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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칼럼

[ 전문가 칼럼 ] 중·일의 날조역사를 본다 - 조상 부정하고 욕하는 패륜

[ 전문가 칼럼 ] 중·일의 날조역사를 본다 - 조상 부정하고 욕하는 패륜




[시사타임즈 = 이을형 박사] 고대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던 백제와 강성한 국가였던 고구려가 망한 후 우리의 문화유산과 수많은 보물 및 서적들이 중국에 빼앗겼다. 또한 근세에 와서는 일본의 대한제국 침략으로 빼앗긴 문화재와 서책이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중국과 일본은 빼앗아간 우리의 찬란했던 역사를 제멋대로 꾸미며 자신들이 우리 한민족을 지배한 것처럼 역사를 변조·왜곡했다.

 

구당서(舊唐書)와 신당서(新唐書), 삼국사기(三國史記) 등에 따르면 백제가 망한 후 당나라가 강제로 빼앗아간 서책은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서기 660년 당시 백제의 경우는 의자왕과 태자 및 왕자들, 대신(大臣), 장사(壯士) 88명과 1만2807명의 백제인들이 당나라에 끌려 갔다. 고구려는 보장왕(寶藏王)을 비롯한 3만8300호(戶) 22만명이 강제로 끌려 갔다. 이 때 당나라는 수많은 보물과 서적들도 빼앗아 갔다.

 

또 일본이 빼앗은 조선총독부가 집계한 것만도 22만여권에 이르고, 비공식적으로 가져간 것을 합치면 27만권이 넘는다. 이때부터 우리 역사는 완전히 뒤바뀌었다. 우리는 중국과 일본을 지배한 위대한 민족이었지만 그 흔적이 지워졌다.

 

3세기의 중국사서 삼국지(삼국지)와 위지(魏志)에 보면 당시 ‘일본에 말(馬)이 없다’고 했다. 그런데 4세기에 와서 많은 말이 일본에 나타난다. 이것은 일본이 숨겨온 역사다. 고구려 이웃 북방 지역 부여의 한민족은 말을 타고 한반도와 일본으로 들어왔다. 이들은 백제 서부지역을 점령했다. 아울러 북방 가야족이 부산 근처 가야지역으로 퍼지던 당시 과감했던 이들 일부는 서기 369년 바다건너 일본으로 가 왜(倭)를 정벌했던 것이다.

 

이때부터 우리는 일본을 지배하며 그들에게 은혜를 베풀었다. 한국 고대사에 ‘동부여(東夫餘)가 바다로 사라졌다’는 기록이 있다. 그런데 일본사(日本史)는 이를 기피한다. 일본의 어용학자는 이를 숨기고 부여족의 일본정벌을 기록하지 않았다. 이런 역사적 사실을 언급하는 학자에 대해 일본은 철저히 불이익을 주었다.

 

예컨대, 규수대학(九州大學) 다무라(田村)교수는 지난 1982년 출판한 저서에서 ‘8세기 이후 중국이 일본문화의 종주국으로 나서기 전까지 한국은 수백 년 동안 일본문화의 모체였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그런데 다무라(田村)교수는 이 책을 출판한 직후 교수직에서 물러났다. 일본은 한국의 지배를 받았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싫은 것이다. 지금의 아베신조나 하시모토 도루가 왜 괴변을 말 할 수밖에 없는지 이해가 가는 대목이다. 오늘은 너무 어이없기까지 한 일본의 망언을 되돌리기 위해 우리가 일본을 지배했던 고대사 부분을 기술하고자 한다.

 

자랑할 만한 역사도 사상도 철학도 없는 일본은 국민마저 속인다

 

우리 한민족이 일본을 지배해 온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이는 많은 역사 고증자료에서 얼마든지 입증된다. 그러나 일본은 이 같은 사실을 철저히 숨긴다. 그것은 일본이 내세울 수 있는 자랑할 만한 역사가 없고 내세울 수 있는 사상과 철학이 없는데서 기인한다. 일본이 지금은 아시아의 선진국가지만 과거에는 볼품이 없는 역사를 갖고 있었다는 것이다. 일본은 결코 아시아 민족을 이끌 수 없는 거짓과 허위가 난무하는 혼란스러움만을 주고 있다. 그들은 지난날 소위 ‘대동아공영권’이라는 것을 내걸고 아세아침략을 감행했으면서도 침략이 아니라고 억지를 부리고 있다. 이민족에게 무한 고통과 비극을 안겨준 강도·살상·강간 등의 침략행위까지 부인하는 일본의 태도는 그들의 영혼이 얼마나 나쁘게 물들어 있는지 짐작케 하는 일이다. 일본의 과거 역사가 어떠했는지 그 본성을 짐작케 한다는 것이다. 일본의 과거 망령이 또다시 일어나 지난달의 낡은 목표가 회상되는지 일본에서는 신군국주의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최근 일본의 수상이며 오사카 시장의 미친 소리를 듣고는 참을 수 없어 지난 글에서 다 끝내지 못한 일본의 실체를 다시 벗겨 세우려 한다.

 

거듭 강조하지만 우리가 아는 분명한 역사적 사실은 우리 한민족이 고대부터 일본을 정벌하고 지배했다는 부분이다. 일본은 왕조사를 조작한 고사기(古事記)와 일본서기(日本書紀)의 진구(神功)왕후, 진무(神武) 및 여러 왕대(王代)의 기록에도 이 사실이 수없이 반영되어 있으나 이런 사실들을 철저히 숨겼다. 최태영 선생은 ‘부여 기마족과 왜(倭)’(코벨박사 저, 김유경 편역 287면)에서 “일본인의 9할은 자기나라의 진짜 역사를 모른다. 진실을 알게 된다면 그들은 혼란스러울 것이다”고 했다.

 

고대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일본 문부성은 열등한 일본의 역사와 전통성에 자신이 없기에 한국이 4세기부터 일본을 지배했다는 변할 수 없는 사실을 숨기고 있다. 일본은 국민들이 열등의식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를 막기 위해 교육을 통해 철저히 고대 이래 현대에 이르기 까지 일본의 본체가 한국이라는 것을 숨기며 날이 갈수록 역사왜곡을 더 과감히 하고 있다. 때문에 많은 일본인들은 그들이 한국에서 건너간 유민들인 줄을 모르게 됐다. 우리 민족이 일본을 세운 사실과 이 같은 우리 역사를 자기들 역사처럼 조작한 사실을 모르고 있다. 오직 왜곡된 역사가 진짜 역사인양 맹신한다.

 

일본은 폐리 미제독이 시모다(下田)에 오기 전까지 12번의 조선통신사를 통해 새 문물을 받아온 터라 국민에게 내세울 것이 없었다. 우리역사를 왜곡·변조시켜야만 국가적 자신감을 얻게 하는 것이 가능했다. 그것은 극단적으로 가미가제(神風) 특공대처럼 맹목적 충성을 이끌어 냈다. 이는 역사를 들춰보면 모두 확인 할 수 있는 사실들이며, 지금 일본의 극우정객들의 행태를 봐도 잘 알 수 있다. 일본의 역사왜곡은 외국 역사가들에게는 잘 알려져 있는 반면 일본인들에게는 은폐돼 있기도 하다. 따라서 거짓역사에 더 거짓을 가하고 있는 일본이다. 오사카 시장 하시모도 도루는 자기 조상이 어디에서 왔는지 조차 모르는 역사무지가다. 그는 망언으로 진실된 역사를 또한 가리고 있다.

 

일본의 1대에서 14대 왕은 모두 허구이기에 망언으로 감추려 한다

 

일본 역사의 위조는 만세일계(萬歲一系)의 일본왕가가 아닌데서 부터 터무니없는 위조사(僞造史)임이 판명되고 있다. 일본은 교과서에서 일본의 지배자 혈통이 BC660년부터 진무왕(神武王) 이후 한 번도 단절된 일 없이 백수십대를 이어져 온 만세일계(萬歲一系)라고 학생들에게 가르치지만 이는 모두 거짓으로 꾸며낸 것이다. BC660년 일본에는 국가가 없었다. 일본의 왕 1대에서 제14대까지는 모두 허구의 조작된 왕이기 때문이다. 참고로 일본 역사를 연구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까 해서 이들의 이름을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즉, 1대 진무(神武), 2대 수이제이(綏靖), 3대 안네이(安寧), 4대 이토쿠(懿德), 5대 코우쇼우(孝昭), 6대 코우안(孝安), 7대 코우레이(孝靈), 8대 코우겐(孝元), 9대 카이카(開化), 10대 스진(崇神), 11대 스이닌(垂仁), 12대 케이코우(景行), 13대 세이무(成務), 14대 츄우아이(仲哀) 등이다. 이는 모두 조작의 왕들일 뿐이다. 이러한 주장은 712년과 720년에 편찬된 고사기(古事記)와 일본서기(日本書紀) 등 두 역사서에서 나와 있다. 두 책 모두 8세기 당대의 일왕을 합법화 시키느라고 조작한 것이기 때문이다.

 

역사편찬 당시 일본 왕가는 겨우 100년 정도였을 뿐 그때까지 일본에는 글을 아는 사람이 거의 없어 문자로 기록된 역사서가 없었다. 역사서가 편찬되는 7세기는 왕권다툼의 전란 속에서 불타버렸다. 일본왕은 백제에서 망명 온 안만려(安萬呂) 등 학자들에게 ‘일본서기’를 편찬토록 했다. 이들은 백제를 멸망시킨 신라에 대한 원한과 함께 새로 섬기게 된 일왕에게 충성을 서약 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이들 손에서 나온 일본 역사서는 엄청난 모순과 날조로 가득 찬 것이 됐다. 그들이 알고 있는 실제 역사는 오직 300년 전부터였지만 1000여년이나 더 길게 역사를 늘려 쓰기 위해 어떤 일왕은 100년도 넘게 통치했다고 왜곡했다. 그러나 이처럼 엿가락 늘리듯 늘린 일본의 역사는 일본학자들도 ‘2600년의 역사는 거짓이다’고 말하고 있다. 이미 일본의 역사왜곡에서 말한 바 있는 와세다 대학(早稻田大學)의 미쓰노(水野 祐)교수는 “일본 역사는 978년이 조작됐다”고 말하고 있으며 가지마 노부르(鹿島 昇)는 “일본의 황통사(皇統史)는 거짓역사이지만 일본이 놀랄 만큼 짧은 기간 내에 과학과 선진문명을 받아들여 청·일 러일전쟁에 승리하고 세계지배를 꿈꿀 정도로 자부심과 용기를 갖고 발전한 것은 한국과 중국에는 미안한 일이나 이러한 역사의 위조의 공적이다”고 말하고 있다.

 

일본서 가장 높이 모시는 이세징구(伊勢神宮) 신위도 모두 한국인

 

일본이 미쳐 왜곡을 하지 못한 제사에 관한 것을 기록한 방대한 책 연희식(延喜式=10세기 일본법령집)이 있다. 이 책에는 궁내성좌(宮內省坐) 신삼좌(神三坐) 즉, 일본 조상신 3분이 모셔져 있다. 일본 황거(皇居) 대궐서 제사지내는 신위(神位)도 똑 같다. 거기에는 원신(園神=가락국 신라조상)과 한신이좌(韓神二坐=백제조상신 이좌·二坐)가 있다. 이 원신과 한신은 모두 우리 한국인이며 일본서 가장 높이 모시는 이세징구(伊勢神宮) 아마테라스 오미가미(天照大神) 36좌(坐)의 일본 조상신 가운데 앞자리에 위치한다. 밑에 36좌의 신위도 모두 한국인이다. 아고 기요히코(吾鄕淸彦) 상가야 왕조사(上伽倻 王朝史)를 연구하는 학자는 “군부나 신직(神職)이 개입한 역사나 일본서기(日本書紀), 고사기(古事記)는 정직한 역사가 아니다”고 밝히고 있다. 지금 아베신조나 하시모도 도루며 이시하라 신타로 전 동경도지사 등 일본 정치인들이 하는 망언과 억지는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일본이 왜 저토록 미친 억지 망언을 남발하는지 알게 된다는 것이다. 망언을 하는 자들은 일본의 역사 기술(記述)에서 승리는 과장하고 패배는 고쳐서 개서하고 망명은 서술(敍述)하지 않는는 수법을 쓴다. 이들은 역사를 작성하는 기본 원칙을 고수한답시고 망언을 하고 있으나 결국 내세울 게 없기 때문이다.

 

외국학자들도 일본의 역사 위조를 말하고 있다

 

미국태생으로 일본문화를 연구하면서 한국문화에 대한 심도 있는 연구를 해온 존 카터 코벨(Jon Carter Covell : 1910~1996) 박사는 일본문화의 근원이 한국이라는 것을 분명히 말하고 있다. 그는 1978년부터 1986년까지 약 20년을 한국에 머물면서 ‘한·일 고대사’, ‘한국미술’, ‘불교 도자기’ 등에 1400여 편이 넘는 칼럼을 썼다. 또한 그는 ‘한국이 일본문화에 미친 영향’, ‘한국문화의 뿌리’ 등 5권의 영문저작을 내고 일본 문화와 미술에 관한 16권이상의 책을 저술했다. 그리고 그 아들 앨런 코벨도 도중에 어머니와 합류해 모자가 한국고대사 가운데서도 가야유물의 중요성을 일찍이 알아채고 4세기에 바다를 건너가 왜를 제압한 가야와 부여족이 한국사에서 얼마나 중요한 가를 알리는데 적극 나섰다. 이들은 외국인으로 VISA를 받기 위해 6개월마다 출국했다가 다시 입국하는 어려움 속에서도 일본의 간악한 역사왜곡에 대해 ‘한국문화의 뿌리를 찾아’ 등을 발간하며 우리역사를 제대로 찾는데 너무나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들 학자들은 369년 부여 기마족이 왜를 정벌한 것을 비롯해 일본 문화의 원류가 한국임을 분명히 말하고 있다. 그리고 일제가 정립한 우리나라 삼국시대는 삼국이 아닌 가야까지 쳐서 4국으로 불러야 옳다고 하면서 우리의 역사분류까지 잘못 기술돼 있다고 지적했다.

 

오늘날 역사를 제대로 연구해온 학자치고 한국을 포함해 고사기(古事記)와 일본서기(日本書紀)가 일본 열도의 진짜 사서라고 믿는 사학자나 고고학자는 없다. 만약에 있다면 조선총독부가 한국인에게 열등의식과 패배의식을 심으려 조작한 ‘조선사편수회’의 왜곡한 역사를 신주 모시듯 하는 악마에게 혼을 팔아먹은 일본의 사학자와 우리나라 일부 학노(學奴)들만이 있을 뿐이다.

 

일본은 예부터 고구려, 백제가 망한 후부터 당나라의 지시에 따르고 신라에 아부했다. 나아가 일본에 나라를 건설한 상가야 역사를 말살하고 허구의 일본사를 만들어 냈다. 일본은 지금도 고대에서부터 오늘날까지 줄기차게 그리고 날이 갈수록 우리역사를 도둑질하며 거짓역사를 날조하는 수위를 높여가고 있다. 이제 우리도 이에 맞서 역사를 잃어버리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정부도 국민도 모두가 역사를 지키고, 나아가 잃어버린 역사 되찾기에 총력을 기울여 우리 선조들의 찬란한 역사를 제대로 이어가도록 해야 한다. 더 이상 주저해서는 안 된다. Arthur Helps가 말한바와 같이 ‘역사란 국민의 노력을 위한 해도(海圖)요 나침반이기 때문이다.

 

이을형 박사(전 숭실대법대교수, 본지 고문)

 

 

※ 이 기사는 시사타임즈의 공식입장이 아닌, 필자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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