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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칼럼

[ 전문가 칼럼 ] 무항산 무항심의 오해 : 한국의 지도층의 사회적 책임 수준

[ 전문가 칼럼 ] 무항산 무항심의 오해 : 한국의 지도층의 사회적 책임 수준




이경태 (사)한우리통일복지국가연구원장·

행정학 박사 ⒞시사타임즈

 

[시사타임즈 = 이경태 (사)한우리통일복지국가연구원장·행정학 박사] 우리나라에서 청백리로 추앙받는 공직자였다고 한다. 대법관, 중앙선관위원장을 거치면서 공직자의 모범으로 존경받은 사람이 퇴임 후 조그만 가게를 운영하는 아내를 도우며 소시민으로 살아가겠다고 밝혀 이 혼탁하고 돈이면 다 되는 사회에서 정말 맑은 충격을 주었다. 그러던 그가 6개월 만에 소시민생활을 그만두고 대형로펌으로 가겠다고 하면서 한 말이 “무항산이면 무항심이다”라는 구절이다. 생활이 어려워 소시민으로 살 수 없다는 말이다.

 

우선 무항산, 무항심이 본래 무슨 의미인지 살펴보자. 이 말은 맹자의 양혜왕편에 나오는 구절이다. 맹자가 양혜왕을 만나 왕도정치에 대하여 설하는 가운데 양혜왕이 왕도정치의 길을 묻자 “일정한 생활근거가 없이도 일정한 마음을 갖는 것은 오직 선비만이 할 수 있습니다. 만일 백성이라면 일정한 생활근거가 없으면 일정한 마음이 없어지고, 방종, 사악의 길로 들어서게 되어 죄를 짓게 되는데, 그런 후에야 따라가서 처벌한다면 백성을 그물로 잡는 것이나 같은바 어찌 어진 사람이 백성을 그물로 잡는 일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라고 한 말이다. 즉, 선비는 경제적으로 곤궁하더라도 바른 마음을 가질 수 있지만 백성은 먹고살기 어려우면 바른 마음을 갖기 어렵고 범죄를 저지르게 되므로 정치를 하는 사람은 모름지기 백성들의 생활을 편하고 넉넉하게 해 주어야 한다는 왕도정치, 오늘날의 생활정치를 설한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최고위 공직을 지낸 분이 맹자가 일반백성을 위해 한 말을 인용하면서 생활이 어려워 서민으로 살기를 포기한다면서 대형로펌의 길을 택했다는 것에서 우리는 많은 것을 생각할 수 있다. 김 모 전대법관이 처한 생활환경을 모르기 때문에 개인의 삶에 대해서는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사회적 차원에서 논할 수는 있는 것이다. 아마 김 전 대법관은 공무원 연금으로 매월 400여 만원을 받을 것이며, 가게에서 매월 100여만원 이상은 소득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매월 최소한 500만원 이상은 고정소득이 있다는 것인데, 이는 한국노총이 발표한 2013년 4인 도시가구 표준생계비에 해당한다. 즉, 그 정도 소득이면 4인의 도시가구가 중산층의 소비수준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분의 가족구성이 몇 명인지는 모른다. 아마 자녀는 다 장성하였을 것이므로 4명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적어도 4인 도시가구 표준생활수준보다는 더 나은 생활수준을 유지할 수 있는 소득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이 수준으로는 살기가 어렵고 품위유지가 안된다고 한다면 평소 도대체 어느 정도의 소비수준을 영위하였는지 궁금한 것이다. 더욱이 우리나라에서 청백리로 칭송받던 사람이 이 정도라면 일반 고위공직자의 생활수준은 대체 어느 정도일까 생각하면 가히 일반서민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별천지였을 것이다.

 

또 하나의 최근 사례가 우리를 슬프게 한다. 채동욱 전 검찰총장 이야기다. 그도 역시 드물게 강직하고 청렴한 검사로 소문이 나 있는 사람이다.

 

그런 그가 혼외자식을 둔 것이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고, 어떤 수준의 생활을 하였는지 짐작하게 한다. 검사월급만으로 정직하게 산다면 도시민 표준생활을 영위하기도 벅찰 것이다. 모든 공직자들이 자기 월급만으로 생활한다면 자녀 사교육과 해외유학은 커녕 집장만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그런데 우리나라 주요공직자들의 실제는 어떠한가? 도대체 어디서 돈이 샘솟는지 대부분이 알짜배기 부동산을 소유하고 상류층 수준의 호화생활을 누린다. 이를 보면 물어볼 필요도 없지 않은가? 그러나 이들이 부정부패하는 것을 공무원 개인만의 탓으로 돌릴 수 있을까?

 

국민소득 3만 불을 넘어 명실 공히 선진사회로 진입한 지금 선진국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공직사회의 투명성과 청렴성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 잘 알고 있다. 또한 선진사회의 필수요건인 상류층, 기득권층의 노블리스 오블리제, 즉, 가진 자의 사회적 책임과 사명감이 자리 잡아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가장 존경받는 고위공직자라고 일컬어지던 김 전 대법관의 사례에서 우리나라 기득권층의 사회적 책임의식과 사명감을 읽어 볼 수 있으며, 가히 심각한 수준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대다수의 국민이 월급 300여 만원 수준에서 생활하고 있다. 4인 가구 154만원에 미달하면 국민기초생활보장 제도에 의해 월154만원 수준의 소득보장이 주어진다. 통계청(2013)에 의하면 우리나라 가구소득은 연1,000만원 미만이 14.3%, 1,000~3,000만원 30%, 3,000~5,000만원 미만 25.2%로 가구소득이 연5,000만원 미만인 가구가 전체가구의 70%에 이른다는 것이다. 대부분이 월급 400만원에 미달하는 수준에 처해 있으며, 도시가구 표준생계비에도 못 미친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나라 국민 70%는 빈곤층의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이며, 이들은 생존자체를 위해 허덕이면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연소득 5,000만원이 결코 작은 액수가 아니라는 것이며, 그럼에도 우리국민들을 빈곤층으로 몰고 있는 것은 너무나 열악한 사회보장 수준 때문이다. 우리사회는 공적으로 해결하고 공적으로 공급하여야할 필수 공공재에서조차 개인에게 네가 알아서 살아가라는 식의 자유방임사회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유방임을 하면 당연히 강자는 갈수록 강해지고 부자는 갈수록 부자가 되며, 가난한 사람은 갈수록 가난해져 가난의 늪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지옥과 같은 사회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국가가 공급해 주어야 할 교육서비스가 매년 50여조원을 공교육예산으로 쏟아 부으면서도 잘못된 사회구조로 인하여 공교육은 망해가고 사교육만 번창하여 교육자체를 개인이 부담하여야 하게 되었다.

 

주거문제 역시 투기수단으로 만들어 놓아 상상을 초월하게 폭등한 주택가격으로 인하여 서민은 주택소유는 꿈도 못꾸게 되었으며, 국가는 주거복지를 소홀히 한 결과 개인에게 맡겨 둠으로 인하여 주거비 부담에 허덕이고, 의료는 그나마 복지가 잘되어 있지만 의료보험 제외 항목이 아직도 많아 중병이 들면 온 가족이 파탄나는 비극으로 몰리는 위험 속에 놓여 있는 등 개인은 주거, 교육, 일자리, 의료, 노후준비 등 모든 생활분야에서 불안과 위기 속에 놓여 있는 것이다. 생활소비수준 역시 월소득 500만원 이상은 되어야 평균 수준을 유지할 수 있게 만들어진 구조 속에서 아무리 벌어도 서민들은 현상유지조차 어렵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김 전 대법관은 이러한 사회구조를 6개월 동안 뼈저리게 직면한 것이리라. 생활의 불편함으로 인하여 자신이 맹자가 말한 선비에 해당하기에 생활고가 있다하더라도 항심을 가져야 할 소명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망각한 채 자신이 일반 백성인 듯이 ‘무항산이면 무항심이다’라고 변명하면서 대형로펌의 길을 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서민들은 도대체 어디에 희망을 걸고 누구에게 의지하여야 한다는 말인가? 군자다운 사람은 없고 모두가 소인배일 뿐이니 약자는 살 길이 없고 희망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경제는 선진국 수준이면서 OECD국가 중 최고의 자살률, 최저의 출산율, 최저의 복지수준, 최상의 빈곤율, 이것이 대한민국의 2013년 현재의 모습이다. 그런데도 “복지를 하면 나라가 망한다” “세상은 다 그런 것이다”는 힘 있는 자들의 그릇된 논리가 세상을 압도하여, 더불어 잘 사는 복지국가를 건설하자는 외침을 파묻어 버린다. 이러한 자세는 천민자본주의와 양극화의 악순환을 불러 오는 원인이다. 더불어 해결하는 것, 즉, 복지국가만이 자본주의의 모순을 극복하는 유일한 길임에도 개인의 자유가 최선이라고 하면서 개인에게만 맡겨두겠다는 기득권층의 이기심과 근시안적인 어리석음이 문제이다. 교육, 의료, 주거 등 필수 공공재를 정부가 걱정 없이 공급해 주어야 공직자들도 부패의 유혹에서 자유로워 질 수 있는 것이다. 공직자가 청렴하고 바로 설 때 그 사회는 공정한 사회가 되고 서로를 신뢰하는 사회, 안과 밖이 같은 사회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천민자본주의의 함정에 빠진 한국 사회를 선진복지국가 패러다임으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공직자를 포함한 지식인과 지도층이 사회적 책임의식을 가져야 한다. 맹자가 말한 지식인은 무항산이라도 항심을 가져야 한다는 가르침을 뼈 속 깊이 새겨야 변화 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경태 (사)한우리통일복지국가연구원장·행정학 박사(visionkt@naver.com)

 

※ 이 기사는 시사타임즈의 공식입장이 아닌, 필자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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