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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칼럼

[ 전문가 칼럼 ] 세계사 관통 인류애 사상은 세계 지도자 자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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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사상사(2)-한민족(韓民族)의 인간사상

 

 

 



이을형 박사(전 숭실대 법대교수)

⒞시사타임즈

 

[시사타임즈 = 이을형 박사] 사대주의 역사사관을 갖고 중국에 아첨한 김부식(金富軾)도 한민족(韓民族)의 인간사상에는 어쩔 수 없었는지 삼국사기(三國史記, 卷 二十二)에 고구려는 국초(國初)부터 국말(國末)까지 사람을 사랑하여 인화단결이 잘 됨으로 비록 적으나 강대국의 침략을 물리치고 오랜 역사를 보존했다고 했다. 이는 고구려가 인간사상에 의해 동양의 패자로 등장한 것을 가리키는 것이다. 중화주의자요 사대주의자인 그도 이를 숨길 수 없었던 것이다.

 

삼국사기(三國史記, 烈傳 第四)에 신라의 화랑단장 사다함(舍多含)이 가라(加羅)에서 잡아온 포로 300명을 석방해 양민을 만들었다고 하는 내용이 있다. 포로는 적이요 작은 원수이다. 그러나 그들을 인도적으로 대한 것이다. 이 같이 벌레와 짐승까지 사랑하는 한국사상은 원수를 사랑하는 위대한 인간주의로 발전했다.

 

삼국사기 김유신전(三國史記, 金庾信傳)에 소정방(蘇定方)이 신라는 사람을 사랑해 인화단결(人和團結)이 잘 됨으로 비록 적으나 침략할 수 없다고 말 했고 한다. 이는 신라가 인간주의로서 당나라의 침략을 물리치고 삼국을 통일한 것을 가리킨 것이다.

 

발해국지(渤海國志, 卷二, 風俗志)에 발해인은 사람을 사랑해 지나가는 행인을 잘 먹이고 일전(一錢)도 받지 않는다고 하는 기록이 있다. 또 고려원경(高麗圖經, 二十三卷, 雜俗 二)에 고려인은 극히 인(仁)해 짐승을 죽이지 않는다고 했다. 이는 4천 여 년 전 숙신씨(肅愼氏)가 짐승을 사랑한 사상을 계승한 것이다. 한민족(韓民族)에게는 몇 천년동안 짐승을 사랑하는 사상이 계승 됐다고 하겠다. 고려도경(高麗圖經, 十六卷)에 고려인은 인(仁)해 사형수를 죽이지 않는다고 한 것은 백제시대 사형수를 석방한 사상을 계승한 것이다.

 

한민족(韓民族)은 삼국시대부터 고려시대까지 인간을 극히 사랑해 사형수를 죽이지 않은 사상을 계승했다.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卷二 成宗5年)에 나라는 사람을 본위로 한다고 했다. 이는 바로 인본주의(人本主義)를 제창한 것이다. 동문선(東文選, 二, 義於人者 和於神賦)에 사람은 신(神)의 주인이라고 했다.

 

이는 신이 사람의 주인이라고 하는 외국사상과 반대되는 것이다. 또 송사(宋史, 列傳 第二百四十六)에 고려인은 높은 자도 작은 자의 배례(拜禮)에 반드시 답례하고, 아버지도 그 자식의 배례(拜禮)에 반 배례(拜禮)한다고 했다. 이는 군주주의(君主主義) 계급시대에 타국에 없는 풍속임으로 송(宋)나라 역사에 기록한 것이다.

 

고려사(高麗史 列傳 卷 第四十二 崔忠獻)에 노예 만적(萬積)이 의종(毅宗) 이후에 노예가 고관이 된 자가 많다고 하면서 노예반란을 일으켰다고 했다. 고려 왕건태조(王建太祖)가 일부 노예를 석방한 일이 있고 역대 제왕들이 왕건태조의 사상을 받들어 노예를 우대했다.

 

이에 노예가 도리어 주인을 무시하고 노예반란을 일으켰다. 외국의 노예반란은 비인간적 압박에서 일어났으나 고려시대의 노예반란은 반대로 인간적 우대에서, 노예제의 부당함에서 인간은 평등함을 외치며 일어났다.

 

서양의 17~18세기(1688~9)에 시민혁명을 통해서 자유권적 기본권을 확립하기 이전, 12세기(1198년)에 왕후장상의 꿈을 꾸며 난이 일어났었다. 이것이 외국의 예와 다른 점이다.

 

한민족(韓民族) 인간사상 인정한 중국

 

대명일 통지(大明一 統志, (卷之 八十九 外夷)에 조선인은 유근(柔謹)헤 도둑이 없고 살생을 하지 않고 참혹한 형이 없다고 했다. 또 대청일 통지(大淸一 統志, 卷, 四百二十一, 朝鮮)에 조선인은 인해 생명 있는 자를 죽이지 않는다고 했다.

 

이상 대명일 통지(大明一, 統志)와 대청일 통지(大淸一 統志)는 중국고서에 한민족(韓民族)이 인간을 사랑한다고 기록한 것을 인용한 것이다.

 

근대 명, 청 시대에도 한민족(韓民族)은 고유한 인간사상을 계승해 인간을 사랑함으로 명(明)나라 사람과 청(淸)나라 사람이 이를 보고 중국고서(中國古書)를 인용해 한민족(韓民族)은 고대로부터 인간을 사랑하는 전통이 있다고 찬양 한 것이다.

 

만약 명(明), 청(淸)시대에 한민족(韓民族)이 인간을 사랑하지 않았다면 명(明)과 청(淸)이 중국고서를 인용하면서 전통적 인간사상을 들지 아니 하였을 것이다. 대명일 통지(大明一, 統志)와 대청일 통지(大淸一 統志)에서 한민족(韓民族)의 ‘인간사상’이 고대로부터 근대까지 몇 천년동안 계승 발전한 것을 더욱 확인 할 수 있다.

 

조선조 말기에 최수운(崔水雲)은 유교학자이다. 그런데 유교가 극히 배제하는 신선사상(神仙思想)을 자주 말한 것은 고유한 신선사상의 영향을 받아 인본주의(人本主義)를 제창한 것이다. 특히 최수운(崔水雲)은 백 년 전에 신라 경주에서 태어났다. 이는 분명히 신라시대에 크게 발전한 인본주의의 잠재적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상의 고찰에서 한민족(韓民族)의 인간사상은 단군시대에 제창하고 이어 부여, 삼국시대, 고려시대까지 계승 발전하고 외래 유교를 맹신한 조선조말기까지 그 인간사상이 잠재적으로 한민족의 맥박에 흐르고 있는 것을 발견 할 수 있다.

 

실로 한민족(韓民族)의 인간 사상은 한민족(韓民族)이 최초에 창조하고 최후까지 고수(固守)한 주체적 사상이다. 우리가 여기서 알아야 할 점은 역사발전에는 ‘보편성’과 ‘타당성’이 있다. 여기서 보편성은 세계사를 말하는 것이고 특수성은 민족사이다. 한국역사도 세계사의 공통성에 의해 발전했다.

 

군주주의 계급시대에 인간을 무시하고 학대하는 것은 세계사의 공통성이다. 세계사의 공통성에 의해 발전한 한국사가 군주주의 시대에 인간을 무시하고 학대했다. 그러나 특수성에 있어서 한민족(韓民族)의 인간상상에서 보듯 인간을 사랑하고 존중했다. 따라서 한국사는 인간주의 역사다.

 

세계는 20세기에 와서 인간성(humanity) 존중의 사상이 인간성 존중의 입장에 선, 인간성을 억압하는 모든 것에 저항해 반대운동이 전개됐었다. 그러나 그 이전은 찾기 힘든 것과 관련해 로망 로랑은 “19~20세기 중엽까지 문명의 타락과 싸웠고, 인간의 정신면에서의 아름다움을 강조하기에 이르러 제1차 세계대전~제2차 세계대전에서 정의를 위해 싸웠다”고 이야기 할 정도였다.

 

인간사상은 한국에서 발생해 발전했다

 

인류사상 한민족(韓民族)이 최초에 인간사상을 발견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20세기 휴머니즘(humanism)이 기계문명이 진전과 복잡화한 사회로 이데올로기(ideology)가 선예화(先銳化)하자 강한 위기의식에 의해서 주장되어 실천되고 있음을 보고 있다. 여기서 휴우머니즘(humanism) 운동이 일어나며 현대 물질문명, 기계문명으로부터 발생한 퇴폐, 허위, 폭력과 싸우는 제1차 대전 중의 절대평화주의와 반파쇼에 대한 저항이 나왔고 아울러 간디의 비폭력, 불복종운동도 애국심과 인류애 내지 평화주의와의 관계에서 문제가 된 것임을 알 수 있다.

 

20세기 제2차 대전 후에야 국제연합이 성립 후 1948년의 ‘세계 인권선언’에서 ‘인류보편의 진리라도 인권을 존중한 가치에서 나온 것임을 알 수 있다. 우리 한민족(韓民族)은 일찍이 고대부터 인간사상을 발견·발전 시켰다. 이 같이 인간주의는 외국에서 수입한 것이 아니고 한국 땅에서 발생한 것임을 말해주고 있다.

 

중국고서 이아(爾雅)에 ‘九夷在東.......東至日所出 爲太平 太平之人仁’(地氣 使之然也)라고 했다. 즉, 한민족은 해 돋는 동방에 있는데 태평의 인(人)이라 칭한다. 그들은 인(仁)해 인간을 사랑한다. 그런데 인간을 사랑하는 인(仁)은 지기(地氣)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또한 지기(地氣)는 태평환우기(太平寰宇(太平寰宇記, 卷之 二百七十二, 東夷記)에도 위와 같은 문구가 있다.

 

이는 한민족의 인간주의는 외국에서 수입한 것이 아니고 한국 땅에서 나왔다고 한 것이다. 또한 지기(地氣)는 땅 정기(精氣)를 말함인데, 이 땅 정기(精氣)는 ‘인삼(人蔘)’이라는 것이다. 즉, 한국의 특산품인 인삼에서 발생한 것임을 말하고 있다. 동화 같은 이야기라고 할지 모르나 고금도서집성(古今圖書集成)에 ‘人蔘 一名 土精...得地之精靈 故有土精 地精之名’이라고 했다. 즉, “인삼의 일명은 토정(土精)이다...땅 정기(精氣)를 얻어 발생함으로 토정(土精)이라 칭하고 또한 지정(地精)이라 칭한다”고 한 것이다. 토정(土精), 지정(地精)은 지기(地氣)와 같은 말이다. 이는 한민족(韓民族)의 인간주의는 인삼에서 나온 것임을 분명히 가리킨 것이다.

 

1973년 1월 13일 동아일보에 ‘강원도 양양군 서면 오색리(五色里) 산삼마을은 산삼을 산신의 독자로 믿고 산신의 계시가 있어야 산삼을 캘 수 있다고 믿는다. 산삼을 캐는 사람은 살생을 하지 않고 날고기를 먹지 않는다고 했다. 산삼을 산신(山神)의 독생자로 믿고 산신의 계시가 있어야 산삼을 캘 수 있다고 믿는다는 것은 산삼에서 산악(山岳)을 존중하는 사상이 나온 것을 입증하는 것으로 산삼을 캐는 사람은 살생을 하지 않고 날고기를 먹지 않는 것은 신선사상(神仙思想)의 본질로 모든 생명 있는 것(자)을 사랑하여 죽이지 않는 것이다. 이를 보면 모든 생명 있는 것 중에 인간을 더욱 사랑할 것임은 두말 할 것도 없다.

 

국란을 타개한 의(義), 용(勇), 애(愛) 한국사상

 

동아일보의 기사는 인삼에서 한국의 문화사상이 발생하고 인삼에서 인간 사상이 나왔다는 주장을 재확인케 한다. 즉, 인간사상은 외국에서 수입한 것이 아니고 한국 땅에서 발생한 사실을 재확인케 해 주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932회의 외침을 받으면서도 이를 능히 저항하고 불의(不義)의 침략에 불굴(不屈)하며 민족대의(民族大義)를 위해 투쟁하며 그 의(義)를 지켜온 배경은 한민족의 의용적(義勇的) 인간사상이 있어서다. 우리나라 종교 중 유교는 조선조중기 이후에 발전했고, 불교가 가장 발전 한 때는 신라말기였지만 신라말기 이전에 민족 투쟁과 삼국통일의 대업을 이룩했다.

 

그러나 민족대의가 무너진 것은 어째서인가. 그리고 치열한 민족투쟁을 전개한 그 의(義)가 어디에서 나왔는가? 외국사상에서 나왔는가. 한국사상에서 나왔는가. 그의 답은 동양을 제패한 당태종(唐太宗)과 세계를 제패한 홀필열(忽必烈)이 ‘한민족(韓民族)은 인력(人力)으로 굴복시킬 수 없고 천신(天神)의 능력이 아니면 이겨낼 수 없다’고 경탄한 것에서 알 수 있다. 바로 한국사상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그 사상은 의(義), 용(勇), 애(愛)라는 3대정신이다.

이 의(義), 용(勇), 애(愛)의 정신은 순수 우리 것으로 외국에서 수입한 것이 아니다. 이정신은 유교도 불교도 아닌 한민족의 ‘인간사상’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 의(義), 용(勇), 애(愛), 3대정신이 한민족 정신이다.

 

투쟁을 배제하고 무력을 배제하라고 외치면서 도포를 입고 꿇어 앉아 눈을 감고 참선(參禪)하는 유교, 불교에 중국대륙을 제패한 용(勇)은 없었다. 한국에서 유교가 대중화 한 것이 5백년도 안되며, 불교가 상류계급에 보급된 것이 1천여 년에 불과 하다. 그런데 2500년 전에 저술한 논어와 2300년 전에 저술한 ‘이아(爾雅)’와 ‘회남자(淮南子)’에 ‘한국은 인간을 사랑(愛)하는 군자국(君子國)’이라고 찬양하고 있다.

 

중국인도 우리의 의(義), 용(勇), 애(愛), 3대정신에 감탄하고 있는 것이다. 3대정신을 창조한 원인은? 의(義)는 외적의 불의(不義)의 침략에 저항하는데서 이 불의(不義)침략에 저항 하려면 민족 대의(大義)를 발전시켜야 했고, 용(勇)은 유목민족(遊牧民族)의 전통에서 나온 것이다. 농업민족(農業民族)이 유순하고 유목민족이 용감한 것은 세계사의 공통성이다. 애(愛)는 인간을 존중하는 사상이다. 여기서 우리는 세계를 지도할 자격이 있는 우수한 민족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다음에 계속)

 

이을형 박사(전 숭실대법대교수, 본지 고문)

 

 

※ 이 기사는 시사타임즈의 공식입장이 아닌, 필자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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