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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칼럼

[ 전문가 칼럼 ] 지진과 메르스 공통점은 사람들의 ‘공포’이다

[ 전문가 칼럼 ] 지진과 메르스 공통점은 사람들의 ‘공포’이다

 

 

 

 

▲정경진 중국 청화대학교 국제관계학 석사 ⒞시사타임즈
[시사타임즈 전문가 칼럼 = 정경진 중국 청화대학교 국제관계학 석사] 4월25일, 7.8의 역사적인 지진이 네팔 국토를 강타했다. 이로 인해 9천명 이상이 사망하고, 8백만명 이상의 이재민이 발생하였으며, 20만 채 이상의 가옥이 파손되었다.

 

지진 후 한 달 여가 지난 지금, 카트만두 도심은 지진 전과 같은 활기를 되찾고 있다. 카트만두의 중앙 시장인 어썬초크는 지진 당시 장을 보지 못했던 사람들로 붐비며, 여진 역시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지난 주 까지는 4.0 이상의 지진이 매일 5-6차례 반복되었고 지속 시간도 10초 이상으로 사람이 감지할 수 있었으나, 현재에는 하루 2-3회로 줄어들었으며 시간도 5초 미만으로 짧아졌다. 하지만 아직도 사람들은 집에 들어가기를 거부하며, 지방으로 내려간 사람들은 수도로 다시 돌아오려 하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카트만두 시내 식당에는 구인 벽보가 쉽게 눈에 띈다.

 

극도로 위축된 사람들로 인하여 지진 이후의 도시 복구 역시 차질을 빚고 있다. 노동인구의 20%가 해외에서 일하고 있는 네팔의 특성 상, 실제 복구에 참여할 수 있는 젊은 노동력이 현저하게 부족하다. 복구를 위해서는 단 한 명의 사람이라도 시급하지만, 한 달 사이 7.0 이상의 강진을 두 번이나 겪었던 사람들의 공포는 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 없게 한다. 실제 지진 강도 측정에서도 진도 4.5의 지진은 컵을 깨뜨리거나 벽에 금이 가게 하는 수준으로, 내진 설계가 된 철근 콘크리트 건물을 무너뜨리지는 못한다.

 

여기에 사람들의 공포심을 부채질하는 또 다른 하나는 바로 잘못된 종교인들의 예언이다. 힌두교의 특성상 나이 많은 수도사나 종교인의 언행이 일반 주민들에게 큰 영향을 끼치는데, ‘12가 나쁜 숫자이니 매월 12일마다 지진이 다시 올 것이다’, ‘토요일이 휴일이라 신의 분노를 샀으니 토요일에 지진이 다시 올 것이다’라는 등의 근거 없는 소문이 사람들을 더 위축되게 한다. 이러한 예언이 돈 날에는 사람들이 외출을 삼가거나 붕괴 현장에서 일하기를 거부하면서, 피해 지역의 복구는 점점 더 뒤로 미뤄지고 있다.

 

물론 사람들이 모르는 것은 아니다. 이미 무너질 건물은 다 무너졌고, 추가 붕괴가 우려되는 건물은 빠른 건물 보수 및 복원이 필요하다. 하지만 공포에 질린 사람들은 작은 지진만 와도 예민하게 받아들인다. 당장 두려운 것은 이 여진이 아니라, 이 여진 뒤에 올 수도 있는 더 큰 지진이다. 큰 지진이 다시 올 확률은 1%도 채 되지 않는다. 복원의 필요성은 네팔 사람 누구나 인식하고 있지만, 지금 눈 앞의 공포로 인하여 어느 누구도 선뜻 나서려 하지 않는 것이다. 현재 네팔 지진 복원에서 넘어야 할 가장 큰 산은 바로 사람들의 이성을 넘어선 지진에 대한 공포이다.

 

네팔 지진 이후 한국에서는 5월20일, 국내 역사상 처음으로 중동 호흡기 증후군인 메르스 (MERS) 확진 환자가 발생했다. 이 사실은 곧바로 한국 언론에 대서특필 되었으며, 6월6일 현재 확진환자가 50명에 사망 환자가 4명, 격리 환자는 약 1800여명이다. 메르스가 정확히 뭔지도 몰랐던 한국인들에게 이는 엄청난 충격이었다. 마스크와 손세정제의 판매가 급격하게 올라갔고, 사람들은 외출을 자제하여 번화가에는 인적이 끊어졌으며, 심지어는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서울대공원 낙타를 격리하는 웃지 못할 촌극까지 발생했다. SNS로는 증명되지 않은 허위 사실들이 겉잡을 수 없이 번져 나갔고, 사람들은 외부 활동을 줄이고 휴교에 들어간 교육기관이 1천여개가 넘어갔다.

 

네팔 지진을 겪었던 네팔 거주 한국인들은 이러한 한국의 상황을 보고, 네팔의 상황과 비슷한 데자뷰를 느꼈다. 메르스는 한국에는 알려지지 않은 질병이었고, 한국에 살지 않는 네팔 교민들에게는 더욱이 체감을 할 수 없는 질병이다. 무엇보다도 8천 여명이 지진으로 죽어나간 네팔의 상황에 비교했을 때 5명 미만의 사망자 숫자는 크게 체감할 수 없는 정도이지만, 언론으로 만나는 한국은 메르스로 인해 모든 행정처리와 각종 활동이 멈춰선 상태로 보인다. 당장 내가 오늘 나갔다가 메르스에 감염되어 집으로 들어올 확률은 채 1%도 되지 않는다.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의 최대 번화가인 터멜 거리. 지진 이후 한 달이 되도록 상점 중 절반은 문이 닫혀 있고, 인적도 끊어졌다. 진도 5.0 미만의 지진은 내진 설계가 된 건물에 영향을 주지 못하지만, 공포에 질린 사람들은 아직까지 외부 출입을 삼가고 있다 ⒞시사타임즈

 

 

지진과 메르스 그 자체가 아니라, ‘다음 차례는 내가 될 수도 있다’는 공포 그 자체가 지금 양쪽 국가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공포감이 나타나는 이유를 두 국가의 공통점에서 분명하게 찾을 수 있다. 첫째, 공포의 대상이 인간의 힘으로는 조절이 불가능한 자연재해 혹은 질병이다. 예방법이나 치료법은 없다. 둘째, 정부에 대한 신뢰도가 두 국가 모두 현저히 낮다. 네팔은 2014년에야 처음 대선을 치른 정치적으로 불안한 국가이며, 한국의 박근혜 정부는 최저 지지율을 끊임없이 갱신하고 있다.

 

인간이 상대하기 버거운 존재 앞에서 어느 누구도 나와 내 가족을 지켜줄 수 없다는 생각에 이르지, 공포는 양 국가 모두에서 겉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 공포에 질린 사람들은 근거 없는 소문에 의지하고, 외출을 삼가며, 밖에서 활동하기를 꺼린다. 그리고 양 국가 정부는 자신들의 초기 착오를 덮기 위하여 대책보다는 관련 사실에 대해서만 끊임없이 발표하고 보도한다. 네팔 정부는 지진 당시 지도부의 출국으로 실질적인 무정부 상태였으며, 한국 정부 역시 초기 질병 관리 및 대응에 실패했다는 비판을 듣고 있다. 공포에서 비롯된 이러한 군중 심리는 네팔과 한국 사이에서 몇 가지 공통점을 더 만들어냈다. 가장 먼저, 사람들은 공포의 대상에만 집중할 뿐, 그 이외의 사건에 대해서는 무감각해진다. 동시에 이러한 자신의 행동이 비이성적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으면서도 그 두려움을 돌파할 용기를 내지 못한다.

 

공포에 질린 사람들은 단 한 가지 사실만을 인지하며, 이 사항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는 정치, 경제, 사회적인 활동에는 상대적으로 무관심해진다. 네팔에서는 지진이, 한국에서는 메르스가 그 공포의 대상이다. 네팔 정부는 이번 주에 국제 원조를 제외한 모든 NGO 활동을 통제하겠다고 발표했으며, 이는 NGO 관련 비용을 국민의 뜻이 아닌 정부의 입맛대로 유용하겠다는 의도이다.

 

하지만 지진으로 겁을 먹은 국민들 귀에는 아무것도 들어오지 않는다. 한국 또한 마찬가지로, 메르스 사건 이전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궜던 성완종 리스트 사태는 묻혀버렸다. 4월 16일을 기점으로 다시 한 번 화제가 되었던 세월호 사건 역시 이제는 관심 밖이다. 그리고 통제되지 않는 루머 즉, 네팔에서는 종교인들의 예언이, 한국에서는 SNS 괴담이 무차별적으로 퍼져나가 점점 더 사람들을 공포로 밀어 넣는다.

 

또한, 사람들은 이러한 자신의 행동이 비이성적이며, 필요 이상으로 과잉 대응을 하고 있다는 사실 역시 알고 있다. 하지만 이미 사망자가 발생했고, 다음 차례가 내가 될 수도 있다는 공포감은 비이성적이더라도 안전을 추구하도록 사람들의 행동을 조종하고 있다. 지진이 다시 오거나 메르스에 걸릴 확률을 보았을 때 외출 자체를 꺼리고 행사를 취소하는 것은 분명 낭비에 가깝다.

 

하지만 확률이 낮다고 해서 공포감까지 작아지는 것은 절대 아니다. 오히려 내가 그 한 명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은 공포감을 더욱 부채질한다. 지금 한국과 네팔에서는 확률은 무의미한 존재이며, 단 두 가지 가능성만이 존재한다. 지진이 다시 오거나 오지 않거나. 내가 메르스에 걸리거나 또는 걸리지 않거나.

 

공포감으로 인하여 복원 작업에 참여하지 않으려는 네팔 주민들로 인하여 다른 사항들 역시 점점 더 뒤로 미뤄지고 있다. 정부 발표대로라면 NGO들은 6월 중순까지 프로젝트를 마감하고 출국해야 하는데, 이런 상황이라면 각종 복원 프로젝트가 중간에 중단될 수도 있다. 한국의 번화가는 직격탄을 맞았다. 특히 메르스에 대한 불안감으로 중국 여행객들이 급감하면서, 여행업계와 명동 등지는 사람이 눈에 띄게 줄었다. 하반기 경제 상황에 악영향을 줄 것이라는 예측이 대부분이다. 장기적으로 이러한 행동들은 국가의 복원과 발전에 전혀 도움을 주지 않는다.

 

공포에 질린 사람을 대할 때에는 단 한 가지 방법뿐이다. 모든 사항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빠른 대책을 세워 공포의 대상을 정면으로 돌파하는 수 밖에 없다. 가장 큰 문제는 양 국가의 정부의 대응 방안으로, 현재까지 내놓은 대책들은 국민의 신뢰를 전혀 얻지 못했다. 그러나, 어느 한 쪽이 용기를 내지 않으면 심리적인 공포는 절대 해소되지 않는다. 단 한 순간이라도 이성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면, 공포는 순식간에 사그라진다. 지금은 잠시 숨을 돌리고, 이 공포에 대한 답을 찾을 시점이다. 장기적으로 어떤 행동이 내게 도움이 되는지, 모든 당사자들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할 때이다.

 

글 : 정경진 중국 청화대학교 국제관계학 석사 (urizi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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