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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캠페인:책을 읽읍시다]

[책을 읽읍시다 (818)] 은밀하게 나를 사랑한 남자

[책을 읽읍시다 (818)] 은밀하게 나를 사랑한 남자
 
에릭 포토리노 저 | 윤미연 역 | 문학동네 | 208쪽 | 12,000원



 

[시사타임즈 = 박속심 기자]『은밀하게 나를 사랑한 남자』는 섬세한 언어로 사랑과 죽음 등 인간의 보편적인 경험에 대한 이야기들을 주로 써온 포토리노의 작품 세계에서 핵심적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자살 이후 일어난 일들과 자신의 내부에서 일어난 감정의 변화들을 섬세하면서도 격정적인 필치로 그려냈다. 한 편의 소설처럼 진행되는 이 작품은 요즘 사람들에게는 점차 낯선 개념이 되어가는 아버지의 고요하지만 거대한 사랑을 형상화하는 것을 시작으로 삶과 죽음이라는 인간 본연의 문제에 대한 통찰로 사유를 확장시켜나간다.


또한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이 책에 등장하는 아버지가 화자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의붓아버지라는 사실이 드러나는 순간 이 작품은 단지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 이야기가 아닌 인간 대 인간의 근본적이고 위대한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된다. 아버지의 의문스러운 자살에서 촉발되는 이 이야기는 흥미진진하게 진행되며 종내에는 깊은 공감과 묵직한 울림을 전달한다.


에릭 포토리노는 어느 날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사망 소식을 접한다. 아버지는 평생을 떠나지 않은 라 로셸이라는 도시의 북쪽 주차장에 세워진 자동차 조수석에서 엽총으로 목숨을 끊었다. 실패하는 것을 원치 않았던 아버지는 멧돼지 사냥에 쓰는 엽총을 입안에 넣고 방아쇠를 당겼다. 유서는 남기지 않았다. 다음날 에릭에게 도착한 한 통의 편지. 거기에 자살의 이유는 적혀 있지 않았다. 그저 “장하다, 에릭. 그랑파르크의 개구쟁이가 어느새 이렇게 어엿한 어른이 되었구나”라는 말로 시작하는 작별 인사뿐이었다. 아버지는 왜 목숨을 끊었을까. 에릭은 아버지의 유품을 정리하며 마지막 삶의 궤적을 추적해나간다.


에릭이 아버지의 죽음에 따른 자신의 행동과 감정을 적어나가는 형식으로 진행되는 이 글은 현재와 과거가 교차되며 진행된다.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머물렀던 자동차 안을 조사하던 그는 아버지의 오랜 친구의 장례식 초대장을 발견하고 아버지의 이웃에게 그의 명패가 얼마 전부터 보이지 않았다는 사실을 전해 듣는다. 아버지는 마치 오래전부터 죽음을 준비해온 것으로 보인다.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를 다루었다는 점에서 이 책은 에세이로 분류되지만 이야기의 전개 방식은 마치 한 편의 소설을 보는 듯하다. 한 남자의 죽음 이후 그 원인을 추적해나가는 과정은 추리소설에 가깝다. 그러나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진솔함에 있다. 책 속의 모든 문장에서 아버지에 대한 작가의 깊은 사랑을 발견할 수 있다. 아버지의 사랑, 특히 아버지에 대한 사랑은 현대 사회에서 어쩌면 낯선 개념이다. 그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추상적인 관념, 혹은 입 밖으로 소리 내어 말하기 쑥스러운 단어다. 아버지의 사랑은 대체로 말이 없고, 아주 깊은 곳에서 좀처럼 쉽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에릭 포토리노의 이 절절한 사부곡(思父曲)은 아버지에 대한 깊은 사랑을 드러냄으로써 그러한 아버지의 사랑을 재발견하는 과정으로 쓰인 것이라 할 수 있다.


에릭 포토리노의 문체는 섬세하고 또한 아름답다. 하지만 『은밀하게 나를 사랑한 남자』를 이루고 있는 문장들에는 아름답다는 말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어떤 강렬한 무언가가 녹아들어 있다. 때로는 격앙되고 때로는 애절한 그의 문장에는 미처 추스르지 못한 감정의 격류와 깊고 단단한 애정에서 비롯된 따스함이 공존한다. 에릭 포토리노는 뛰어난 소설들을 발표해 유수의 문학상을 석권할 만큼 탄탄한 문장력을 보유하고 있지만, 이 작품에서 만큼은 조금씩 더듬거리기도 하고 가벼운 실수를 범하기도 한다. 그것은 그만큼 이 작품에 짙은 감정을 여과 없이 담았다는 말이 될 것이다. 그러한 면에서 『은밀하게 나를 사랑한 남자』는 한 작가가 쓸 수 있는 가장 진실한 형태의 산문이라고 할 수 있다. 온 마음을 담아 써내려간 그의 문장들은 그 무엇보다 진실되기 때문에 더욱 아름답고, 읽는 이의 가슴에 쉽게 사라지지 않는 울림과 감동을 선사한다.



작가 에릭 포토리노 소개


1960년 프랑스 니스에서 태어났다. 라 로셸 대학 법학부와 파리 10대학, 파리정치대학에서 공부한 뒤 여러 언론사에서 프리랜서 저널리스트로 활동했다. 1986년 프랑스의 유력 일간지 르몽드에 입사해 기자 생활을 시작했다.


1991년 첫 장편소설 『로셸』 출간 후 자전적 이야기를 중심으로 왕성한 작품 활동을 이어간다. 1992년부터 삼 년간 파리정치대학에서 강의했으며 2008년에는 르몽드의 회장으로 임명되어 경영난에 시달리는 회사에 파격적인 구조조정을 단행해 세계적인 유명인사가 되기도 했다.


픽션과 논픽션을 오가며 섬세한 언어로 사랑과 죽음 등 인간의 보편적인 경험에 대해 이야기하는 작품들을 주로 써온 그는 1998년 『아프리카의 심장』으로 아메리고 베스푸치 상을, 2004년 『코르사코프 증후군』으로 프랑스 서점 대상, 프랑스 텔레비전 상을 수상했다. 같은 해 『붉은 애무』를 발표해 아카데미 프랑세즈가 수여하는 프랑수아 모리아크 상과 장클로드 이초 상을 받았고, 2007년에는 『영화의 입맞춤』으로 페미나상을 수상했다. 그 외 작품으로 『배영』 『셰브로틴』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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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속심 기자 sisatim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