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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기획특집①] 서울교회 사태를 진단한다…‘18 vs 8’의 양측 진영 분석

[기획특집①] 서울교회 사태를 진단한다…‘18 vs 8’의 양측 진영 분석
 
┃‘18대8’의 싸움…‘골리앗과 다윗’의 싸움 연상

┃‘하나님이 누구와 함께 하시느냐’가 승부의 열쇠

┃서울교회 사태는 한국교회 개혁의 모델

┃한 측에는 구원, 한 측에는 심판이 있을 것

 

 

[시사타임즈 = 엄무환 국장] 서울교회(박노철 목사) 사태와 관련하여 오는 16일 예장 통합 총회재판국(국장 이만규 목사)의 재심 심리가 재개된다. 16일은 지난 해 1월15일 박노철 목사측이 오정수 장로측에 의해 서울교회 건물에서 내쫓김을 당한 지 만 1년이 되는 의미있는 날이다. 따라서 <시사타임즈>는 2018년 새해 기획특집으로 서울교회 사태의 지난 1년간을 되짚어보는 ‘서울교회 사태를 진단한다’는 제목으로 이번 한 주 동안 매일 한 차례씩 다루기로 했다.

 

 

▲서울교회 전경 (c)시사타임즈

◆ ‘18대8’의 싸움…‘골리앗과 다윗’의 싸움을 연상

 

먼저 이번 글에선 서울교회 사태와 관련하여 양측의 상황을 짚어보려 한다. 글의 제목에 언급된 ‘18 vs 8’은 지난 해 서울교회 안에서 진행된 일련의 사태와 관련된 상징적 수이다. 즉 서울교회 담임인 박노철 위임목사를 교회에서 아웃시키려는 18명의 장로들과 이들의 전방위적 공세에 맞서 박 목사를 사수하려는 8명의 장로들 말이다. 18과 8이라는 상징적 숫자가 말해 주듯 18명의 장로들은 박 목사를 교회에서 아웃시키기 위해 모든 화력을 총동원하여 1년여째 집중 공격을 가하고 있다. 여기엔 법적인 수단은 물론이요 물리적인 방법까지도 포함된다.

 

일반적인 기준으로 전황(戰況)을 분석해 볼 때 18명의 장로들이 내뿜는 막강한 화력을 8명의 장로들이 막아내기란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라 박 목사가 금방이라도 교회에서 아웃될 것 같은 분위기였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는 결과가 나오고 있다. 오히려 그 반대의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그토록 기세등등했던 18명의 장로들이 점점 궁지에 몰리고 있으며, 어쩌면 박 목사가 아니라 18명의 장로들이 교회에서 아웃될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이게 도대체 어찌된 까닭일까.

 

서울교회 사태를 1년 이상 취재하며 기사를 써온 필자의 눈으로 볼 때 18명의 장로들이 일으킨 ‘담임목사 몰아내기’ 거사(巨事)는 결국 실패할 것으로 예측된다. 감히 필자가 이런 예측을 밝힐 수 있는 것은 분명한 이유가 있어서다. 필자의 글에 대해 18장로측은 비난의 목소리를 높일 것으로 예상되지만 그러나 필자의 주장에 동의하든 안하든 그 판단은 전적으로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의 몫이라고 본다.

 

먼저 양쪽의 객관적 전력부터 살펴보면 모든 면에서 18장로측의 화력은 8명의 장로측에 비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우세하다. 수적인 우세는 물론이며 18장로 가운데는 두 명의 변호사가 포진되어 있어 법적인 싸움에서도 비교우위를 점하고 있다. 이 중 한 분은 서울교회가 속한 예장 통합 총회재판국 전문위원으로까지 활동했기에 자연히 재판국원들과 교분을 쌓았을 것은 명약관화하다.

 

또한 18장로 가운데는 서울교회 창립이후 단 한 번도 교회 재정에서 손을 떼본 적이 없는, 그리고 교회 내 인사관리에도 적잖은 영향력을 행사한 막강한 실권자가 있다. 이 분의 말은 적어도 서울교회 안에선 법으로 통할 정도였으니 당회는 물론이요 교회 내에서 감히 그 분의 말을 거역할 분위기가 못됐다고 한다. 그 결과 부목사들과 교회 직원들이 18장로측에 줄을 서거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 형성됐다는 것. 박 목사나 8명의 장로들의 입지가 좁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 분은 예장 통합 내 전국장로연합회 회장과 장로신문사 발행인으로도 활동했다. 총회 안에서의 인맥이 매우 두터울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사실 이 분이 18장로측의 머리 역할을 하면서 ‘담임목사 몰아내기’라는 거사를 진두지휘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거기에 비해 8명의 장로들의 면면을 보면 법률전문가도 없고, 재정적으로 충분한 실탄을 공급할 수 있는 형편도 못되며, 총회재판국이나 총회 내 인사들과도 교류가 그리 깊지 못한, 그야말로 갑갑한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들을 보면서 필자의 머릿속에 떠오른 것이 있다. ‘18대 8의 싸움’은 ‘골리앗과 다윗과의 싸움’과 같다는 것이다. 그런데 필자의 이 지적은 서울교회 사태에 관한 모든 것을 담고 있는 핵심 메시지이다. 왜냐하면 ‘다윗과 골리앗’과의 싸움에서 승리의 열쇠는 다윗이나 골리앗에게 있는 게 아니라 하나님에게 있음을 보여주듯 ‘18대 8’의 싸움 역시 그러하기 때문이다.

 

◆ 승부의 결정적 키(key)는 ‘하나님이 누구와 함께 하시느냐’이다

 

알다시피 하나님은 다윗과 함께 하셨다. 다윗이 골리앗을 무너뜨린 결정적인 요인이 바로 이것이었다. 사실 인간적인 눈으로 볼 때 다윗이 골리앗을 무너뜨릴 것이라고 확신한 사람이 몇 명이나 되었을까. 하지만 예상을 뒤엎고 다윗이 골리앗을 넘어뜨렸다. 승리의 주인공이 된 것이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그 이유는 단 한가지다. 하나님이 다윗과 함께 하셨다는 것. 바로 이것이 승리의 결정적 요인이었다. 이는 다윗이 골리앗을 향해 선포한 다음의 고백에서 확인된다.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넘기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목을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를 오늘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고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사무엘상 17:45~47).

 

다윗의 이 고백은 허언(虛言)이 아니었다. 이미 승리를 확신한 믿음의 고백이요 선포였다. 성경은 이 싸움의 결과를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블레셋 사람이 일어나 다윗에게로 마주 가까이 올 때에 다윗이 블레셋 사람을 향하여 빨리 달리며 손을 주머니에 넣어 돌을 가지고 물매로 던져 블레셋 사람의 이마를 치매 돌이 그의 이마에 박히니 땅에 엎드러지니라 다윗이 이같이 물매와 돌로 블레셋 사람을 이기고 그를 쳐죽였으나 자기 손에는 칼이 없었더라 다윗이 달려가서 블레셋 사람을 밟고 그의 칼을 그 칼 집에서 빼내어 그 칼로 그를 죽이고 그의 머리를 베니 블레셋 사람들이 자기 용사의 죽음을 보고 도망하는지라”(사무엘상 17:48~51).

 

지금 서울교회 안에서 이와 유사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적어도 필자의 눈엔 그렇게 보인다. 즉 인간적인 눈으로 볼 땐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힘의 우위를 갖고 있는 18장로측과 이에 맞서고 있는 8명의 장로측, 즉 박노철 목사측, 양측의 모양새가 영락없이 골리앗과 다윗 같다. 18장로측이 골리앗, 박 목사측이 다윗과 같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18장로측은 여러 면에서 박 목사측과 비교할 수 없는 힘의 우위로 골리앗이 이스라엘의 군대를 모욕한 것처럼 박 목사에게 모욕적인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그 블레셋 사람이 또 이르되 내가 오늘 이스라엘의 군대를 모욕하였으니 사람을 보내어 나와 더불어 싸우게 하라 한지라 사울과 온 이스라엘이 블레셋 사람의 이 말을 듣고 놀라 크게 두려워하니라”(삼상 17:10~11).

 

그런데 다윗과 골리앗과의 싸움에서 보듯이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누구 편이냐이다. 왜냐하면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처럼 서울교회 내에서 진행되고 있는 ‘18대 8’의 싸움 역시 승리의 결정적 열쇠는 사람이나 화력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어느 편에 함께 하시냐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심’, 즉 ‘임마누엘’이 승리의 핵심 키워드(key word)이다. 이 메시지가 성경 전체를 관통하고 있다. 적어도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이 메시지가 성경 전체를 통해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강조하시는 메시지임을 모르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 메시지를 삶의 현장에서 실제로 적용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는가 하는 점이다. 다시 말해 이 메시지를 단지 성경의 기록으로만 취급하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지 않음을 하나님은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에서와 같이 서울교회 사태를 통해서도 알리시는 것 같다. 필자의 독단적 생각이라고 치부할지 모르겠지만 필자는 지난 1년 이상 서울교회 사태를 보도하면서 하나님께서 서울교회 사태를 통해 서울교회 가족들은 물론 한국교회와 전 세계 교회에 알리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하나님께서 21세기 현대판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을 보여주는 ‘8대 18’의 싸움에서 승리의 열쇠가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는 다윗의 고백이 실제임을 이 시대의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선포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렇다. 하나님은 서울교회 사태를 통해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에서 드러내셨던 것처럼 동일한 메시지를 선포하고 계심이 분명하다. 하나님이 누구와 함께 하시느냐가 승리의 관건이요 열쇠라는 사실을. 서울사태와 관련한 이 글은 바로 이 메시지를 전하는데 목적이 있다.

 

◆ 서울교회 사태는 한국교회 개혁의 모델

 

그런데 또 하나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메시지가 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서울교회 사태에 개입하실 수밖에 없는 또 하나의 이유와 맞물린 메시지이기도 하다. 하나님은 결코 당신의 종과 백성을 버리지 않는다는 사실이 그것이다.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며 진정으로 당신을 예배하는 백성을 결코 버리지 않으신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서울교회 사태에 개입하실 수밖에 없으셨다. 그리고 하나님의 존재를 드러내기 시작하셨다. 하나님이 서울교회 사태에 개입하셨다는 것은 여러 가지 사건들을 통해서 얼마든지 확인된다.

 

그리고 또 다른 중요한 메시지가 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인본주의와 거짓술수 등이 만연한 한국교회를 개혁하기 위해 수술용 메스를 든 것이 아니냐는 두려움과 긴장감이다. 즉 서울교회 사태는 단지 서울교회에 국한된 사태가 아니라는 것이다. 서울교회 사태를 보도하면서 필자는 하나님께서 서울교회를 한국교회의 한 모델로 사용하고 계신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빙자한 그러나 실상은 인본주의와 거짓술수가 판을 치는, 마치 바벨탑과 같은 조국의 교회들을 허물고 성경적이며 성령충만한 하나님 중심의 교회 공동체로 세우시기 위한 개혁의 일환으로 서울교회를 한 모델로 사용하고 계신다는 사실이다.

 

이를 위해 하나님은 18장로들의 맹렬한 공세로 낭떠러지로 내몰린 나머지 오직 하나님만 바라볼 수밖에 없는 박노철 목사와 그와 함께 하는 성도들을 대상으로 신앙의 담금질을 함께 병행하시는 것 같다. 이는 다윗이 골리앗을 무너뜨린 이후 이스라엘의 왕이 되기 위해 받았던 연단의 과정을 연상케 하는 대목이다. 즉 박 목사의 경우 이 두 가지 목적이 병행되어 실시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하는 점이다. 한국교회가 이 메시지를 받아들일지는 미지수이지만 말이다.

 

◆ 박 목사와 박 목사측 성도들이 부럽다

 

서울사태와 관련한 기획특집은 세 가지 메시지를 드러내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첫째, 하나님이 함께 하심이 승리의 관건이라는 것, 둘째, 하나님은 당신의 종과 백성을 결코 버리지 않으시며 끝까지 보호하시고 책임지신다는 것, 셋째, 하나님께서 서울교회를 한국교회 개혁의 모델로 삼고 계신다는 그것이다.

 

따라서 이 글을 읽는 동안 독자들은 하나님이 지금도 살아계시며 당신의 종과 백성들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그리고 어떤 방법으로 승리의 역사를 만들어 가시는지를 필자와 함께 목격하는 기쁨을 누리게 될 것이다. 이를 위해 하나님께서 얼마든지 이름도 없는 무명의 성도들을 동원하여 그때그때마다 무대에 세워 사용하셨으며 정말 하나님만이 하셨다는 고백을 절로 할 수밖에 없도록 간섭하셨음을 고백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이름을 나머지 온갖 인본주의적 술수가 판을 치는 조국의 교회를 하나님께서 어떻게 개혁을 위한 수술용 메스를 들이대실 것인지도 미루어 짐작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정작 이 글의 주인공들인 박노철 목사와 8명의 장로들과 권사들, 은퇴하신 장로들과 권사들 그리고 박 목사를 지지한 것 때문에 광야교회의 온갖 고생을 감내해야만 했던 교인들의 말할 수 없는 눈물과 아픔을 잊어선 안될 것이다. 이들이 말할 수 없는 고통의 시간들을 감당하지 않았다면 이 글은 탄생될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십자가 없는 면류관은 없다”는 말이 있다. 예수님의 공생애를 통해 입증된 이 메시지를 21세기를 살아가는 이 시대에 하나님께서 서울교회 박노철 목사와 교인들을 통해 입증하고 계시는 것 같다. 그런 면에서 박 목사와 교인들은 복받은 사람들이다. “지금의 고난은 장차 나타날 큰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다”는 말씀처럼 그 마지막이 어떠할 것인가가 미루어 짐작되기 때문이다.

 

저 이스라엘 백성들이 겪었던 광야교회를 이 시대에 어느 교회가 온 몸으로 경험했겠는가. 세상적인 시각으로 볼 때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저 골리앗을 무너뜨린 다윗과 같은 이가 이 시대에 과연 어디에 있는가. 필자가 서울교회 박노철 목사와 그와 함께 하는 교인들에게 시선을 집중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들이 바로 이 질문들에 대한 정확한 답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선가 마음 한켠에선 박 목사와 함께 하는 교인들이 부럽다. 너무 너무 부럽다.

 

◆ 박 목사측과 오정수 장로측…한 쪽엔 하나님의 구원, 다른 쪽엔 하나님의 심판이 있을 것

 

하나님은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교회에서 연단하셨다. 강대한 아낙자손들이 진을 치고 있는 약속의 땅 가나안을 정복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이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필요했던 것은 오직 믿음. 그 믿음만이 가나안 땅을 정복하는 무기였기 때문에 이를 준비시키셔야만 했던 것이다. 지금 서울교회 박노철 목사측이 딱 이와 같은 형국이다. 하나님께서 이들을 믿음의 공동체로 만들어가고 계시다는 것이다. 이러한 시각에서 서울교회 사태를 예측해본다면 그 결말이 어떻게 날 것인지가 미루어 짐작되지 않겠는가 싶다. 물론 언제나 최종 결과는 끝까지 가봐야겠지만 그러나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실상”이라 했으니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과 세상적인 잣대로 바라보는 것과는 아무래도 사건과 상황에 대해 서로 다른 분석이 나오는 것은 당연하지 않겠는가. 현재는 물론이요 그 결과에 대해서까지 말이다.

 

하나님은 구원을 베푸시는 사랑의 하나님이 분명하시다. 그렇기에 당신의 사랑하는 종과 백성을 결코 버리지 않으신다. 동시에 하나님은 불의를 결코 용납하시는 분이 아니시다. 공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불의를 심판하실 수밖에 없으시다.

 

‘18대 8’의 싸움에서 하나님은 한편엔 구원의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으로 나타나시겠지만 다른 한편엔 공의의 하나님, 심판의 하나님으로 나타나실 것이 분명하다. 이 글의 목적이 이를 증거하기 위함이며 따라서 이 글을 읽는 독자들도 이 사실을 눈으로 목격하는 계기가 되었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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