집으로 먹고사는 빈민들의 생활풍속은 그 디테일이 풍부하며 상당한 박진감을 띠고 있다. 사람들에게서 버려진 쓰레기와 마찬가지로 도시로부터 내몰린 사람들―그들의 야생적 삶을 그려내는 솜씨는 역시 황석영이라는 감탄을 불러일으킨다.

 

작품의 한 주인공이랄 수 있는 소년 딱부리에게 꽃섬은 한편으론 빈곤하고 더럽고 삭막하기 짝이 없으나 다른 한편으론 경이로움이 가득한 성장환경이다. 비록 산동네이긴 하나 ‘도시’에 속해 있었던 딱부리는 어느 날 갑자기 쓰레기장이라는―도시와 전혀 다른―세계로 들어왔다. 그 속에서 초자연적인 것과 조우하며 인간과 사회 학습의 길로 나아간다. 딱부리의 이야기는 학교교육과 대척적인 자리에 놓이는, 이성과 규율로부터 자유로운 자아의 성장을 예시한다.

 

언뜻 보기에 대가의 따뜻하고 슬픈 동화 같은 『낯익은 세상』은, 꽃섬이라는 공간을 중심으로 보느냐, 딱부리의 경험을 중심으로 보느냐에 따라 그 성질이 달라지는 소설이다. 전자의 관점을 택하면 소비의 낙원을 구가하는 문명의 이면에 관한 소설이라는 점이 돋보이고, 후자의 시각을 취하면 최하층 사회 속에서 형성기를 보내는 한 소년의 학습과 각성에 관한 성장소설이라는 점이 두드러진다.

 

다시 말하지만 이곳은 물건도 사람들도 모두 ‘버려진’ 곳이다. ‘못 쓰는’ 물건들과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 하지만 이곳에도, 물론 삶은 있다. 이곳의 일상에도 웃음과 눈물이 교차하고, 술과 음식 앞에서는 노래를 부르며 흥을 돋운다.

 

『낯익은 세상』에서 작가는, 쓰레깃더미 속에서 가난한 사람들이 공동체의 축제처럼 행하는 식사, 어른되기가 어렵거나 어른되기를 거부하는 아이들의 천진성, 자연의 질서에 대한 샤머니즘적 믿음, 전원시적인 농촌의 이미지…… 무엇보다도 세계의 마법을 기억하는 동화적 이야기구조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작가 황석영은 소설의 무대로 삼은 쓰레기장을, 오로지 동물적인 생존만이 지배하는 비참한 막장으로 그리지 않는다. 물론 거기에는 ‘지상의 삶’과 비교할 수조차 없이 비루한 현실이 존재한다. 아무도 ‘정을 주지 않았기에’ 폐기된 것들 속에는, 폐기된 인간들도 포함될 것이다. 하지만 제각각의 연유로 섬에까지 흘러들어온 그곳의 사람들은 가까이 할 수 없는 괴물로서만 그려지지 않는다. 한 소년의 때묻지 않은 눈을 빌려, 작가는 그들 역시 고귀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놓치지 않는다.

 

결국 다시, 희망은 우리에게 있다.

 

이 소설에서 ‘생명’은 우리가 가지고 태어났으되, 언젠가부터 철저히 망각해온 바로 우리의 영혼이다. 예컨대, 과거-현재-미래를 포개어놓는 작가 황석영의 통찰력은, 실제 소설에서 ‘겹의 시간’과 ‘겹의 공간’으로 구현된다. ‘푸른 불빛’이 이끌어가는 소설의 시공간적 상상은 『낯익은 세상』의 미학을 웅변하는 동시에, 물질을 쫓으며 폐기해버린 영혼의 빈 곳으로 우리를 데려다놓는다. 땜통과 딱부리가 김서방네 꼬마 정령을 따라 들어간 동네의 모습은 소설이 만들어내는 가장 아름다운 한순간이면서, ‘우리 곁에 늘 살고 있는’ 모든 영혼들을 우리에게로 불러모으는 초혼의식의 서곡이다.

 

 

작가 황석영 소개

 

1943년 만주 장춘(長春)에서 태어났으며, 1947년 월남하여 영등포에 정착했다. 1950년 영등포국민학교에 입학했으나 한국전쟁으로 피난지를 전전했다. 1959년 경복고등학교에 입학했고 고교 재학 중 청소년 잡지 <학원(學園)>의 학원문학상에 단편소설 <팔자령>이 당선했다. 1960년 4.19 혁명 때 함께 했던 안종길이 경찰의 총탄에 사망하여, 황석영은 친구들과 함께 안종길의 유고 시집을 발간했다. 1961년에는 전국고교문예 현상공모에 <출옥일>이 당선됐다. 1962년 봄 고등학교를 자퇴한 후 같은 해 <입석부근>으로 <사상계> 신인문학상을 통하여 등단했다.

 

1966∼67년 베트남전쟁 참전 이후 197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탑>과 희곡 <환영(幻影)의 돛>이 각각 당선됐다. 74년 들어와 본격적인 창작 활동에 돌입하는데 첫 소설집인 <객지>와 <한씨연대기>, <삼포 가는 길>등 리얼리즘 미학의 정점에 이른 걸작 중단편들을 속속 발표되면서 진보적 민족문화운동의 추진자로서도 활약했다.

 

1974년 7월부터 대하소설 <장길산> 연재를 시작하여 1984년 전10권으로 출간했다. 1976~85년 해남, 광주로 이주하였고 민주문화운동을 전개하면서 소설집 <가객(歌客)>(1978), 희곡집 <장산곶매>(1980), 광주민중항쟁 기록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1985) 등을 펴냈다.

 

1989년 동경.북경을 경유해 평양 방문. 이후 귀국하지 못하고 독일 예술원 초청 작가로 독일에 체류한다. 그해 11월, 장편소설 <무기의 그늘>로 제4회 만해문학상을 받았고 1990년 독일에서 장편소설 <흐르지 않는 강>을 써 한겨레신문에 연재했다. 1991년 11월 미국으로 이주, 롱 아일랜드 대학의 예술가 교환 프로그램으로 초청받아 뉴욕에 체류했다. 1993년 4월 귀국, 방북사건으로 7년형 받고 1998년 사면됐다.

 

<오래된 정원>으로 단재상과 이산문학상을, <손님>으로 대산문학상을 수상했다. <객지>(1974), <북망, 멀고도 고적한 곳>(1975), <삼포 가는 길>(1975), <심판의 집>(1977), <가객>(1978), <돼지꿈>(1980), <오래된 정원>(2000), <손님>(2001), <모랫말 아이들>(2001), <심청>(2003), <강남몽>(2010), <낯익은 세상>(2011) 등을 펴냈다. 1989년 황석영의 작품들은 해외에서도 관심을 끌어, 중국에서 <장길산>(1985), 일본에서 '객지'(1986), <무기의 그늘>(1989), 대만에서 <황석영 소설선집>(1988)이 각각 번역·간행됐다.

 

박속심 기자(sisatim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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