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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칼럼

[칼럼] 민주정치는 신뢰, 이성이 아니라 다수의 욕망 타협의 권력배분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칼럼] 민주정치는 신뢰, 이성이 아니라 다수의 욕망 타협의 권력배분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이기명의 ‘신뢰’ 철학과 박병석의 공수처 법안 개정 거부에 부쳐

 

 

▲최자영 전 부산외국어대학교 교수 ⒞시사타임즈

[시사타임즈 = 최자영 전 부산외국어대학교 교수] 이기명(고 노무현대통령 후원회장)에 따르면, 거짓말이 심각한 것은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될 사람들이 거짓말을 하기때문이라고 한다. 한 예로 6.25때 이승만이 자기는 대전으로 도망가고 방송에다 대고 서울 사수하니 피난가지 말라는 거짓말에 얼마나 많은 서울시민이 죽고 이산가족이 되었는가 하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이기명은 국가라고 하는 거대한 덩치를 이끌고 가는 대통령을 비롯해서 지도자란 이름을 가진 사람들은 그 바탕에는 신뢰가 있어야 한단다.

 

 

여기서 이기명은 사람을 구분하고 있다. 거짓말 해서는 안 될 사람이라는 것은 거짓말을 해도 되는 사람이 있다는 말이다. 이런 구분 자체가 비현실이다. 사람은 죄다 다소간 거짓말하기 때문이다. ‘해서는 안 될 사람’이라는 것은 당위를 말하는 것이고, 현실에서 그런 사람이 있어 주기를 바래는 것 자체가 망상이다. 혹 있다 해도 아주 드물게 있을 뿐이므로 그런 우연을 바래면서 표를 찍어서 권력을 부여하는 짓거리 자체가 웃기는 일이다.

 

사실 이기명 자신도 믿을 놈이 아무도 없다는 점을 모르는 것이 아니다. “국민에게 묻자. 지금 나라의 지도자를 자처하는 사람들을 믿느냐고 묻는다면 몇 명이나 고개를 끄덕일 것인가”, 자문하고 스스로 “(그런 믿음에 대한) 자신이 없다”고 결론 짓고 있기 때문이다. 그 “없음”이 이 나라를 이 꼴로 만들어 놓은 비극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이기명이 말하는 비극보다 더 큰 비극이 있다. 아무도 믿을 놈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여전히 이기명은 ”믿을 놈을 가려서 잘 뽑자“는 방법론 밖에는 알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이기명만 그런 것이 아니라 그 이기명의 글을 보고 맞다고 생각하는 대다수 민초들도 그러하다는 점은 더한 막장 비극이다.

 

이기명은 ”정치인이 모두 사육신같이 되라는 것은 아니고, 최소한의 애국심은 가져 달라는 것“이라고 구걸한다. 그런데 그런 것도 안 되기 때문에 민초들은 “입만 열면 국회의원 욕을 하는 이유는 바로 이들이 한국 정치를 대표하고 요리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나아가 이기명은 “정치는 꼼수로 하면 안 된다”, “선거는 가장 깨끗하게 승리를 해야 하는 스포츠다. 더럽게 승리하면 표를 찍어 준 국민이나 받은 자나 책임을 져야 한다”고 한다. 또 “냉정하게 생각해라. 인물만 제대로 찾아내면 얼마든지 찍어 줄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아무리 냉정하게 생각해도 이기명이 바라는 인물은 찾아낼 수가 없다. 현실은 꼼수를 쓸 뿐 아니라 아무도 책임 지는 이가 없다. 이기명은 사람이 죄다 욕망의 덩어리라는 사실을 잊고 있다.

 

같은 맥락에서 이기명은 “지도자(대통령)는 믿을 수 있어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한 사람만 가지고는 아무 일도 못한다. 대통령을 빨갱이라고 하고 탄핵하고 끌어내리겠다고 아우성치며, 성조기에다 이스라엘 깃발까지 나부끼며 광화문을 쑥대밭으로 만드는 태극기 부대를 보면 딱 대답이 나온다. 이기명은 “우리 국민이 현명한 판단으로 훌륭한 지도자를 선택할 것이라는 확신이다. 내 판단이 틀린 적은 거의 없다”라고 하나, 이 또한 헛소리이다. 적중할 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많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기명은 도둑질 해먹는 위정자들을 욕하면서 여당과 야당을 구분하고 있다. 야당의 비대위원장이라는 자는 전과로 줄이 좍좍 그어져 있다. 판사를 지냈다는 대표란 자도 수십억의 아파트 차액을 챙겼단다. 반면, 다리 수술을 한 후유증으로 3일 더 병가를 냈다고 정치를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는 자가 무슨 당의 대표냐. 대통령 어디 갔느냐고 검정 양복입고 시위나 하는 인간들이 무슨 국회의원이고 정치를 한단 말이냐. 이런 정치꾼들을 뽑아놓은 국민들이 정치를 원망할 자격이나 있느냐. 도둑놈이나 욕하는 놈이나 다 같다는 이상한 나라가 되어 버렸다는 것이다.

 

그러나 위정자를 놓고 여야를 구분하는 것 자체도 썩 적중한 것이 아니다. 개인별로 차이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여당이 야당과 반드시 다른 것이 아니다. 그 나물에 그 밥, 같이 준동하는 부분이 있다. 한 예가 공권력 남용을 벌하겠다고 작년말 어렵사리 공수처 설치법이 통과되었으나, 지금도 설치 자체가 오리무중인 점이다. 겉보기에 야당이 공수처장 후보를 추천하지 않아서 공수처 설치가 안 되고 있다. 여당 내 몇 명 국회의원이 법안을 고쳐서라도 야당의 몽니를 제거하려 하니, 국회의장 박병석이 금방 만든 법안을 다시 고치지 못한다고 제동을 걸고 나섰다. 그런데 어디 박병석 뿐이겠나? 의원들 중 공수처 설치에 내심 반대하는 이들이 있다는 뜻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리도 대담하게 국회의장이란 이가 보란 듯이 반대하고 나설 리가 없을 것이다. 여기에 여야가 어디 있고 믿을 놈이 어디에 있나? 욕망의 민낯밖에 드러나는 것이 없다. 그뿐 아니다. 공수처 개정법안이 상정되었다고 하니, 판사 나으리들도 민낮을 들이대고 반대하고 나섰다.

 

조국 전 법무장관은 10월 말까지 법안 개정 등 특단의 조치가 없으면 연내 공수처 설치는 불가하다는 전망을 내놓았다. 공수처 설치는 검찰 개혁을 위해서 가족이 범 아가리에 들어가는 것조차 마다하지 않았던 그가 심혈을 기울였던 개혁의 일환이다.

 

이기명은 “지금까지 자신을 위한 삶을 살았다면 지금 이 순간부터는 국민을 위한 삶을 살아가겠다.”고 했으나, 사실 그런 결심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방법론이다. 어떻게 민초를 위할 것인가 하는 점을 반성해야 한다. 이기명은 우리나라의 정치수준은 어떤가라고 묻고, “4.19로 이승만 독재를 쫓아냈다. 5.18로 전두환 군부독재를 몰아냈다. 국민이 켜든 촛불로 박근혜 이명박을 감옥으로 보냈다. 전 세계가 감탄했다. 큰소리 치고 자랑할 만한 자랑스러운 국민이으로, 여기까진 맞다”고 한다. 그런데 이런 사태는 자랑스러운 것만은 아니고 맞는 것만도 아니다. 오히려 우리 민초가 미련한 것을 증명한다. 일이 커질 때까지 참고 견디다가 마침내 터지기 때문이다. 진즉 예방하고 조치하지 못한 미련함 때문에 그 같은 희생을 치르는 것이다.

 

더구나 일이 터지고 난 다음에도 별 수가 없다. 박근혜만 몰아냈을 분, 미시적으로 부패와 비리의 온상은 사라지지 않고 그대로 온존하기 때문이다. 별로 달라진 것이 없이 국회는 아수라장인 그대로, 검찰과 법원은 사실을 그대로 왜곡하는 것이 변한 것이 없다. 박근혜 시절 청와대와 결탁하여 사법권력을 농단한 판사들도 아무도 벌 받지 않고 무죄로 풀려나고 있는 중이다.

 

일제 식민지 이래 독재를 거쳐 100여년을 내려온 제도가 빚는 결함은 이승만, 박근혜 사람을 쫓아내는 것으로 시정되는 것이 아니다. 미시적인 제도의 수정이 필요하다. 그것은 국회, 검찰, 판사들이 공수처 설치조차 반대하고 나서는 것을 보면서, 무엇을 고쳐나간다는 것이 얼마나 두꺼운 것인가를 깨닫게 된다. 그런 마당에 믿을 만한 사람을 뽑아야 한다는 위정자에 대한 ‘신뢰’의 철학을 가지고 있는 민초는 더 하릴이 없다.

 

민초가 위정자의 권력을 감시, 견제할 수 있는 풀뿌리 분권이 이루어지지 않는 한 민주정치의 앞날은 요원하다. 민주정치는 잘 난 사람들이 신뢰와 이성으로 민초를 위해서 정치하는 것이 아니라, 지울 수 없는 욕망을 가진 존재 인간들이 서로 욕망을 타협하고 조절하는 장치이다. 그 장치는 권력의 편재가 아니라 분권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지방 유지들이 발호할 수 있는 지방분권에 그치는 것이 아닌 뿔뿌리 분권 말이다.

 

힘이 뒷받침되지 않은 이성과 신뢰의 철학은 비현실적 몽상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기명이 말하는 “좋은 정치가를 잘 보고 뽑자”는 것은 비현실의 희망에 불과할 뿐, 예외없이 욕망의 덩어리인 인간에게 불가피하게 권력을 부여할 때는 그 공권력을 민초가 감시, 견제할 수 있는 장치도 불가피하게 함께 마련해야 한다. 그것은 중앙 집권을 풀뿌리 분권으로, 동시에 위정자의 권력을 감시하는 국민입법권(발안권), 위정자 소환권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글 : 최자영 전 부산외국어대학교 교수

 

※ 이 기사는 시사타임즈의 공식입장이 아닌, 필자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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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자영 전 부산외국어대학교 교수 sisatim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