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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캠페인:책을 읽읍시다]

[책을 읽읍시다 (927)] 벌거벗은 자와 죽은 자(전2권)

[책을 읽읍시다 (927)] 벌거벗은 자와 죽은 자(전2권)

노먼 메일러 저/이운경 역 | 민음사 | 724쪽 | 각권 15,000원



 

[시사타임즈 = 박속심 기자] 헤밍웨이, 스타인벡의 전통을 잇는 리얼리즘 문학의 대가 노먼 메일러의 문학적 시초를 엿볼 수 있는 소설 『벌거벗은 자와 죽은 자』. 2차 세계 대전이 막바지에 이를 무렵, 일본군이 점령한 남태평양의 작은 섬 아노포페이에 커밍스 소장이 이끄는 미군이 상륙 작전을 감행한다. 사병 한 명이 전투 중 공포에 질려 참호 밖으로 뛰쳐나갔다가 폭탄에 맞아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지자 소대원들은 그제야 전쟁의 참상을 현실로 느끼기 시작한다. 본국에 두고 온 가족에 대한 기억과 끔찍한 전쟁을 벌이는 일상 속에서 이들은 서서히 공포와 절망에 사로잡힌다.

 

한편 전쟁을 작전의 성공과 실패로만 판단하는 커밍스 소장은 전투가 장기화되자 압박감을 느끼고 상황을 타개하고자 무리하게 보토이 만 상륙 작전을 구상한다. 마침 자신에게 반기를 든 헌 소위의 거취를 놓고 고민하던 커밍스 소장은 희생을 염두에 둔 이 무모한 임무에 그를 투입시킨다.


2차 세계 대전이 종결되기 일 년여 전, 이제 막 가정을 꾸린 스물두 살의 청년 노먼 메일러는 위대한 전쟁 소설을 쓰리라는 야심을 가지고 군에 입대한다. 『벌거벗은 자와 죽은 자』의 오십 주년 기념 판본의 서문에서, 자신은 “이미 대학 시절에 25만 단어 이상의 글을 썼을 만큼 글쓰기를 좋아했고 문학에 헌신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고 메일러는 회고한다. 하버드 대학 졸업생으로서 장교가 될 수도 있었으나 그는 사병으로 입대하는 것을 선택한다. 장교가 될 경우 전투를 제대로 경험할 수 없으리라는 이유에서였다. 그는 기초 군사 훈련을 받은 후, 맥아더 장군이 이끄는 미군의 필리핀 탈환 작전에 투입된다. 이때의 경험은 『벌거벗은 자와 죽은 자』의 근간을 이루는 중요한 재료가 된다.


이 소설의 구성 면에서 독특한 점을 지닌다. 시간 순으로 이루어지는 서사 사이에 영화의 플래시백 기법과 비슷한 장치인 ‘타임머신’과 병사들의 연극 같은 대화로 이루어진 ‘코러스’가 삽입되어 있다. ‘타임머신’은 주요 인물들의 내면과 과거 삶을 조명하며, 이를 통해 그들의 현재를 이해할 수 있게 해 준다. ‘코러스’와 ‘타임머신’은 또한 2차 대전 발발 전후 미국의 사회상에 관한 실마리를 제공한다. 그 면면에는 전쟁 특수를 반기는 자본가, 우익의 반공주의 선전 활동, 반유대주의, 노조 탄압, 실업자와 부랑자들, 인종차별 속에서 출세를 꿈꾸는 이민자, 억압적인 가부장, 방황하는 젊은 지성들이 있다. ‘코러스’에서는 배식, 여자, 교대, 제대 등 병사들의 가장 현실적인 관심사가 날것 그대로 전달된다. 이를 통해 메일러는 단지 전쟁의 끔찍한 순간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전쟁에 투입된 한 사람 한 사람의 과거와 현재를 조망하며 전쟁이 한 평범한 인간을 밑바닥까지 떨어뜨리는가를 선명하게 보여 준다.


또한 장편 전쟁 소설임에도 대규모의 교전 장면은 등장하지 않는다. 배경음으로 들려오는 간단없는 포성과 총성, 커밍스 장군의 책상 위에 쌓이는 전황 보고서, 죽은 혹은 죽어 가는 병사의 모습에 대한 지극히 냉정하고 사실적인 묘사가 직접적인 전투 장면을 대신한다. 오히려 며칠간의 노동을 헛수고로 만들어 버리는 폭우, 온몸을 짓누르는 더위, 위협적인 정글 등과의 지난한 싸움이나 전투를 준비하기 위한 끝 모를 노동과 행군의 과정, 인간의 적나라한 야심과 욕망, 인물들 간의 갈등과 복잡한 심리가 중점적으로 다뤄진다. 병사들은 이 지배하는 군대 조직에서 계급 불평등과 억압에 시달리며, 명령에 무의식적으로 반응하는 ‘파블로프의 개’가 될 위험에 늘 노출되어 있다.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 압도적인 자연력, 불평등한 군대 조직은 누군가에게는 기회이자 자신의 가능성을 펼칠 수 있는 무대가 되지만 대부분의 병사들에게는 어떻게든 벗어나고 싶은 족쇄가 된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부여된 한계 앞에서 수치심과 절망감을 느끼고 그것을 해소하기 위한 공격성을 내면에 키운다. 그것은 때로 불평이나 욕설로 어설프게 표출되고, 때로는 무력한 후퇴와 굴복으로 불발되며, 때로는 죽음이라는 가장 파괴적인 결과를 낳는다.



작가 노먼 메일러 소개


1923년 미국 뉴저지 주 롱브랜치에서 태어났다. 하버드 대학교에서 항공기술학을 전공했으나 헤밍웨이, 스타인벡, 포크너와 같은 작가들에게 영향을 받아 문학에 관심을 품게 됐다. 1943년 하버드 대학교를 우등으로 졸업한 뒤 입대하여 2차 세계 대전에 참전했다. 1948년 전쟁 당시의 경험을 바탕으로 첫 장편소설 『벌거벗은 자와 죽은 자』를 발표해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이 작품은 리얼리즘의 걸작이라 평가받으며 62주 연속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오르기도 했다.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갖고 활발히 참여하는 경향을 지녔던 그는 잡지 ‘빌리지 보이스’를 창간해 정치 현안에서부터 예술 문화까지 다루는 대안 언론의 가능성을 모색하기도 했다. 1967년 펜타곤에서 있었던 베트남 반전 시위를 소재로 한 『밤의 군대들』로 퓰리처 상과 전미 도서상을 수상했으며, 1979년 출간한 『처형인의 노래』로 두 번째 퓰리처 상을 수상했다. 반세기가 넘도록 활발하게 활동하며 미국 사회를 심도 깊게 조명해 온 노먼 메일러는 2007년 『숲 속의 성』을 발표한 후 11월10일 84세의 나이로 타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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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속심 기자 sisatim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