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읍시다 (90)] 9월의 빛 : 검은 그림자의 전설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 저 | 송병선 역 | 살림출판사 | 284쪽 | 10,000원
[시사타임즈 = 박속심 기자] 스페인을 대표하는 베스트셀러 작가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의 데뷔작이면서 『안개의 왕자』, 『한밤의 궁전』으로 이어지는 미스터리 모험 3부작의 첫 번째 작품이다. 스페인에서 10개월 만에 170만부의 판매고를 올린 대표작 『바람의 그림자』에서 보여준 것과 같이 탄탄한 스토리와 구성을 갖춘 이 작품은, 영화적 모티프가 가장 잘 살아 있는 작품이면서 동시에 사폰의 문학적 단초를 엿볼 수 있는 미스터리 소설이기도 하다.
“오늘 나는 처음으로 그림자의 얼굴을 보았다. 그림자는 어둠 속에서 꼼짝도 하지 않은 채 조용히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나는 그 눈에 들어 있는 게 뭔지 알고 있다. 그것은 그림자를 살아 숨 쉬게 만드는 힘, 즉 증오다.”
1936년 시몬의 가족은 남편이 죽고 나서 남긴 엄청난 부채를 해결하기 위해 노르망디의 작은 해안 마을에 있는 대저택의 집사이자 가정부로 일자리를 얻는다. 그곳은 유명한 장난감 제조업자이자 발명가로 엄청난 재산을 쌓은 라사루스 얀의 오래된 대저택이었다. 라사루스는 20년째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을 앓고 있는 아내 알렉산드라와 단 둘이 생활하며 외부와의 접촉을 끊고 사는 베일에 싸인 인물. 음산한 대저택을 지키는 것은 이들 부부를 비롯해 수만 가지의 기괴한 로봇인형들뿐이다. 라사루스는 시몬 부인에게 지시 사항들을 일러준 뒤 주의사항을 당부한다. 아내 알렉산드라의 침실과 그의 작업실이 있는 서쪽 별채에는 절대 출입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한편 시몬의 딸 이레네는 대저택의 부엌일을 돕는 한나의 사촌인 이스마엘과 풋풋한 사랑에 빠진다. 어느 날 이스마엘이 들려준 ‘9월의 빛’의 전설. 가면무도회가 열리던 9월의 어느 날 밤 한 여인이 가면을 쓴 채 작은 배를 타고 등대섬을 향해 밤바다를 나섰다가 갑작스럽게 몰아치는 풍랑으로 그녀가 탄 배가 절벽에 부딪혀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가면으로 인해 마을 사람 누구도 그녀가 누구인지 기억하지 못했던 그 여인의 시체는 끝내 발견되지 않았다. 그 뒤로 9월이 되면 아무도 없는 등대에 간혹 불빛이 켜지곤 하는데 사람들은 그게 죽은 여인의 영혼이 밝히는 불이라고 굳게 믿게 됐다.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은 영화를 보는 듯한 생생한 묘사와 기발한 상상력을 발휘해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미스터리 탐정 소설 기법과 멜로드라마 기법에 모험이라는 요소를 가미되어 긴장감 넘치는 스토리가 전개된다. 이 소설의 중심을 이루는 그림자와 마음은 이처럼 눈에 보이는 세계만이 진짜 세계라고 믿는 우리의 의식을 뒤흔드는 데 일조하는 동시에 현실이라는 세계 뒤에 자리한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의 존재감을 일깨워줄 것이다.
작가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 소개
스페인 바르셀로나 출신으로 광고계에 몸담고 있다가 영화의 세계에 매력을 느껴 시나리오 작업을 위해 미국으로 이주했다. 1993년 『안개의 왕자El Principe de la Niebla』로 ‘에데베 청소년 문학상’을 수상해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이후 아동과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자정의 왕궁El Palacio de la Medianoche』 『9월의 빛Las Luces de Septiembre』과 『마리나Marina』 등의 작품들을 발표했다. 현재 그는 미국 LA와 스페인을 오가며 소설을 쓰는 한편 스페인의 『라 방과르디아La Vanguardia』지(紙)와 『엘 파이스El Pais』지의 칼럼니스트로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그의 장편소설『바람의 그림자La Sombra del Viento』는 2001년 스페인에서 첫 출간 직후 무려 101주 동안 베스트셀러 상위에 머물렀다. 곧이어 미국, 독일,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를 비롯한 세계 30여 개 국에서 모두 20개 국어로 번역되면서 독자들의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2000년 스페인의 ‘페르난도 라라Fernando Lara 소설 문학상’ 최종 후보작, 2002년 스페인의 ‘최고의 소설’ 그리고 2004년 프랑스의 작가, 비평가, 출판업자들로 구성된 심의회에서 그 해 출판된 ‘최고의 외국 소설’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 후 2008년에 『천사의 게임』을 발표하면서 또 한 번 세계적인 찬사를 받았다. 스페인에서 10개월 만에 170만 부가 판매되는 대기록을 세웠으며, 미국에서는 출간 즉시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르는 등 이른바 ‘사폰 현상’을 일으켰다.
『안개의 왕자』는 『9월의 빛』, 『한밤의 궁전』으로 이어지는 3부작 연작소설 중 하나로,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을 세계적인 작가의 반열에 올려놓은 데뷔작이다. 사폰은 이 작품으로 에데베 문학상을 받으며 시나리오 작가에서 소설가로 화려하게 데뷔, 세계적인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세 소설은 모두 안개에 가려 보일 듯 말 듯 감춰진 미스터리를 다루었다고 해서 〈안개 3부작〉으로도 불리는데, 풍부한 서사구조와 화려한 수사 등 소설의 교과서라 불릴 만한 요소들의 단초를 담고 있는 사폰 문학의 정수로 수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9월의 빛』은 『바람의 그림자』와 『천사의 게임』에서 차용한 문학적 요소와 영화적 모티프의 여러 단초들을 발견할 수 있는 작품으로 의미가 깊다. 그 밖에도 1993년 『안개의 왕자』가 에베데 문학상을 수상하는 등 사폰의 연작소설은 문학성에서뿐만 아니라 영화를 보는 듯한 생생한 묘사와 기발한 상상력으로 지금까지도 수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박속심 기자(sisatim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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