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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칼럼

[ 전문가 칼럼 ] 한민족(韓民族)의 사상을 이어받은 중국

[ 전문가 칼럼 ] 한민족(韓民族)의 사상을 이어받은 중국



[시사타임즈 = 이을형 박사] 중국은 중화사상을 내세워 자신들과 중국이 세계에서 제일이며 중심이라고 자랑하지만 우리 한민족은 그 보다 더 위대하다. 중국의 요와 순 임금은 중국 역사상 가장 모범적 성군으로 후세 유가의 추앙을 받고 있다. 또한 그들의 통치시대는 이상적 치세라 해 경앙(敬仰)의 표적이 되고 있을 만큼 훌륭했다. 그러나 그들의 치세(治世)를 추적해 보면 그것은 우리 한민족에게서 배운 한민족의 천(天) 사상에서 찾을 수 있다. 요(堯)는 제위(帝位) 70년에 그 제위를 순(舜)에게 선양(禪讓)한 것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순(舜)의 부모와 동생은 매우 악한 사람이었으나 우리 한민족 천민사상(天民思想)의 모방과 그 사상의 뿌리에서 나온 유교의 사상으로 제도화된 제도를 받아들였다. 이를 통해 순(舜)은 일찍부터 지극한 효성으로서 그들을 감화시켜 좋은 사람이 되게 했다. 순(舜)의 효행을 가상히 여긴 요(堯)는 그의 제위(帝位)를 순(舜)에게 선양했다.

 

순 (舜)은 즉위한 후 현신(賢臣) 우(禹)와 익(益)의 보좌를 받아 선정(善政)을 행했다. 특히 익(益)은 요(堯)의 군위(君位)는 천의 은명(恩命)으로 수여한 것이라고 찬양했다. 또 순의 현신으로 우(禹)와 병칭되는 고도모(皐陶謨)는 인간의 본성과 인간사회의 도의는 천(天)으로부터 왔으며 천자(天子), 제후(諸侯), 경(卿), 대부(大夫), 사(士)의 다섯 계급(五服)도 다 천(天)의 배려에 의한 것이라고 했다. 그는 죄 있는 사람을 처벌하는 것도 다 천(天)을 대행하는 것으로 보았다. 이 같이 중국사상에 있어 문화의 발원(發源)은 한민족의 선구적 천(先驅的 天)사상에서 발원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 때 요, 순, 우(堯 舜 禹)와 같은 성군(聖君)과 익직(益稷), 고도(皐陶)와 같은 현상(賢相) 석학이 배출돼 제왕정치(帝王政治)의 기본이념과 인간윤리의 근원이 모두 천(天)이 부여한 것으로 설파됐다. 천(天)의 시청(視聽)은 백성의 시청視聽)에 의한다는 천인관계(天人關係)의 기본사상도 정립됐다. 이는 모두 우리 한민족의 천(天)의 사상과 천자(天子)의 제도를 모방하고 배움에서 순전(舜典)이 나온 것임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사상은 후세 도덕선천설, 천명윤리설(天命倫理說), 천토유죄설(天討有罪說), 천인합일설(天人合一說) 등의 기원이 된다.

 

 

사방민족 중 높은 문화를 가진 으뜸이 한민족

 

논 어(論語 卷之 三, 八侑 第三)에 보면 이적(夷狄)은 군주가 있고 중국은 군주가 없다. 그러므로 이적(夷狄)의 풍습과 중국의 풍속은 같지 않다고 한 것이다. 공자 당시에 중국에 군주가 있었다. 그런데 군주가 없다고 한 것은 무엇인가? 이는 군주를 섬기는 문물제도가 없음을 개탄한 것이다. 그런데 이적(夷狄)은 어느 민족을 말하는 것인가 고대 중국인이 남방민족을 만(蠻)이라 칭하고 서방민족을 융(戎)이라 칭하고 동방민족을 이(夷)라 칭하고 북방민족을 적(狄)이라 칭했다. 고대 한민족(韓民族)이 동(東)의 반도와 북의 만주에 거주해 동북방에 처하였다. 그러므로 한민족을 이적(夷狄)이라고 칭했다. 통감(通鑑)에 고구려를 동이(東夷)라 칭하고 태평환우기(太平寰宇記)에 예맥(銳麥)을 북적(北狄)이라고 칭했다. 그리고 동서남북 사방민족 중 높은 문화를 가진 자는 오직 한민족(韓民族)뿐이요, 기타 민족들은 문물의 도가 없는 야만민족이었다. 그러면 군주를 섬기는 문물제도가 중국보다 발전한 민족은 분명히 한민족(韓民族)뿐인 것이다.

 

특 히 14세기 나관중(羅貫中)이 썼다는 삼국지(三國志)에 부여, 고구려 등 한민족을 소개하는 전문(前文)이 나온다. “부여, 고구려 등 이적(夷狄)의 국(國)에 조두(俎豆)의 문화가 있음으로 중국이 예를 잃으면 부여, 고구려 등 이적(夷狄)의 국에서 배운다” 이는 부여, 고구려를 이적(夷狄)이라 말한 것이요 또한 예(禮)는 하(下)가 상(上)을 섬기는 문물제도이다. 그러므로 예를 잃으면 부여, 고구려에서 배운다 한 것은 군주를 섬기는 등 예의를 한민족에서 배운다고 말한 것이다. 또한 중국의 무도(無道)를 개탄하고 한국을 군자국(君子國)이라 찬양하면서 한국에 가서 살고 싶다고 말한 것이다. 사실상 공자가 이적(夷狄)은 군주를 섬기는 문물제도가 있고 중국은 군주를 섬기는 문물제도가 없다고 개탄 한 것은 공자가 중국의 무도(無道)를 개탄하고 한국을 군자국이라 찬양하면서 한국에 와서 살고 싶다고 한 말을 되풀이 한 것이다.

 

 

중국은 한국의 문물제도를 배워서 통치했다

 

또 한 춘추좌전(春秋左傳 召公十七年) 등에 가을에 관직에 조명(鳥名)명을 부친 유래를 잘못되게 말했다는 말을 들은 공자는 28세의 청년으로 이 잘못을 수정해 주었다. 즉, 천자의 관제를 배우고 옛날부터 천자가 관제를 잃으면 사이(四夷)에게서 배운다는 말이 있었는데 과연 그렇다고 말한 것이다. 이는 한민족이 천자의 문물제도를 창조하고 중국은 한민족이 창조한 그 문물제도를 수입한 것을 말하는 것이다. 봉황(鳳凰)은 천자(天子)가 전용하는 문구(文句)이다. 즉, 천자의 좌석을 봉탑(鳳榻)이라 칭하고 천자의 궁전을 봉지(鳳墀)라 칭하며 천자의 서(書)를 봉조(鳳詔)라 칭한다. 그러므로 봉황을 보고 관명을 지었다 함은 천자의 문물제도를 설정한 것을 말하는 것이요, 또한 고대 중국인이 봉황은 한국에서 출생했다고 했다. 이는 천자(天子)의 문물제도가 한국에서 창조된 것을 의미한다. 사이(四夷)는 본래 사방민족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런데 고대 사방민족 중 한민족이 대표적이었다. 그리하여 한민족을 사이(四夷)라고 칭한 예가 많이 있다.

 

중 국에서 유명한 사가 범엽(范曄)이 공자의 말을 후한서 동이전(東夷傳)에 기입하고 태평환우기(太平寰宇記)에도 공자의 말을 조선조(朝鮮條)에 기입했다. 이는 공자를 가르친 스승 담(郯)도 한민족이요, 공자가 말한 사이(四夷)가 한민족이라 입증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 글은 한민족이 천자의 문물제도를 창조하고 중국은 옛날부터 한민족이 창조한 문물제도를 수입한 것임을 확증한다고 하겠다. 또한 한(漢)나라 채옹(蔡邕)이 저술한 독단 권상(獨斷 卷上)에 “천자라는 칭호는 이적(夷狄)이 창조한 것이요, 이적(夷狄)은 천신지신(天神地神)의 피를 받은 민족으로 자처하므로 천자(天子)라는 칭호를 창조했다”고 하는 내용이 있다. 이적(夷狄)은 이미 설명한 바와 같이 한민족(韓民族)을 가리킨 것이요 천신(天神)의 피를 받았다 자처한 민족도 이미 말해 온 바와 같이 우리 한민족이다. 채옹(蔡邕)의 글은 한민족이 최초에 천자(天子)의 문물제도를 창조하고 중국은 한민족이 창조한 문물제도를 수입했다고 고백한 것이다.

 

 

천자라는 명칭도 한민족이 창조했다

 

중 국고서 산해경(山海經)에 조선천독(朝鮮天毒)이라 하고 석문(釋文)에 독은 육(育)이라고 해석했다. 그러면 천독(天毒)은 천(天)이 양육(養育)한다는 뜻이다. 즉, 조선민족은 천신(天神)의 양육을 받는 자식이라고 가르친 것이다. 즉, 천자(天子)라는 명칭이 한민족(韓民族)에 의하여 창조됐다고 가르쳤다. 또한 포박자(抱朴子)에 중국민족이 시조라고 칭하는 제왕(帝王)인 황제(黃帝)가 동으로 청구(靑丘)에 와서 삼황내문(三皇內文)을 얻었다고 했다. 여기서 삼황(三皇)은 천황(天皇), 지황(地皇), 인황(人皇)을 가리킨다. 이 황제(黃帝) 역시 우리 한민족이다. 그런데 동북공정의 역사왜곡은 상상을 초월한다. 그러면 중국역사 첫 머리에 천황씨(天皇氏), 지황씨(地皇氏), 인황씨(人皇氏)라 기록한 것은 한국에서 수입한 삼황내문(三皇內文)을 베낀 것이다. 이 신화도 천자(天子), 천황(天皇)등 황제(黃帝)의 문물제도를 최초에 창조한 것은 한민족이요, 치우천황(蚩尤天黃)도 우리 조상인데도 동북공정을 하며 자신들의 조상으로 모셔가고 있는 실정이다.

 

중 국 한족(漢族)은 우리보다 늦게 중앙아세아로부터 동방으로 이동하기 시작해 곤륜산을 우회하여 신강성(新疆省), 감숙성(甘肅省) 등을 통과 할 때 까지는 유목생활을 하다가 요순시대(堯舜時代)에 산서성(山西省)으로 이동하고 평양(平陽) 부근에 도읍을 정할 무렵부터는 농경시대로 들어가게 되어 중국문화를 형성하게 된다. 그 지역이 바로 산서성(山西省) 분하(汾河)유역으로부터 황하유역에 해당 한다. 이 지역에 정주(定住)하게 된 그들은 자주 홍수의 재난에 봉착하게 됐다. 이 때부터 자연 현상에 관해 예민한 관찰을 하게 되어 중국 한족(中國漢族)보다 먼저 선주(先住)한 우리 한민족(韓民族)의 문물제도를 많이 흡수하게 된다. 그 중에 우리의 천(天)에 대한 사상도 수입하게 된다. 재난이 계속되기에 그들은 명산(名山), 대천(大川), 풍우(風雨), 뇌전(雷電) 등 자연현상 및 자연물들을 신(神)으로 보고 최고의 신을 천(天)이라 믿게 됐다.

 

 

한민족 사상이 중국의 정치·도덕·제도·종교의 중추사상이 됐다

 

이 같은 이유로 우리 한민족의 천(天)에 대한 사상은 오늘에 이르기 까지 중국의 정치, 도덕, 제도, 종교 등의 중추적 사상이 되고 있다. 상고시대의 천(天)에 대한 사상도 한민족에서 유래 된 것을 알 수 있다. 그들은 한민족(韓民族)의 문물과 함께 황하문명이 나온다. 그러나 우리는 이보다 먼저 요하문명을 세웠다. 이는 황하문명보다 1~2천년 앞선 문명이다. 이를 제대로 알고 중국과 일본이 우리 역사를 도둑질 하는 것을 막고 역사를 잃을 일이 없도록 연구를 제대로 해야 한다. 중국에서 고대 우리 천(天)에 대한 사상을 연구한 학자들이나 상고시대를 꽃피운 학자들은 중국의 모든 제도와 문물은 물론 사상까지 한민족(韓民族)에 의해 생성 된 것임을 바로 알고 있다. (다음에 계속)

 

 

(본 칼럼 중 주요 내용들은 최태영 선생과 최인 선생의 원문에 충실하고자 했음을 밝혀둡니다)

 

 

 

이을형 박사 프로필

 

숭실대학교 졸업

1978년 일본 메이지대학법학부박사(노동법) 학위 취득-일본전체에서 5번째 학위논문통과(외국인으로선 최초)

1979년 귀국, 전주대 교수(초대 법정학부 회장)

1982년 숭실대 법대 교수(초대 법대학장 역임

국제노동법정책학회 초대 회장 역임

한일교류문화협회 회장 역임

노동부 정책 자문위원 역임

현재 본지 고문

 

 

 

 

이을형 박사(전 숭실대 법대 교수, 본지고문)

 

※ 이 기사는 시사타임즈의 공식입장이 아닌, 필자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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